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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최초 여성 철도 기관사 “기계는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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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10-04 17:09:48 수정 : 2025-10-04 17:09:47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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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세 야다브, 정년퇴임 계기로 BBC와 인터뷰
20대 女 엔지니어, 무작정 ‘철도’에 뛰어들다
오늘날 2000명의 후배 여성 기관사에게 ‘멘토’
“평생 내가 갈 길 알려준 신호등이 그리울 것”

“기계는 자신을 작동하는 이가 여성인지, 남성인지 모릅니다. 그저 작업자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을 뿐입니다.”

 

인도 최초의 여성 철도 기관사가 60세 정년을 맞아 물러나며 언론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인도는 인구가 14억명이 넘어 세계에서 가장 많고, 국토 면적도 세계 7위로 한반도의 무려 16배에 해당한다. 이처럼 ‘대국’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인도에는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부설되기 시작한 거대한 철도망이 형성돼 있으며, 매일 수천대의 열차가 수백만명의 승객을 인도 각지로 실어 나른다. 전국 방방곡곡에 닿지 않는 곳이 없을 뿐더러 운임까지 저렴한 철도는 종종 인도의 ‘생명줄’(lifeline)로 불린다.

 

인도 최초의 여성 철도 기관사 수레카 야다브. 1989년 화물 기차 운전으로 시작해 36년간 일하고 최근 60세 정년을 맞아 은퇴했다. BBC 홈페이지 캡처

BBC 방송은 2일(현지시간) 인도 철도 기관사 수레카 야다브(60)와의 인터뷰를 보도했다. 인도에서 여성으로는 처음 열차 기관차의 조종사가 된 그는 36년간 일한 정든 일터를 최근 떠났다. 1965년 10월 태어나 어느덧 60세 정년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20대 女 엔지니어, 무작정 ‘철도’에 뛰어들다

 

야다브는 인도 서부 마하라슈트라주(州)의 작은 농촌 마을이 고향이다. 5남매 중 맏이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가족을 도와 고된 농사일을 해야 했다. 다만 진보적인 세계관을 지닌 부모 덕분에 학업을 중단하지 않고 꾸준히 공부해 상급 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전기 엔지니어 자격증을 따긴 했으나 1980년대 인도 여성에게 취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신문에서 열차 운전자를 뽑는다는 광고를 보고 무턱대고 찾아 갔어요. 그때까지 우리나라(인도)에 여성 기관사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습니다.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시험에 합격했다는 기쁨도 잠시, 처음 교육을 받으러 출근한 날 깜짝 놀랐습니다. 여성 훈련생이라곤 저 하나뿐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열차 통제실에 앉아 있는 여성 철도 기관사 수레카 야다브. 1989년 야다브가 첫 테이프를 끊고 36년이 흐른 오늘날 인도 철도에는 2000명 넘는 여성 운전자들이 종사하고 있다. BBC 홈페이지 캡처

그제서야 야다브는 자신이 몹시 어려운 선택을 했음을 깨달았다. 고생할 거라는 생각은 들었으나 더는 뒤를 돌아보지 않기로 작정했다. 어쨌든 그에겐 수입이 필요했고 돈을 벌기 위해선 직장에서 일해야 했기 때문이다.

 

“처음 몇 년 동안은 정말 고생을 많이 했어요. 훌륭한 열차 운전자가 되는 비법을 가르쳐주는 교재나 교관은 없습니다. 그저 업무 현장에서 직접 경험하고 배우는 수밖에요.”

 

24세 때인 1989년 화물 기차에서 처음 보조 운전사로 경력을 쌓기 시작한 야다브은 열차 운행 도중 접하는 여러 신호를 해석하고 어떤 문제가 벌어질 수 있는지 예측하는 능력을 길렀다. 이를 통해 막상 위기가 닥쳤을 때 무사히 모면할 수 있는 노하우도 체득했다. 마침내 1996년 야다브는 열차 운행을 제어하는 중추 신경이라 할 기관차 조종사로 올라섰다.

 

인도 최초의 여성 철도 기관사 수레카 야다브(왼쪽)가 정년퇴임하기 전 마지막으로 출근한 날 급행열차를 몰고 종착역인 뭄바이 역에 도착한 직후 동료와 후배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BBC 홈페이지 캡처

◆“평생 내 갈 길 알려준 신호등이 그리울 것”

 

“힘들었던 점이요? 폭우와 그에 따른 선로 침수 같은 예상치 못한 지연이나 사고 때문에 식사 또는 퇴근 시간을 예측할 수 없는 경우에 특히 그렇죠. 어떤 열차나 역사는 여자를 위한 화장실과 탈의실 등 시설이 부족했고요. 두 아이를 낳아 길렀는데 임신 중에도 계속 일해야 했던 점은 그렇다 쳐도 직업 특성상 오랜 기간 자녀와 떨어져 있을 때 참으로 견디기 어렵더라고요.”

 

다행히 남편 및 남성 동료들의 지원과 격려가 야다브에게 커다란 힘이 됐다. ‘직장에서 남녀 차별을 겪진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여성이란 이유로 다른 취급을 받는다고 느낀 적은 없다”며 “나의 존재를 이상하거나 불편하게 여긴 이들이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 주변 동료들은 그렇지 않았다”고 답했다.

 

오늘날 인도의 철도에선 2000명 넘는 여성 운전자들이 일하고 있다. 그들 사이에서 야다브는 말 그대로 ‘개척자’(trailblazer)로 통한다. 평소 “내가 쌓은 경력이 다른 누군가에게 영감이 되길 바란다”고 말해 온 야다브는 그의 바람대로 철도 기관사를 꿈꾸는 젊은 여성들을 만나 멘토 역할을 하는 소중한 기회도 가졌다. 야다브가 정년퇴임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출근한 날 급행열차를 몰고 종착역인 뭄바이 역에 도착하자 동료와 후배들이 일제히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며 축하의 마음을 전했다.

 

“솔직히 60세가 될 때까지 기차를 운전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직장을 떠나면 그간 철길에서 수도 없이 마주한 반짝이는 신호 불빛들이 가장 그리울 것 같아요. 그 작은 안내등이 이제껏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길을 찾을 때마다 도움을 주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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