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 단지 온라인 단톡방. 최근 며칠 사이 들어온 메시지는 하나같이 “또 신고가 나왔다”는 소식이다.
“마포 프레스티지자이 34평이 28억 2천, 7일 만에 신고가래요”
“마포래미안푸르지오도 21억 5천에 거래됐다네요”
단톡방을 지켜보던 40대 직장인 박모씨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24평형이 18억대였던 걸 기억하는 그에게, 20억을 훌쩍 넘긴 실거래가는 현실감이 없다. 박씨는 “집값이 빠질 거라는 부동산 전문가도 봤는데, 막상 우리 동네 거래가 이렇게 신고가를 찍는 걸 보니 불안해진다”며 “이러다 또 시기를 놓칠까 봐 마음이 급하다”고 털어놨다.
서울의 한 은행에 다니는 A씨는 “집값이 장기적으로 우상향할 거라 믿지만, 최근 몇 달 사이 3~4억씩 올라버린 가격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아내는 아이 학군 때문에 지금이라도 영끌해서 강동·광장동 같은 입지로 옮기자고 하지만, 남편은 이 가격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며 전세로라도 학군지에 들어가자고 한다”며 갈등을 전했다.
A씨는 “6억 대출을 받아 25억 아파트를 사는 게 투자로서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라며 “문재인 정부 시절 전세로 지내다 시기를 놓쳤다는 포모(FOMO·놓칠까 두려운 마음) 때문에 오히려 똥고집을 부리는 게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서울 아파트값이 4주 연속 상승폭을 키우며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4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9월 다섯째 주(9월 29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 대비 0.27% 올라 한 주 만에 0.08%포인트 상승폭이 확대됐다. 성동구(0.78%)·마포구(0.69%)·광진구(0.65%) 등 이른바 ‘한강 벨트’ 지역을 중심으로 강세가 뚜렷했으며, 송파·강동 등 강남권까지 오름폭이 커지면서 서울 25개 자치구 모두 상승세를 보였다.
수도권 전체로는 0.12% 상승했고, 성남 분당구(0.97%)와 과천시(0.54%) 등 핵심 지역이 상승세를 이끌었다. 전문가들은 “추석 이후에도 규제지역 추가 지정이 없으면 오름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세시장도 전국 0.06% 상승하며 매물 부족과 임차 수요가 겹쳐 동반 강세를 보였다.
집값 상승 심리에 집주인들은 매물을 거둬들였다. 아실 자료에 따르면 지난 2일 기준 서울 주요 구 아파트 매물은 한 달 전보다 크게 줄었다. 광진구 -16.5%, 성동구 -15.8%, 동작구 -11.6%, 마포구 -8.7% 등 주요 지역이 일제히 감소세를 보였다.
전세 시장에서는 ‘신규 진입 난민’이 속출하고 있다. 집토스에 따르면 7~8월 전국 아파트 신규 전세계약은 5만5368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28.6% 줄었고, 수도권은 서울 -30.4%, 경기 -33.4%로 감소 폭이 더 컸다. 반면 기존 거주지는 지키려는 움직임이 강해 갱신 계약은 23.7% 늘었고, 갱신요구권 사용 계약은 무려 83.2% 폭증했다. 전세 매물 자체가 줄면서 “새 전세는 실종되고, 기존 세입자만 눌러앉는” 양극화가 뚜렷해진 것이다.정부가 6·27 대책과 9·7 공급대책으로 공급 확대를 약속했지만 실제 입주까지는 최소 5년 이상 걸린다. 한 업계 관계자는 “단기적으로는 전세난이 매매 심리를 자극하는 구조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대출·공급 대책에도 서울 아파트값이 좀처럼 꺾이지 않는 건 시장 체질 변화, 유동성 확대, 실수요 조바심이 맞물린 결과”라며 “정부와 시장 간 힘겨루기가 본격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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