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와의 친분 바탕으로 ‘미국과 공조’ 주력
“가자 지구 위해 한 게 뭐가 있나” 대규모 시위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이끄는 극우 성향의 이탈리아 연립정부가 2022년 10월 출범 후 3년 만에 위기를 맞았다.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격으로 고통을 받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위해 이탈리아가 충분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이어진 것이다. 멜로니 내각의 친미(親美) 일변도 정책, 그리고 이탈리아를 제외한 영국·프랑스 등 서방 주요국들의 잇단 팔레스타인 국가 승인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3일(현지시간) BBC 방송에 따르면 이날 이탈리아 전역에서 노동자들이 총파업에 참여함과 동시에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이탈리아 내무부 집계에 따르면 로마, 나폴리, 밀라노, 토리노 등 29개 지역에서 적어도 40만명 넘는 시위대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행사를 주최한 노동조합 측은 경찰 추산의 4배에 이르는 160만명 이상이 참가했다고 주장했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돕기 위해 식량, 의약품 등 구호 물자를 싣고 지중해에서 가자 지구로 향하던 선단이 이스라엘 해군에 나포된 사건이 이탈리아 국민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선박 42척으로 구성된 이 선단은 ‘글로벌 수무드 함대’(GSF)로 불렸는데, 스웨덴 출신의 세계적인 환경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22) 외에 이탈리아 출신 활동가도 40명 이상 탑승하고 있었다. 이들은 선단 나포와 동시에 붙잡혀 이스라엘 군대에 의해 압송됐다.

이날 시위에 참여한 이탈리아 시민들은 이스라엘을 겨냥해 “대학살을 중단하라” “GSF에서 손을 떼라” 등 구호를 외쳤다. 반정부 파업에 동참한 어느 여성은 BBC에 “이탈리아 정부는 가자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며 “이제 시민들이 직접 개입해서 문제를 해결할 때가 되었다”고 말했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2년 전인 2023년 10월7일 가자 지구에 근거지를 둔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해 민간인 약 1200명을 살해하고 250명 넘게 인질로 붙잡아 가자 지구로 끌고 가는 충격적인 테러가 발생했다. 이에 이스라엘은 보복을 다짐하고 군대를 동원해 가자 지구를 공격했다. 처음엔 이스라엘의 자위권 행사를 지지했던 서방 국가들은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의 피해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며 차츰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2년 가까운 전쟁 기간 동안 어린이와 여성을 비롯해 팔레스타인 주민 6만6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이스라엘군이 가자 지구를 사실상 봉쇄함에 따라 주민들은 식량과 의약품 공급이 끊긴 채 극심한 기아 위기에 처해 있는 실정이다.
그러자 영국, 캐나다, 프랑스, 호주, 벨기에 등 서방 국가들이 일제히 팔레스타인을 이스라엘과 동등한 독립 주권국으로 승인하고 나섰다. 이른바 ‘2국가 해법’(two-state solution)에 대한 공개적 지지 선언을 통해 이스라엘에 외교적 압박을 가함과 동시에 그 고립화를 시도하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영국·프랑스와 달리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에 소극적이다. 멜로니 내각의 친미 일변도 성향, 무엇보다 총리 개인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맺고 있는 각별한 친분 때문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멜로니 총리는 이민, 낙태 등 사안에서 트럼프 대통령 및 미국 보수 진영과 비슷한 견해를 갖고 있다. 그 때문인지 서유럽 국가 지도자로는 유일하게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초대를 받았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 정책을 놓고 미국과 서유럽이 이견을 드러낼 때마다 멜로니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 편을 들었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발표한 가자 지구 평화 계획에 대해 멜로니 총리는 “이탈리아는 전적으로 환영한다. 중동 평화를 위한 트럼프 대통령의 노력에 감사를 드린다”며 강력한 지지 의사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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