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민심을 흔든 ‘쌀값 급등’이 향후 어떤 흐름을 보일지가 농가와 소비자 모두의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20㎏ 한 포대 소매가격은 6만7000원을 돌파하며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정부는 “10월 중순 본격적인 수확기에 들어서면 가격이 안정될 것”이라고 전망하지만, 시장에서는 “단기간에 큰 폭의 하락은 어렵다”는 신중한 목소리가 더 크다.
◆도대체 왜 이렇게 올랐나?
9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쌀값은 매년 7~9월 사이 지난해 생산된 쌀 재고가 소진되며 오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올해 상승 폭은 이례적이다. 소매가격은 9월 한 달 만에 11% 이상 뛰었다.
핵심 원인은 시장 재고 부족이다. 지난해 정부는 쌀값 하락을 막기 위해 비축분 36만t에 더해 26만t 이상을 추가로 매입했다. 초과 생산량(5만6000t)의 4배에 달하는 물량을 흡수한 셈이다.
방출 시점이 늦어지면서 시장에선 공급 공백이 발생했다. 여기에 조생종 햅쌀 출하가 지연되면서 가격 상승 압력은 더욱 커졌다.
◆농민들 “밥 한 공기 쌀값 ‘300원’ 보장해야”
정부는 올해 기상 여건이 양호해 단위 생산량이 전년 대비 2~3%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전체 생산량은 335만~360만t으로 지난해와 유사하거나 소폭 늘어날 전망이다.
소비 감소 추세까지 감안하면 ‘과잉 생산’ 구간에 들어설 가능성도 있다. 10월 중순 이후에는 가격이 완만히 조정될 것이라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하지만 농가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지난해 수확기 가격 급락으로 순수익이 크게 줄었던 데다, 올해 가격 상승분 역시 이미 낮은 가격에 판매한 농가들에는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불만이 크다.
농민들은 생존권을 위해 밥 한 공기 300원을 받게 해 달라고 한다. 그러려면 쌀 한 가마니(80㎏)에 24만원은 돼야 한다.
이들은 “수확기 전부터 정부 개입으로 가격이 사실상 결정돼버리는 구조가 불합리하다”고 지적한다.
◆정책 타이밍, 쌀값에 미치는 파급력 상당해
민간 유통업체들은 구곡 재고 부족으로 햅쌀만 조달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매입 단가 부담이 커진 데다, 소비자들도 20㎏ 7만원에 육박하는 쌀값을 감당해야 하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저소득층 식생활 안정에도 직격탄이 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상황을 단순한 생산량 문제가 아닌 구조적 불균형으로 진단한다.
“정부가 수요보다 많은 물량을 매입하고도 적기에 방출하지 않아 시장 왜곡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정책 타이밍이 쌀값에 미치는 파급력이 크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라는 분석이다.
◆쌀값 향방 가르는 3가지 변수
쌀값 향방은 크게 3가지 변수에 달려 있다.
우선 정부가 얼마만큼의 물량을 언제 시장에 푸느냐가 최대 변수다.
최근 도입한 쌀을 빌려주고 차기 수확기 반납받는 방식이 가격을 급격히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공급을 늘리는 효과를 낼 수 있을지가 시험대에 올랐다.

현재는 작황이 양호하다는 평가가 많지만, 후반기 기상 악화나 병충해 발생 시 생산량이 예측보다 줄 수 있다.
매년 반복되는 쌀값 문제의 근본 원인은 ‘예측 불가능한 정책’이라는 지적이 많다.
농가와 소비자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중장기 로드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문가들 “쌀값 급등, 농가·소비자 어느 한쪽만의 문제 아니다”
한 전문가는 “지금의 쌀값은 단순한 물가 문제가 아닌 식량안보 문제”라며 “생산 기반이 붕괴되지 않도록 일정 수준의 가격 보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구곡 재고가 거의 바닥난 상황에서 소비자는 햅쌀 가격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며 “가격 탄력성을 약화시켜 급등을 부른 구조적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정부의 대여 방출은 정교한 개입 방식이지만, 시장에서 잘 작동할지는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며 “밥 한 공기 쌀값 300원이라는 사회적 합의점을 두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타협점을 찾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쌀값 급등은 농가와 소비자 어느 한쪽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의 정책 타이밍, 구조적 수급 불균형, 소비 감소 추세가 맞물려 만들어낸 복합적 현상이다.
10월 중순 이후 가격이 점진적으로 안정될 가능성이 있다.
‘불확실한 정책 신뢰’라는 뿌리 깊은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비슷한 논란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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