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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의 미래] 불확실성 해법은 신뢰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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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10-09 23:17:26 수정 : 2025-10-09 23: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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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정부 발표 미래 보고서
20년 뒤 4가지 시나리오 전망
기후대응·사회적 신뢰 핵심축
신뢰 바탕 공동 회복력 길러야

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대다. 경제·사회·산업·민주주의 등 어느 한 부문도 예측이 쉽지 않다. 특히 외부에서 오는 불안 요인은 점점 커지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관세전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가자 전쟁 등은 전 세계 불확실성을 증폭시키고 있다. 슬프게도 불확실성은 냉소주의를 키운다. “어차피 안 될 거야”라는 말이 곳곳에서 들린다. 우리 모두 공포와 냉소 속에서 서서히 잠식돼 가고 있다.

이런 시대에 핀란드 정부가 지난 9월 발표한 미래 전망 보고서를 읽었다. 1993년부터 주기적으로 작성된 보고서로 핀란드 주요 관계부처와 의회 내 중장기 의사결정 과정을 지원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올해 보고서는 2045년 세계 모습을 전망했다. 수많은 미래 전망 보고서가 쏟아지지만, 이 문서는 오늘날의 불확실성을 ‘바뀌어야 하는 구조적 현실’로 진단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윤원섭 녹색전환연구소 선임연구원

보고서는 2045년 세계를 크게 4가지 시나리오로 그려냈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가장 긍정적이다. 불신으로 찢겼던 세계가 느슨한 신뢰의 끈을 되찾는다. 다자주의와 민주주의가 회복됐고, 탈탄소 사회로의 전환 역시 전 세계적으로 이뤄진 시대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빅테크(거대기술기업)들이 주도하는 세계다. 엔비디아 같은 빅테크들이 정부와 동등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데이터가 힘인 세상이며, 개인정보 보호가 정치적 문제로 떠오른다. 보고서는 이러한 빅테크들이 견제를 받지 않고 방치될 경우 “시스템을 지배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낼 것”이라며 “많은 국가에서 민주주의가 침식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세 번째 시나리오는 각국이 경제·안보 등 필요에 따라 분절된 시대다. 국제협력이 약화됐고 다자주의는 사실상 이름만 남아 있다. 무역과 기술 그리고 데이터 흐름은 상호 간 정치적 동맹의 여부에 따라 제한된다. ‘안보’라는 단어는 더는 전쟁 방지를 위한 체계가 아니라 경제와 기술 자립을 확보하기 위한 방어적 프레임으로 작동한다. 결과적으로 국제정치의 언어는 협력에서 경쟁으로, 경쟁에서 봉쇄로 변한다.

마지막은 가장 암울한 시나리오다. 기후위기로 인한 생태계 붕괴, 신종 팬데믹(감염병 세계적 대유행) 등 복합위기가 발생하며 기존 국제질서와 사회 시스템이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무너진 시나리오다. 기후정책의 실행능력은 사실상 상실돼 버린 상태로 사람들은 ‘생존’을 중심으로 일상을 이어간다. 모든 국가 자원은 위기 대응과 치안 유지에 집중된다. 민주주의는 형식적으로만 기능한다. 유럽연합(EU)이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같은 주요 협력체들 역시 해체된 것으로 상정한다.

각 시나리오를 뒤집을 변수, 즉 ‘와일드카드’도 존재한다. 예측 불가능하지만 발생 시 매우 큰 파급력을 가지는 사건을 말한다. 가령 인공지능(AI)이 국가 차원의 예산 편성 등 실질적 정책결정권을 갖게 되거나, 사이버전쟁 등으로 인터넷이 붕괴하는 사건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보고서가 제시한 4가지 시나리오는 서로 다른 길을 걷지만 공통적으로 기후대응과 사회적 신뢰가 핵심축으로 설정돼 있었다. 눈길이 가는 단어는 ‘신뢰’였다. 기후위기, 기술변화, 인구구조 변화 등은 피할 수 없는 사건이며, 이에 대한 대응 수준은 사회 내부 협력과 포용 그리고 민주적 역량에 달렸다는 것이 보고서의 결론이다.

신뢰가 유지되는 사회는 불확실성이란 파도를 견딜 수 있으나, 신뢰가 무너진 사회는 기술 수준이나 경제력에 무관하게 취약해진단 것. 따라서 거버넌스 혁신과 시민역량 강화에 초점을 맞춰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 보고서의 제언이다.

핀란드의 보고서를 덮으며 한국 사회가 직면한 복합위기의 본질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을 다루는 역량을 기르는 일이다”란 보고서 속 문장이 강렬히 다가온 이유다.

불확실성은 피할 수 없지만, 그 불확실성을 함께 다룰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일은 가능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를 믿고 함께 대응할 수 있는 공동의 회복력을 기르는 것이다.

 

윤원섭 녹색전환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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