“결국, 우리는 ‘태백산맥’의 영향을 크게 받았지.”
재작년. 22대 총선이 끝난 후 한 더불어민주당 정치인과의 저녁자리에서 들은 말이다. 지금도 활동하며 잠재적 ‘잠룡’으로 분류되는 인사다. 젊은 시절 학생운동에 심취했었고 이를 부인하지 않는다. 민주당, 더 정확히 말하면 진보진영 인사들의 보편적 정서를 안다. 그의 ‘우리’는 진보진영을 뜻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태백산맥’이란, 소설가 조정래가 1980년대 연재한 소설이다. 1948년부터 1953년까지의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등이 배경이다. 해방 후 혼란스러운 한국의 현대사를 지어내지 않은 역사와 지어낸 등장인물들, 지어낸 폭력과 지어내지 않은 살육을 교차시키며 소설로 승화시켰다.
태백산맥은 시대를 지배했던 책이다. 1980년대 학창시절을 지냈다면 이 책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태백산맥은 ‘레드 콤플렉스’가 지배하던 한국 사회에 충격을 일으켰다. 남로당과 빨치산을 우호적으로 서술하는 장면이 여럿 등장했다. 주인공 중 한 명인 염상진은 강고한 좌익 민족주의자로 휴전협정 이후에도 빨치산으로 남한 군경과 싸우다가 사살된다. 대립하는 우익 인사들은 부정적으로 그려진 게 일반적이었다. 그것만으로 조정래의 성취는 대단하다.
지난 1일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신년 인사말을 들으면서 2년 전 들었던 ‘태백산맥’을 생각했다. 정 대표는 “동학의 후예 민주주의자들이 3·1 독립운동, 4·19혁명, 부마항쟁, 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87년 6월 항쟁을 통해서 만든 대한민국 헌법 덕분에 우리는 윤석열 일당의 12·3 비상계엄 내란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했다. 정 대표의 말 속에 진보진영이 한국 현대사를 어떻게 인식하는지가 명확히 드러난다. 이 인식을 옳다, 그르다로 평가하고 싶지 않다. 정 대표 말엔 맞는 측면도 있다.
해당 시각에서는 진보가 자신들을 ‘비주류’이며 ‘피해자’ 위치로 생각하고 있는 게 명확하다. 이는 태백산맥을 관통하는 흐름이기도 하다. 조 작가는 태백산맥의 시대를 “민족자주독립국가 수립 노력의 시대”라고 했었다. 노력을 한 사람들에 한반도의 역사가 잔인했던 것도, 조 작가가 이를 그려낸 것도 맞다.
후예를 자처하는 민주당은 지금도 비주류인가 피해자인가를 묻는 것이다. 민주당 국회의원은 163명, 범여권 의석은 180석이 넘는 절대 과반이다. 국민의힘 반대를 ‘수’로 누를 수 있다. 대통령은 이재명, 진보진영의 4번째 대통령으로 50% 이상의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받는다. 지금 진보진영은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다.
그런 진보진영 인사들의 입에서는 ‘책임론’이 숱하게 나온다. 정 대표는 서울중앙지법이 윤 전 대통령의 체포방해 혐의에 5년 실형 판결을 내린 것을 놓고 “조희대 사법부에 대한 기대가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라고 했다. 해당 판결에서 내란죄 관련 판단은 없었다.
재작년에 만났던 정치인은 진보의 가치를 주장하지만 그 실현방식은 현실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책임을 져야 한다고도 믿는다. 적어도 그는 내면의 ‘태백산맥’은 넘은 것 같다. 그 태백산맥을 민주당도, 정 대표도 넘었으면 좋겠다. 당신들은 앞으로 당분간 이 나라의 주류다. 이제 태백산맥을 넘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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