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무역 협상이 여전히 교착 상태다. 한국으로서는 추석 연휴가 끝난 뒤 이달 말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참석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하기 전까지 미국과 합의점을 찾아 협상을 완료하는 것이 가장 좋은 시나리오지만, 일각에선 협상 장기화 우려도 제기된다.

웬디 커틀러 아시아소사이어티정책연구소(ASPI) 부회장은 2일(현지시간) 방영된 한미경제연구소(KEI) 대담 프로그램 ‘아이 온 코리아’에 출연해 “한국은 미국과 7월 무역협정에서 자동차 관세를 일본, 유럽연합(EU)과 같은 15%로 낮췄지만 최종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25%의 관세해 직면해 있고 이는 경쟁국인 일본과 EU에 비해 불리한 위치”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한국은 불과 6개월 전까지만 해도 미국에 수출하는 자동차 관세가 0%였기 때문에 이는 매우 아이러니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미국과 무역 합의가 발표된 EU나 일본에 비해 한국은 10%포인트 높은 자동차 관세를 물고 있고, 이들에게 적용되는 의약품 등에 대한 품목 관세 최혜국 대우도 받지 못하고 있다.
커틀러 부회장은 “한국 협상팀은 정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며, 수용할 수 있는 한계선을 정해놓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10월 말 APEC을 계기로 일본을 들러 방한할 예정이지만, 워싱턴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 불허 성향을 볼 때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이 정말 성사될지’는 한국과의 무역 협의 성사 여부에 달렸다는 평가도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한국과의 협상에서 물러서지 않을 기세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한국과의 협상 타결 여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다른 국가들과의 합의를 성사시키는 데 필요한 동력을 제공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상호관세의 정당성 여부가 법정 다툼의 대상이 된 상황에서 다른 국가들과의 관세 협상과 이행의 동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미국이 한국과의 협상을 트럼프 대통령의 뜻대로 밀어부쳐야 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美 상무, “받아들이거나, 관세 내거나”
양국은 7월 말 한국에 대한 상호관세율을 기존 25%에서 15%로 낮추는 데 합의했다. 대가로 한국은 3500억 달러(약 493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와 1000억 달러(141조원) 규모의 미국산 에너지 구매를 약속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트루스소셜을 통해 한국이 제공하는 자금으로 어떤 프로젝트가 추진될지는 자신이 결정할 것이며, 그 자금의 분배는 행정부가 통제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한국은 이같은 주장을 반박했다.

이 구조는 일본이 무역 합의를 이룬 조건과 유사하다. 3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 방식을 놓고 한국은 대출 보증과 같은 금융지원 방식으로 가능할 것이라고 이해했지만 미국은 최근 일본과 맺은 양해각서(MOU)처럼 보증이 아닌 현금 출자 방식을 요구하고 있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 장관은 최근 추가 무역 협상 과정에서 한국이 미국에 350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한 약속을 상향 조정해 일본의 투자 금액인 5500억 달러(약 776조원)에 근접하게 할 수 있다고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달 CNBC 인터뷰에서 “한국은 합의를 받아들이거나, 관세를 내야 한다”고 못박았다.
한국은 일본과의 단순 비교는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한국 경제 규모는 일본의 5분의 2 수준인데다 3500억 달러를 현금으로 마련하기 위해선 한국의 달러 외환보유액 가운데 80% 이상이 소요된다. 한국 정부는 미측 제안을 수용할 경우 한국이 금융 위기에 빠질 수 있다며 미국이 통화스와프 등의 조치를 마련하지 않으면 미국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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