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투수’라는 오명을 단숨에 날려버리는 쾌투였다. 패배는 물론 무승부조차 허용되지 않는 절체절명의 한 판 승부에 선발 등판이라는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올랐지만, 본인의 공에 믿음이 있었다. 팬들도 믿었다. 마운드에 오른 모습을 2023년 이후 잘 보여주지 못해서 그렇지 마운드에 오르기만 하면 누구보다 뛰어난 투수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건강하기만 하면 NC를 넘어 KBO리그 NO.1 토종 에이스라고 해도 무방한 투수. 그가 왜 NC가 자신에게 7년 132억원이라는 거액을 비FA 다년계약으로 안겨줬는지 여실히 증명했다. 구창모(28) 얘기다.

구창모는 6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삼성과의 2025 KBO리그 포스트시즌 와일드카드 결정전 1차전에 선발 등판해 6이닝 5피안타 무4사구 3탈삼진 1실점 호투로 NC의 4-1 승리를 이끌었다.
이날 구창모의 투구 환경은 그리 좋지 않았다. 경기 전 쏟아진 비로 경기가 40분간 지연된 것. 컨디션 유지에 애를 먹을 만했지만, 어느덧 프로 데뷔 11년차의 베테랑인 구창모에겐 그리 큰 변수가 되지 않았다. 구창모는 “올 시즌 등판하는 경기마다 비가 내려서 익숙했다. 오히려 몸 풀기 전에 경기가 지연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구창모는 이날 경기에서 압도적인 피칭을 보인 건 아니었다. 포심 패스트볼 최고 구속이 146km에 그칠 정도로 빠르진 않았지만, 이를 뒷받침해줄 칼날같은 제구력이 있었다. 그리고 130km 초반대에 형성되는 슬라이더가 일품이었다. 여기에 특유의 디셉션에 공을 던지는 왼팔을 뒤로 많이 빼지 않은 채 어깨와 팔꿈치의 회전을 작게 그리며 나오기 때문에 타자 입장에서는 공이 갑자기 날아오는 느낌을 들게 만든다. 130km 초반대의 카운트를 잡는 슬라이더가 ABS존에 절묘하게 걸쳐서 들어오기 때문에 손도 대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 때문에 이날 산성 타자들은 볼카운트 싸움을 불리하게 가져갈 수밖에 없었다.
매이닝 안타를 맞았지만, 차분한 위기 관리능력을 바탕으로 산발 처리했다. 1회에도 선두타자 이재현에게 안타를 맞았지만, 김성윤을 삼구삼진으로 처리한 뒤 구자욱을 병살타로 막았다. 김성윤은 스트라이크존 바깥쪽 경계선을 스치는 절묘한 직구를 던져 잡았고, 구자욱은 바깥쪽 승부를 펼치다 허를 찌르는 몸쪽 공을 쑤셔 넣어 범타를 유도했다.

5회 2사에 첫 실점이 나왔다. 4-0으로 앞선 상황에서 이성규에게 좌월 솔로포를 맞았다. 흔들릴 법 했지만, 구창모는 후속 타자 류지혁을 내야 땅볼로 막으며 이닝을 끝냈다.
6회에도 1사 후 김성윤에게 우전 안타를 내줘 위기감이 고조됐다. 후속타자가 삼성이 자랑하는 구자욱, 디아즈였기 때문. 그러나 구창모는 두 타자를 내야 땅볼로 처리하며 6이닝 1실점 퀄리티스타트를 완성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완수했다. 6회를 마무리하고 마운드를 내려가는 구창모를 향해 NC 원정 팬들은 기립해 연호했고, 그는 밝은 표정으로 마운드에서 내려갔다.

경기 후 구창모는 “내 공에 믿음이 있었다. 삼성라이온즈파크가 타자 친화 구장인 데다 삼성 타선에 홈런 타자가 많지만, 오히려 공격적으로 대응하며 경기를 풀어갔다”고 말했다. 이어 “포스트시즌 승리는 (2020년 한국시리즈 이후) 5년 만이더라”며 “오늘 경기에서 지면 탈락하는 상황이었지만 즐긴다는 마음으로 경기에 임한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소감을 밝혔다.
2015년 NC 입단 후 구창모는 디셉션과 구속에 비해 빼어난 구위, 칼날 제구력을 앞세워 2019년 10승7패 평균자책점 3.20으로 잠재력을 터뜨렸다. 2020년엔 전반기까지 9승 무패 평균자책점 1.74를 기록하며 리그를 맹폭했다. 왼판 전완부 미세 염증으로 후반기를 통으로 쉬었으나 그해 가을야구에 돌아와 한국시리즈에서 환상적인 피칭을 선보이며 NC의 창단 첫 통합우승에 기여했다.

이후엔 부상과 복귀의 반복이었다. 2021년을 피로골절로 인해 통으로 쉬었다가 2022년 중반에 돌아와 11승5패 2.10을 기록하며 건강하기만 하면 정상급 투수임을 또 한번 증명했다. 데뷔 이후 단 한 번도 규정이닝을 채우진 못했지만, 건강하기만 하면 리그 최강의 좌완 선발 역할을 해주는 모습에 NC 프런트는 구창모에게 7년 132억원의 비FA 다년계약을 안겼지만, 이후로 또 다시 부상으로 실전 마운드에서 사라졌다. 계약 첫 해였던 2023년, 왼쪽 어깨, 왼쪽 팔꿈치 근육, 왼쪽 전완부 척골을 차례대로 다쳐 항저우 아시안게임 승선이 불발됐고, 군 면제 혜택을 받지 못한 그는 결국 상무에 입대했다.

군 제대 후에도 바로 1군 무대로 돌아오지 못했다. 구창모를 팬들이 ‘사이버 투수’의 현역 대표적인 예로 거론할 정도였다. 9월에야 돌아와 4경기 1승 평균자책점 2.51을 기록하며 ‘마운드 위에만 서면’ 위력적인 투수임을 스스로 입증한 구창모는 복귀 후 한 번도 5이닝 이상을 책임지지 못했지만, NC는 무승부조차 허용되지 않는 경기에 구창모를 냈고 구창모는 그 믿음에 부응했다. 구창모가 한 경기에서 6이닝 이상을 책임진 건 2023년 5월 11일 kt wiz전 이후 2년 5개월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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