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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길 [詩의 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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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11-01 06:00:00 수정 : 2025-10-31 01:4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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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종기

젊은 날에는

좋은 시인이 되고 싶어 몇 번이고

술 마시고 취해서 땅에 쓰러졌다.

바른 길 외치다가 감방에도 갔다.

종국에는 온몸에 상처만 쌓이고

나라를 멀리 떠나 외로워져서야 

나그네가 된 나에게 네가 다가왔다.

어두워 몸부림쳐도 외면만 하고

동반자 하나도 허용하지 않던 길,

그늘에 가려 추운 대답을 기다리면

그제야 눈길만 몇 개 보내주었지

그 갈증, 그 부끄러움 속에서 살았다.

 

천지가 가물거리는 나이에 와도

느린 발걸음의 길은 멀기만 한데

헐벗은 몸에서만 꽃이 핀다니

나이도 잊고 상처도 잊어야겠지.

시를 찾겠다고 입술을 깨물던 내 피가

혹시 보였니, 끈질긴 불면도 보였니?

고통만이 고통을 치유한다고 했지.

회복의 기미는 어디에도 없고

헤매던 불구의 혼을 감추고

모두 떠난 먼 길에 다시 나서리라.

 

-시집 ‘내가 시인이었을 때’(문학과지성사) 수록

 

●마종기

△1939년 도쿄 출생. 1959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시 발표 시작. 시집 ‘조용한 개선’, ‘두번째 겨울’, ‘변경의 꽃’,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 등 발표. 편운문학상, 이산문학상, 동서문학상, 현대문학상, 박두진문학상, 대산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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