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글루글루 앞 정원 하얀 설악초 물결/투명한 청풍호와 어울리는 가을 낭만 가득/청풍호반 케이블카 타고 비봉산 오르면 청풍호 풍경 파노라마로/자드락길 걷다 만나는 절벽아래 정방사 신비/국립 제천치유의숲에선 자연과 호흡하며 힐링/가스트로 투어 이용하면 제천의 맛 풍성하게 즐겨

선선한 가을바람 분다. 하늘을 끌어안은 거울처럼 맑고 투명한 푸른 호수 위로. 바람 따라 꽃보다 고운 물결 만드는 하얀 설악초 군락, 그 샛길 따라 호수까지 펼쳐지는 서정적 풍경은 사랑하는 이의 반가운 편지를 닮았다. 가을 길 느린 호흡으로 걸어 도시 소음 저만치 물러난 청풍호 앞에 섰다.


◆설악초 활짝 핀 청풍호를 걷다
청풍명월(淸風明月). 충북 제천의 청정 자연을 표현하는 말인데 참 잘 지었다. 푸른 바람과 맑은 달이라니. 이보다 어울리는 말이 또 있을까. 맑은 청풍호와 높고 푸른 비봉산이 어우러지는 절경을 즐기다 보면 번잡한 머릿속이 청명한 자연으로 가득 채워지니 제천은 가을 낭만을 즐기기 좋은 곳이다.
수산면 능강리 카페 글루글루에서 여행을 시작한다. 요즘 이곳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청풍호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여유로운 커피 한 잔을 즐길 수 있어서다. 무엇보다 카페 앞 호수 산책로가 인기다. 드넓게 펼쳐진 하얀 설악초 군락 속에 어른 키를 훌쩍 넘는 핑크색 대형 의자가 포인트로 놓여 연인들이 근사한 인생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수백평에 달하는 설악초는 카페 글루글루 주인장이 땅을 매입해 직접 심었다.

가을 향기 물씬 풍기는 설악초 오솔길을 걷는다. 찬란한 햇살을 받아 눈처럼 반짝이는 설악초, 청풍호, 가을바람이 한 장의 풍경으로 포개지니 마치 수채화 속을 걷는 듯 발걸음도 살랑거린다. 설악초는 늦여름부터 가을 내내 오래 피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꽃이 아니라 잎이다. 길쭉한 잎 가장자리가 하얗게 물들어 멀리서는 마치 꽃처럼 보인다. 자세히 살펴보면 꽃도 숨어 있지만 너무 작아 존재감이 없다. 설악초가 꽃보다 예쁜 식물로 불리는 이유다. 멀리서 보면 바위가 눈에 덮인 것처럼 하얗게 보여서 ‘설악초(雪嶽草)’라는 이름을 얻었다. 설악초 꽃말은 ‘순수한 마음’과 ‘조용한 기쁨’.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마음속 작은 티끌 하나까지 모두 씻어내 주니 영혼까지 한없이 순수해지는 기분이다. 설악초 군락 진입로에서 보면 청풍호가 한반도 지형처럼 보이는 점도 이곳의 매력 포인트.


청풍호 가운데 우뚝 솟은 비봉산에 오르면 산과 물이 어우러지는 청풍호 풍경을 제대로 만날 수 있다. 비봉산 정상까지 2.3km 구간을 운행하는 청풍호반 케이블카를 타면 된다. 청풍면 물태리 정류장에서 출발한 케이블카가 순식간에 고도를 높이자 발아래 펼쳐지는 절경에 탄성이 터진다. 약 10분을 날아 정상 정류장에 도착하니 오늘따라 날이 아주 맑아 시력이 갑자기 좋아진 것처럼 먼 산까지 또렷하다. 제천 시내 동쪽으로 금월봉, 작성산, 신선봉, 청풍대교, 소백산, 옥순대교가 파노라마로 펼쳐지고 서쪽으로는 저 멀리 용두산, 대덕산, 감악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고개를 뒤로 돌리면 모멘트 캡슐 전망대 너머 충주시 쪽으로 월악산, 악어섬, 참실리 마을이 어우러져 그림 같은 풍경을 선사한다. 해발 531m 비봉산은 봉황새가 알을 품고 있다가 먹이를 구하려고 비상하는 모습과 닮아 이런 이름을 얻었다. 비봉산 정상에 서면 사방이 짙푸른 청풍호로 둘러싸여 마치 넓은 바다 한가운데 섬에 오른 기분이다.

◆자드락길 걸을까 치유의숲 갈까
비봉산 정상에서 보이던 아름다운 청풍대교를 건너 구불구불 산길을 20분가량 달리면 깎아지른 신비한 절벽 의상대를 머리에 이고 있는 천년고찰 정방사에 닿는다. 능강교~정방사로 이어지는 제천 청풍호 자드락길 2코스(총거리 1.6㎞·총소요시간 90분)의 종점이기도 하다. 자드락길이란 ‘나지막한 산기슭의 비탈진 땅에 난 좁은 길’이란 뜻. 청풍호 주변의 뛰어난 풍광과 약초 향기 그윽한 산자락을 걷는 길로 모두 7개 코스가 마련돼 있다. 승용차로 정방사 입구까지 갈 수 있다. 주차장에서 10분만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 눈이 휘둥그레지는 풍광이 등장한다. 금세 무너질 것 같은 험한 절벽 아래 좁은 길을 따라 정방사가 놓였기 때문이다. 의상대 절벽 밑으로 법당, 칠성각, 유운당, 석조관음보살입상, 석조지장보살상, 산신각, 종각 등이 등장한다.

절벽 이름이 의상대인 이유가 있다. 금수산 자락 신선봉이 청풍호 방향으로 뻗어 내린 능선 위에 자리한 정방사는 신라 문무왕 2년(662) 의상대사가 창건한 천년 고찰이다. 재미있는 얘기가 전해진다. 의상대사가 도를 얻은 뒤 절을 짓기 위하여 지팡이를 던지자 이곳에 날아와 꽂혀서 절을 세웠단다. 절벽 앞에 우뚝 선 석조관음보살입상이 아주 신비로운 풍경을 자아내 기도를 드리는 이들이 많다. 원통보전 뒤 절벽 틈의 석간수를 꼭 마셔봐야 한다. 단숨에 갈증을 잊게 할 정도로 약수가 차고 달콤한데,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다니 신기하다. 사실 이곳은 숨겨진 ‘노을 맛집’. 해 질 녘 정방사를 찾아 법당 앞마당에 서면 청풍호 물줄기와 이를 겹겹이 둘러싼 능선들 너머로 웅장한 모습의 월악산 영봉이 노을 속에 빛나는 환상적인 풍경을 만난다.

정방사에서 다시 동쪽으로 20분을 차로 달리면 깊은 숲의 향기가 진정한 힐링을 선사하는 국립 제천치유의숲이 기다린다. 몸과 마음이 지친 이들에게 이곳은 어머니 품처럼 편안한 안식처를 제공한다. 산세가 수려하고 기암절벽이 절경을 이룬 금수산 자락에 있어 음이온 가득한 피톤치드로 샤워하며 온전히 나를 마주하는 시간을 만들 수 있다. 건강치유숲길(0.4㎞·15분), 음이온치유숲길(0.6㎞·10분), 숲내음치유숲길(0.5㎞·20분), 자작나무숲길(0.2㎞·5분) 등 다양한 산책로가 마련돼 천천히 명상하며 자연과 호흡하기 좋다. 건강치유숲길을 걷는다. 데크길이 편안하게 놓여 노약자, 휠체어 이용자도 편하게 산책할 수 있다.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마시자 건강한 자연이 폐속 깊숙한 곳까지 전달되며 묵직하던 머리를 금세 맑게 만들어 준다. 음이온치유숲길은 계곡 주변부에 조성된 숲길로 다량의 음이온이 방출되는 쉼터에서 명상을 즐길 수 있다. 퇴계 이황 선생의 건강 비법인 ‘활인삼방 숲테라피’와 몸에 좋은 ‘사상체질 차테라피’ 등 건강과 힐링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건강한 음식 만나는 제천 가스트로 투어
조선시대 한약재가 거래되던 3대 약령시 중 한 곳이 제천이다. 산이 많아 풍부한 한약재를 쉽게 얻을 수 있었기에 음식에 약초를 넣어 먹는 약선 음식이 일찍부터 발달했다. 이런 제천의 건강한 약재와 채소를 바탕으로 탄생한 제천 특유의 음식 브랜드가 ‘약채락(藥菜樂)’이다. ‘약이 되는 채소를 먹으니 즐겁다’는 뜻.
제천시가 선정한 약채락 음식점은 모두 16곳이다. 이 중 청풍면 청풍호로 약채락성현으로 들어서자 보글보글 끓는 버섯불고기전골에서 피어오르는 한약재 냄새가 비강으로 파고든다. 다양한 버섯, 신선한 제철 야채에 두부를 숭숭 썰어 넣고 맨 위에는 얇게 썬 한우가 고명처럼 놓여 식욕을 자극한다. 국물 한 수저 입으로 밀어 넣자 심연처럼 그윽한 육수가 혈관을 타고 흐르며 제천의 건강한 자연을 온몸에 전한다. 떡갈비와 더덕구이도 인기 메뉴. 기름기가 조르르 흐르는 떡갈비는 육즙이 가득해 한 입 베어 물면 입꼬리가 귀에 걸리고, 흙 내음 가득한 더덕구이는 밥 한 공기를 순식간에 비우게 만든다.


새터오리촌에서는 오리로 만든 모든 음식을 즐길 수 있다. 한방오리누룽지백숙과 한방오리보쌈이 인기 메뉴. 오리고기는 흐물거릴 정도로 푹 삶아 씹을 것도 없이 입속에서 사라지는 신기한 경험을 한다. 백숙을 주문하면 나중에 나오는 오리죽을 꼭 먹어봐야 한다. 국물이 자작한 오리죽은 간이 슴슴하면서 깊은 육향이 우러나 엄지가 저절로 치켜 올라간다.

제천 가스트로 투어 상품으로도 제천의 맛을 즐길 수 있다. 걸어서 여행하면서 제천 최고의 맛집을 찾아다니는 미식여행으로 시내권 A코스(덩실분식~마당갈비~상동막국수~샌드타임~빨간오뎅), 시내권 B코스(대장금식당~상동막국수~아침햇살 떡 베이커리~빨간오뎅~제천맥주), 의림지권 A코스(호반식당~커피플러스 제이~다원애~낭만짜장), 의림지권 B코스(오디향~카페피노~카페꼬네~약선재)로 구성됐다.

치유도시 제천의 특색을 살린 건강하고 다양한 음식으로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4인 이상 예약 시 투어가 진행되며 시내권 코스 1인 2만6000원, 의림지권 코스 1인 2만7500원에 맛있는 음식들을 배불리 먹을 수 있다. 이 중 다원애는 쌍화차가 일품이다. 각종 한약재로 짙게 우려낸 쌍화차 한 잔 마시자 여름내 실종된 기력이 보강되는 기분이다. 낭만짜장은 감칠맛 넘치는 짜장면의 소스가 중독성이 있다.


의림지권 투어는 제천10경 중 제1경인 의림지 등도 만날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이다. 의림지는 정확한 축조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신라 진흥왕(540~575) 때 악성 우륵이 용두산에 서서 흘러내리는 개울물을 막아 둑을 만든 것이 이 못의 시초라 전해진다. 용추폭포 유리전망대에 서자 발아래로 장쾌하게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가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다. 의림지역사박물관에서는 축조 과정 등을 엿볼 수 있다. 소나무 691그루와 작은 개울이 어우러지는 의림지 솔밭공원도 걸어 보기를. 제2의림지 비룡담 저수지까지 이어지는 솔밭공원으로 들어서면 향긋한 솔향이 나른한 오후를 일깨우며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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