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으로 삶의 균형이 무너진 뒤, 또 한 번의 시련처럼 암이 찾아오며 연기 활동은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방송가에서 이름이 조용히 사라지자, 사람들은 드라마 ‘대장금’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배우가 왜 어느 순간 화면에서 보이지 않게 됐는지 궁금해했다. 그 주인공은 배우 김희라다. 그는 치료와 회복을 거친 뒤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지난 6일 방송된 MBN ‘특종세상’에서 김희라는 현재 베트남에서 홀로 지내며 현지 가이드로 활동 중인 근황을 공개했다. 유방암 진단과 치료를 거친 뒤 그는 우연한 계기로 베트남에서 가이드 일을 시작해 지금까지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방송은 그의 베트남에서의 일상과 혼자 견뎌온 치료 과정, 그리고 이혼 이후의 시간을 함께 조명했다.
김희라는 가이드 일을 마치고 집에서 족욕을 하며 암 투병 이후 약해진 몸 상태를 설명했다. 그는 “다리가 퉁퉁 부어서 바지가 꽉 낀다. 몸이 (혈액) 순환이 잘 안 돼서 그런 것 같다. 아무래도 아프고 나니까 면역력이 떨어진 것 같다”며 “암 치료받을 때 몸이 굉장히 안 좋았었다. 그래서 더 붓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가 암을 처음 알게 된 과정도 전했다. “그때 방송이 너무 줄어서 생계가 흔들리겠더라. 음반 작업을 하면서 행사라도 뛰려고 했는데, 일을 준비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며 “잠깐만 나갔다 와도 너무 피곤했다. 샤워하는데 조짐이 이상해서 병원에 갔더니 암이라고 하더라”라고 떠올렸다.
2020년 당시 진단 결과는 유방암 2기 말이었다. 그는 “항암 치료를 3주 간격으로 총 18번 받았다”며 “(방사선 치료를) 한 번 받고 나면 다 토하고 기어서 다녔다. 온몸이 부어서 일어서지도 못했다”고 고된 치료 과정을 전했다.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마친 뒤에도 오랜 회복 기간이 필요했고, 약 5년의 투병을 거쳐 완치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투병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으로는 외로움을 꼽았다. “이혼한 지 10년이 넘었다”는 그는 치료 당시를 떠올리며 “아플 때 옆에 가족이 없어 너무 무서웠다. 다른 사람들은 남편에게 병간호도 받고 응석도 부리지만 나는 온전히 혼자 버텨야 했다. 기댈 사람이 없다는 게 암 치료보다 더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완치 판정을 받은 뒤에도 연기 활동을 바로 이어가기는 쉽지 않았다고 했다. 김희라는 “몸이 항암 약 부작용으로 지금의 반은 더 부었다. 그런 몸으로 배우 일을 하겠나”라며 현실적인 한계를 느꼈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새로운 일을 찾아 베트남으로 향했다고 밝혔다.
김희라가 감당할 수 없었던 또 하나의 현실적 한계는 양육이었다. 이혼 뒤 양육권을 갖고 두 아들을 데려왔지만, 생계를 위해 밤샘 촬영이 이어지면서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기 어려웠다고 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큰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일 때 이혼했다. 양육권은 제가 가졌고 둘 다 제가 데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밤샘 촬영이 이어지던 시기, 아이들을 혼자 두는 시간이 늘면서 고민이 깊어졌다고 한다. 집에 돌아왔을 때 두 아들이 동네 불량배들과 어울려 있는 모습을 보고 더는 이대로 둘 수 없다고 판단해, 결국 전 남편에게 다시 맡길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을 보낸 뒤 빈방에 혼자 앉아 밤새 울었던 기억도 있다고 했다. 그는 “다음 날 아침까지 울 정도로 허전했다”며, 그 시간이 오히려 스스로 일어서야겠다고 다짐하게 된 계기였다고 덧붙였다.
김희라는 2003년 방송된 MBC 드라마 ‘대장금’을 비롯해 ‘이산’, ‘동이’, ‘왕가네 식구들’ 등 약 1800편의 작품에 출연하며 감초 역할을 맡아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얼굴이 됐다. 특유의 강한 눈빛과 정확한 발성은 작품마다 개성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데 힘을 보탰다.
이후 유방암 투병과 삶의 변화를 겪으면서 작품 활동은 자연스럽게 멈추게 됐다. 베트남에서의 생활은 그에게 하나의 선택이자 현실적인 결정이었다. 한국에서 방송이 줄어 생계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새로운 일을 찾아야 했고, 암 투병 이후에는 몸과 마음을 돌볼 수 있는 환경이 필요했다. 그는 현지에서 가이드 일을 하며 새로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으며, 방송에서 “기회가 되면 다시 연기를 하고 싶다”고 말하며 언제든 한국으로 돌아올 의지를 드러냈다.
김희라는 “아파서 쓰러져보니 돈이고 명예고 출세고 다 필요 없더라”라며 “아들들에게도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긴 시간의 투병과 공백을 지나 베트남에서 새로운 일상을 꾸려가고 있는 그는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다시 정비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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