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아베’라고 불릴 만큼 강경 우파 성향의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담당상이 4일 자민당 신임 총재로 뽑혔다. 일본은 현재 중·참의원 양원 모두 ‘여소야대’ 정국이지만 야권의 분열상이 극심한 만큼 이변이 없다면 오는 15일쯤 국회의 총리 지명선거를 거쳐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로 선출될 것으로 보인다.
다카이치 총재는 이날 도쿄 자민당 본부에서 열린 총재선거 결선투표에서 185표를 획득, 156표를 얻는 데 그친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을 누르고 신임 당 총재에 당선됐다. 다카이치 총재의 임기는 이시바 시게루 총리의 잔여 임기인 2027년 9월까지이다.

1차 투표에서 다섯 명의 후보 중 유일하게 세 자릿수 당원·당우표(119표)를 얻어 1위로 결선에 오른 다카이치 총재는 결선에서 의원표를 1차(64표) 때의 2배 이상인 149표를 얻어 고이즈미 후보를 따돌렸다. 당내 보수층의 견고한 지지 속에 그의 강경 우파 성향에 의구심을 가진 의원들 표도 상당 부분 흡수한 셈이다. 애초 당 안팎에서는 그가 당선될 경우 한국 등 주변국과의 관계가 껄끄러워지고 야당과 원만한 관계를 형성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다카이치 총재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우경 노선을 계승하는 정치인이다. 한국이 독도에 구조물을 더 만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발언하는 등 한국에도 강경한 자세여서 최근 수년간 훈풍이 불고 있는 한·일 관계에도 격랑이 예상된다.
남성 세습 의원이 많고 여성 정치인에 대한 장벽이 높은 일본에서 ‘유리천장’을 깨온 그는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 자리도 사실상 예약하게 됐다. 내각책임제인 일본에서는 다수당 대표가 국회의 총리 지명선거를 거쳐 총리로 선출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카이치는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를 정례적으로 참배하는 인사다. 이번 총재선거 과정에서는 향후 총리직에 오른 뒤 참배할지 여부를 분명히 밝히지 않았는데, 이는 선거 전략상 모호한 태도를 보였을 뿐이라는 견해가 많다.
선거전 중반 의원 지지세 확장에 한계를 드러내자 ‘보수 본색’을 공공연히 드러내기도 했다. 시마네현의 소위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표현)의 날’ 행사와 관련해 “원래라면 당당하게 장관이 나가면 된다”며 일본 정부 참석자를 정무관(차관급)에서 격상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야스쿠니신사 ‘A급 전범 분사론’에도 부정적 견해를 표명했다.
혼슈 서부 나라현 출신인 그는 소견 발표회에서 나라공원의 사슴 폭행 사건을 언급하며 “일본인의 기분을 짓밟고 즐거워하는 사람이 외국에서 온다면 뭔가를 해야 한다. 전통을 지키기 위해 몸을 던지겠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지난 7월 참의원(상원) 선거를 계기로 확산하는 배외주의에 기댄 발언으로 풀이됐다.
그는 지난달 19일 총재선거 출마를 공식화하며 “‘재팬 이즈 백’(Japan is back·일본이 돌아왔다)이라고 한 번 더 크게 외쳐야 한다. ‘일본을 한 번 더 세계의 정상으로’ 만들겠다는 높은 뜻과 불타는 듯한 마음을 가슴에 이 자리에 섰다”며 “일본의 국력을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와 같은 ‘일본 열도를 강하고 풍요롭게’라는 슬로건을 내건 그는 주요 공약으로 △위기관리투자·성장투자를 통한 강한 경제 실현 △방위력·외교력 강화 △자위대를 헌법에 명기하는 헌법 개정 등 차세대에 대한 책임 완수를 내걸었다. 불법체류자 대책 등 외국인 규제 강화를 위한 외국인 정책 사령탑 설치, 스파이 방지법 제정 등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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