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6년 7월1일 세계에서 두 번째로 출범한 성장주 시장인 코스닥(Korea Securities Dealers Automated Quotation)은 기술력은 있지만, 자금이 부족했던 중소·벤처기업엔 ‘희망의 무대’였다. 미국 나스닥(NASDAQ)을 벤치마킹한 이 시장은 ‘딜러 기반 자동호가 시스템’을 도입하며 자본시장 혁신의 상징으로 출발했다. 그런데도 출범 30년을 앞둔 지금 코스닥은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이달 기준 코스닥에는 약 1800개 기업이 상장되어 있다. 이는 코스피 958개의 두 배 가까운 규모다. 하지만 시가총액은 약 454조원으로, 코스피 약 2922조원의 16% 수준에 불과하다. 상장사 수는 빠르게 늘었지만, 시장 가치의 성장 속도는 정체된 셈이다. 외국인 투자자 비중도 작다. 지난해 기준 코스닥 시장의 외국인 거래 비중은 13.0%, 이에 반해 코스피는 27.1%에 달한다. 국내 투자자의 단기매매 위주 거래가 시장을 지배하면서 코스닥에선 장기투자 자금이 머물기 어려운 구조가 굳어졌다.
반면 미국의 나스닥은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약 3600개기업(국제통화기금 2024년 통계 기준)이 상장되어 있고, 시총은 37조9800억 달러(한화 약 5경2400조원)로 코스닥의 117배에 달한다. 나스닥 지수는 2000년대 초반 1100대에서 최근 2만3000선을 바라보고 있다. 같은 기간 코스피는 800대에서 3700대까지 상승했지만, 코스닥은 여전히 800선을 중심으로 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2000년대 초 닷컴 버블 당시 코스닥 지수는 2925.50까지 치솟으며 정점을 찍었다. 거품은 곧 꺼졌고, 이후 25년이 지난 지금도 코스닥은 여전히 본질적 체질 개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시장은 여전히 개인투자자 중심, 단타 위주의 ‘투기판’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로 인해 우량기업이 외면하고, 외국인과 기관 투자자들이 코스피로 이동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코스닥의 약세는 단기적인 경기 요인뿐 아니라 구조적 요인도 크다. 특정 섹터, 특히 바이오·제약·2차전지 업종의 변동성이 전체 지수를 좌우한다. 이들 산업이 흔들릴 때마다 시장 전체가 불안정해지는 구조다.
또한 코스닥 상장사가 성장하면 코스피로 이전하면서 ‘우량자산 이탈’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이와 함께 부실기업 비율과 감사의견 거절 증가로 시장 신뢰를 갉아먹고 있다. 정보 공개가 미흡하고, 지배구조가 불투명한 기업이 여전히 적지 않다. 이러한 신뢰 부재는 코스닥이 ‘중소·벤처기업판 코스피’로 자리 잡지 못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9월 ‘국민성장펀드 보고대회’에서 “코스닥 시장의 신뢰가 떨어지고 있다”며 “근본적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코스닥 시장 정상화의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정부는 앞으로 코스닥을 개편하여 투기적 분위기를 줄이고, 부실기업을 신속히 퇴출하는 방안을 준비 중이다.
주목할 점은 연기금의 움직임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연기금은 코스닥 시장에서 2685억원을 순매수했다. 이는 지난 1월(2276억), 2월(1273억)보다 큰 규모로, 연기금이 본격적으로 코스닥 매수에 나선 것은 올해 들어 사실상 처음이다. 정부의 정책적 시그널이 연기금 매수세를 자극한 것으로 분석된다.
코스닥의 신뢰 회복과 기관 자금 유입은 단순한 수급 안정이 아니라 시장의 체질을 바꿀 수도 있는 핵심 동력이다. 연기금·기관·외국인투자자의 장기 자금이 유입될 때 비로소 코스닥은 ‘벤처·혁신기업의 성장 사다리’로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더불어 전 세계 시장과의 협력, 외국인 투자 확대가 이뤄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 나스닥처럼 해외투자자가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세제 혜택과 상장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또한 해외 거래소와의 협력, 공동 상장지수펀드(ETF) 개발 등으로 전 세계 자금 유입을 유도해야 한다.
또 국민연금 등 장기 기관투자자가 코스닥 투자 비중을 확대하도록 유인해야 한다. 일정 투자 비율을 의무화하는 제도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바이오·제약·2차전지 등 대표 기술기업이 외풍에 흔들리지 않게 안정적으로 성장할 육성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정부가 추진 중인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를 코스닥 중심 기술기업 투자로 연계시켜 코스닥의 정체를 깨는 새로운 주도 섹터를 창출해야 한다.
이와 함께 주가 조작 등 불공정 거래는 엄단해야 한다. 거래소·금융감독원·검찰이 협업해 주가 조작, 내부자 거래 등 불공정 행위엔 ‘원스트라이크 아웃’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시장의 투명성이 곧 외국인 투자 유치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상장기업 스스로 정보 공개 및 거버넌스(지배구조) 개선에 노력해야 한다. 감사보고서, 내부 거래, 최대주주 변경 등 중요 정보를 실시간 공개하는 등 공시 투명성을 강화해야 하고, 거래소와 금융당국은 지배구조 개선 가이드라인을 코스닥에 의무화하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코스닥은 지난 30년 동안 양적 팽창은 이루었지만, 질적 성장에는 실패했다. 상장사 수는 늘었지만, 시총·거래대금·외국인 비중은 정체되어 있다. 이제는 단순히 ‘중소기업 시장’이 아닌 ‘대한민국 혁신 생태계의 플랫폼’으로 코스닥을 재정의할 때다. 전 세계 자본의 유입, 기술기업 육성, 불공정 거래 근절, 투명한 지배구조, 통합지수 확대 등 다양한 개선방안을 마련하고 꾸준히 실행한다면 코스닥은 다시 한번 ‘한국판 나스닥’으로 거듭날 수 있다.
연기금의 코스닥 순매수가 시작되었다는 점은 희망의 신호탄이다. 시장 신뢰를 회복하고 전 세계 투자자에게 매력적인 시장으로 탈바꿈할 때 ‘코스닥 르네상스’는 현실이 될 것이다.
김정훈 UN SDGs 협회 대표 unsdgs@gmail.com
*김 대표는 현재 한국거래소(KRX) 공익대표 선임 사외이사, 금융감독원 옴부즈만, 유가증권(KOSPI) 시장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