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주황색 황화코스모스 따라오는 제주의 가을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관련이슈 디지털기획 ,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입력 : 2025-10-04 13:05:20 수정 : 2025-10-04 13:05:16
제주=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인쇄 메일 url 공유 - +

올레길 10코스서 만나는 자연이 빚은 걸작 사계해안/신기한 누룩빌레·형제섬·송악산 환상적으로 어우러져/산방정원엔 주황색 황화코스모스 만발/문도지 오름 오르니 목가적 풍경 가득/김창열미술관에선 예술감성 충전

 

산방정원 황화 코스모스.

살랑살랑 선선한 바람 따라 주황색 꽃들 한들한들 느리게 춤추며 손짓한다. 가을, 어서 오라고. 투명한 바다는 비온 뒤 맑게 갠 파란 하늘과 구름을 데칼코마니로 품고, 억겁의 세월 자연이 빚은 산방산은 녹색이 더 선명하고 신비롭다. 10월. 한낮 태양의 열기도 그리 뜨겁지 않으니 제주도 이제 가을인가 보다.

 

세계일보 여행면. 편집=김창환 기자
세계일보 여행면. 편집=김창환 기자
사계항에서 본 산방산.

◆자연이 빚은 걸작, 사계해안

 

제주는 여름 여행이 쉽지 않다. 습도가 높고 한낮 기온이 섭씨 35도를 오가니 자칫 여행이 ‘고행’이 되기 쉽다. 그래도 계절은 오고 가는 법. 10월로 들어서자 가을 향기 솔솔 피어난다. 아직 한낮에는 반팔 소매가 더 어울리지만 선선한 바람 불어 쾌적하니 드디어 걷기 좋은 계절이다. 제주에 많은 올레길이 있지만 가장 인기 높은 코스를 꼽으라면 서귀포시 안덕면을 지나는 10코스. 제주 최고의 해안 경관을 감상하는 코스로 꼽히기 때문이다. 산방산과 오름 군락, 비단처럼 펼쳐진 한라산의 비경을 즐기며 걷다 보면 바다에 누운 마라도와 가파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다가온다. 화순금모래해수욕장에서 시작해 썩은다리~황우치 해안~산방연대~하멜기념비~사계해안~송악산 정상과 둘레길을 지나 대정읍 하모리까지 이어지는 10코스는 총 길이 15.6㎞, 5~6시간 걸리며 난이도는 중급이다.

 

사계항 등대와 형제섬.

 

 

사계해안 누룩빌레.

풍광도 뛰어나지만 무엇보다 억겁의 세월 자연이 정교하게 조각한 걸작들이 끊임 없이 등장한다는 점이 10코스의 매력이다. 대표적인 명소가 용머리 해안으로 화산 폭발이 만들어낸 지층의 나이테가 선명해 마치 외계 행성에 불시착한 듯하다. 또 하나가 위도상 우리나라에서 가장 남쪽 해변인 사계해안이다. 작은 포구 사계항에서 여행을 시작한다. 오전에 내리던 비가 그치자 구름 뚫고 쏟아져 내리는 햇살 덕분에 사계항에 정박한 하얀 배들이 반짝반짝 빛난다. 그 너머로 밥그릇을 엎어 놓은 듯한 독특한 돔 모양의 산방산이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고, 고개를 바다로 돌리면 보이는 빨간 등대는 아름다운 포토존을 선사한다.

 

 

 

사계해안 누룩빌레.

해변을 따라 서쪽으로 걷다 보면 탄성이 터진다. 기기묘묘한 누런 암반이 드넓게 펼쳐지며 바다로 뻗어나간 풍경 덕분이다. 길게 누운 암석 덩어리가 누룩을 쌓아 놓은 것 같은 신기한 모양이라 제주에서는 누룩돌, 누룩빌레로 부른다. 너른 바위로 올라서자 여기저기에 사람이 들어가 앉을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구멍이 뚫려있다. 안으로 쏙 들어가면 재미있는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이곳은 제주도 형성과 화산 활동 역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질 명소, 하모리층이다. 제주 서남부 산방산~사계~하모리~모슬포 해안 일대에 넓게 퍼져 있는 하모리층은 화산활동 이전에 만들어진 퇴적층. 위로 올라갈수록 나중에 용암이 덮은 흔적도 관찰돼 용암 돔 형태인 산방산 형성 시기를 추정하는 근거가 된다. 또 지층 높이와 형태로 해수면 변화도 추적할 수 있어 학술 가치가 높다.

 

사계해안에서 본 형제섬.

바다에는 사계해안을 더 아름답게 꾸미는 형제섬이 신비로운 모습으로 떠 있다. 길게 누운 섬과 수직으로 솟아 오른 섬이 마치 사이좋은 형과 아우같다. 화산재와 용암이 차가운 바다와 만나 쌓이면서 형성된 응회환 지형으로 오랜 시간 파도와 해류가 깎아 걸작을 만들어 놓았다. 멀리서는 2개로 보이지만 주변 바위섬까지 합치면 6~7개로 이뤄졌다. 형제의 애틋한 우애가 전해진다. 부모를 일찍 여의고 고기잡이로 생계를 꾸려가던 형제는 어느 날 바다에 나섰다 풍랑을 만나 바다에 빠지고 만다. 형은 아우를 구하려 애썼고 아우도 형을 먼저 살리려다 둘 다 바다 속으로 잠겼다. 풍랑이 멎은 다음 날 바다에 없던 섬 2개가 생겨났는데 마주보며 서로를 부르는 형제처럼 서 있었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형제섬으로 부르기 시작했고 배가 형제섬 근처를 지날 때는 절을 하며 안전을 기원했다. 형제섬은 정동쪽을 바라보고 있어 아침 해가 뜰 때 사계해안을 찾으면 형제섬 사이로 빨간 태양이 솟아오르는 장엄한 풍경도 만난다.

 

산방정원 황화 코스모스.
명성목장.

◆황화 코스모스 따라 가을 오다

 

사계해변에서 산방산을 오른쪽에 두고 북쪽으로 5분 정도 차로 달리면 산방정원이 등장한다. 지도 앱에서는 찾을 수 없고 ‘사계리 475-1’을 찍고 가면 된다. 사유지로 입장료 2000원을 받는데 꽃과 산방산이 어우러지는 풍경이 워낙 뛰어나 아깝지 않다. 입구로 들어서자 ‘꽃과 함께하는 오늘이 당신의 추억 속에서 오래 피어나기 바랍니다’는 안내문이 여행자를 반긴다. 그 너머 산방산 아래 드넓게 펼쳐진 주황색 꽃밭은 황화 코스모스. 흰색, 핑크색 일반 코스모스보다 일찍 피고 잎이 더 조밀하다. 특히 아주 선명한 주황색이 파란 하늘과 극명한 대조를 이뤄 가을날 수채화를 보는 것 같다. 꽃밭으로 걸어 들어간다. 뺨을 스치는 바람에 비강으로 마구 파고드는 싱그러운 꽃 내음까지 더해지니 서둘러 온 가을을 맞는 가슴도 낭만으로 물든다. 일반 코스모스의 꽃말은 ‘순정’ ‘소녀의 마음’인데 황화 코스모스는 밝은 색 덕분에 ‘야생의 아름다움’이라는 꽃말을 지녔다.

 

문도지 오름 가는 길.
문도지 오름 정상.

꽃밭에서 예쁜 추억 하나 남기고 북쪽으로 25분 달리면 제주 여행자들이 잘 모르는 문도지 오름을 만난다. 차로 가는 길이 아주 좁고 험하며 내비게이션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 자칫 길을 헤매기 쉽다. 문도지 오름보다 명성목장을 입력하면 좀 더 쉽게 찾을 수 있으며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 식물원 방림원에서 라온CC 방면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가장 편리하다. 도로 끝지점에 명성목장을 알리는 표지석이 서 있다. 문도지 오름은 올레길 14-1코스에 포함된 곳으로 명성목장 사유지. 하지만 목장 주인의 배려로 오름에 오를 수 있다. 목장으로 들어서자 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목가적인 풍경이 등장한다. 목장 건물을 오른쪽에 두고 산길을 오르면 10분도 안 돼 정상이다. 방목된 말들 너머로 하얀 날개를 힘차게 돌리는 신창풍력발전기들이 그림처럼 섰고 차귀도, 당산봉 등 제주 서부 풍경과 한라산까지 파노라마로 펼쳐져 가슴을 시원하게 열어준다. 오롯이 나만 알고 즐기고 싶은 풍경이다. 해질 무렵 문도지 오름을 찾으면 차귀도 너머로 떨어지는 환상적인 저녁노을을 만난다.

 

김창열미술관.
김창열미술관.

◆‘물방울 화가’ 김창열을 만나다

 

문도지 오름에서 차로 10분 거리인 저지문화예술인마을에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이 있어 함께 묶어서 여행하기 좋다. 2021년 타계한 김 화백은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거장. 평생 ‘물방울’ 작품을 선보이며 세계 미술계에서 독자적 영역을 구축했다. 미켈란젤로가 소유했던 이탈리아 와이너리로 50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카사누오바 디 니따르디의 키안티 클라시코 2011 레이블에 김 화백의 작품이 담겼을 정도다. 와이너리는 매년 유명 아티스트를 선정해 레이블 제작을 맡긴다.

 

김창열 화백 동상.
김창열미술관.

김창열미술관이 제주에 건립된 이유가 있다. 그는 한국전쟁 중이던 1951~1953년 약 22개월 동안 경찰전문학교 소속 경찰관으로 제주에 파견됐는데 늘 “파리가 아니라면 제주에 작업실을 만들어 살고 싶다”는 말을 할 정도로 제주도를 사랑했다. 이에 김 화백은 1957~2013년에 작업한 대표 작품 220점을 제주도에 무상 기증했고 2016년 9월 미술관이 개관했다. 미술관으로 들어서자 독특한 건축미가 돋보인다. 물방울을 통해 ‘무(無)’로 돌아가고자 했던 작가의 철학을 반영해 돌아올 ‘회(回)’를 형상화한 구조로 디자인했다. 홍재승 건축가가 설계했으며 물, 돌, 빛, 그림자가 만나 자연과 인공이 조화를 이루고 건물 외부와 내부가 입체적으로 연결된다. 현재 ‘우연에서 영원으로: 김창열과 제주’ 전시회(2026년 3월 2일까지)가 진행 중이며 제주 체류 경험과 뉴욕·파리 활동 시기 작품을 엿볼 수 있다. ‘물방울의 방 1983-1985’ 전시회(11월 16일까지)에서는 기존의 스프레이 기법에서 벗어나 유화, 흑연, 한자 등 다양한 재료와 배경을 시도하며 회화적 깊이를 더한 그의 작품 세계를 만난다.

 

김창열미술관.
한라산아래첫마을 비비작작면.

제주 여행에서 먹거리를 빼놓을 수 없다. 안덕면 광평리 한라산아래첫마을에서는 건강한 제주메밀로 만든 냉면, 만두, 전을 즐길 수 있는데 비비작작면이 인기. 식당은 영농조합법인이 운영하며 마을 사람들이 직접 재배하고 제분한 메밀 100%로 만든다. 예쁘게 돌돌 말린 메밀면 위에 제주 제철 나물, 새싹, 버섯, 오이, 얇게 부친 계란 노른자 지단, 고추를 고명으로 얹은 비비작작면은 들깨와 김 가루를 대충 쓱쓱 비벼 섞어 먹으면 된다. 한 젓가락 입으로 밀어 넣자 구수한 제주 자연의 맛이 입안에 풍성하게 번져 흐뭇한 미소가 나온다. ‘비비작작’은 어린아이가 천진난만하게 낙서하듯 끄적거리는 것을 뜻하는 제주 방언으로 메밀을 비비작작 섞어먹는다는 뜻을 담았다.


오피니언

포토

아이유 '눈부신 미모'
  • 아이유 '눈부신 미모'
  • 수지 '매력적인 눈빛'
  • 아일릿 원희 '반가운 손인사'
  • 미야오 엘라 '시크한 손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