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추석 연휴는 유난히 길었다.
명절 연휴 기간이면 응급실의 풍경도 평소와 달라진다. 연휴 기간엔 주변 병원이 문을 닫는 경우가 많아 응급실을 찾는 사람도 늘어나는 것이 첫 번째 다른 풍경이다. 또 다른 풍경은 ‘효자의 증가’다. 모처럼 뵌 부모님이 평소와 다른 것을 발견해 부모님과 손잡고 병원을 급히 찾는 자녀들이 늘어난 것이다.
필자는 이번 추석을 포함해 오랜 기간 명절에 응급실 당직을 하며 다양한 환자를 만났다. 그 사례를 되짚어 보면, ‘효도’에 대해, 국가의 시스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몇 년 전 만난 80세 여성 환자는 갑작스러운 실어증과 우측 편마비로 응급실을 찾았다. 평소 지방에서 혼자 생활하던 그는 명절을 맞아 서울 자녀 집에 올라와 있던 차였다. 가족들이 곧바로 증상을 알아차리고, 발생 1시간 만에 병원으로 데려왔다. 중대뇌동맥 폐색에 의한 급성 뇌경색이었다. 신속하게 정맥 내 혈전용해술과 동맥 내 혈전제거술을 받았다. 발음 장애와 경미한 팔 마비는 남았지만, 평소처럼 홀로 있었다면 골든타임을 놓쳐 심각한 후유장애·사망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천운’이었던 셈이다.

반면 또 다른 80대 여성 환자는 방에서 쓰러진 상태로 발견돼 병원에 실려 왔다. 명절날 연락이 닿지 않자 자녀들이 집을 찾았다가 발견한 것이다. 평소 혼자 살며 하루에 한 번 정도 자녀와 통화를 했고, 마지막 통화가 24시간 전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정확한 발병 시각을 알 수 없으니 결국 초급성기 치료를 받지 못했다. 영상 검사에서는 이미 광범위한 뇌경색이 확인됐다. 그는 결국 식물인간 상태로 요양병원으로 전원됐다.
운이 좋은 사례도 있다. 75세 남성은 명절 두 달 전부터 두통, 보행 장애, 기억력 저하가 있었다고 한다. 혼자 농사를 지으며 지내는 그는 허리디스크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이를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나 명절에 부모님댁을 방문한 자녀들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아버지가 다리를 끌며 걷는 모습이 이전과 다르게 보인 것이다. 자녀들은 아버지에게 세세하게 물어봤고, 증상이 점차 악화해온 것을 확인했다. 응급실에서 촬영한 뇌영상에서 그의 뇌종양이 확인됐고, 환자는 수술을 받게 됐다. 세심한 관찰이 불러온 행운이다.
명절 응급실은 이처럼 평소보다 다양한 환자로 붐비고, 그 안에서 여러 극적인 상황이 펼쳐진다. 한편으로는 가족과 함께 있어 빠른 발견과 치료가 가능해지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늘어난 독거노인으로 인해 발견이 늦어져 안타까운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명절뿐 아니라 24시간 365일, 서로의 안부를 묻고 건강을 챙기는 가족의 세심한 돌봄이 중요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에 앞서 고령층의 건강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응급 상황에서도 신속히 치료받을 수 있는 국가적 시스템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즉각적인 대응이 환자의 생사, 삶의 질을 좌우하는데 이를 반기·분기에 한 번 만나는 가족들에게만 의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독거노인을 위한 주기적인 안부 확인, 응급 알림 시스템, 지역사회 기반의 건강 모니터링 등이 필요한 이유다.
명절은 단순히 가족이 모여 즐겁게 보내는 시간에 그치지 않는다. 때로는 부모님과 다른 가족의 건강 이상을 가장 먼저 발견할 소중한 기회이기도 하다. 또한 이 시기, 혼자 계신 어르신의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도 필요하다. 개인적인 ‘효도’에 더해 사회적 시스템으로 구축돼야 모두의 사회안전망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김태정 서울대병원 신경과·중환자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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