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법원장급 42명의 법관이 12일 전국법원장회의 임시회의를 갖고 “사법제도 개편은 국민을 위한 사법부의 중대한 책무이자 시대적 과제이므로 국민과 사회 전반에 미칠 영향을 충분히 고려하여 추진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폭넓은 논의와 숙의 및 공론화 과정을 거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사법개혁’이 지금처럼 제대로 된 공론화 과정 없이 밀실에서 진행돼선 안 된다는 우려를 표명한 것이다.

앞서 조희대 대법원장도 이날 ‘법원의 날’ 기념사에서 “사법부가 헌신적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재판의 독립이 확고히 보장돼야 한다”면서 “권력 분립과 사법권 독립의 헌법적 가치를 중심에 두고 국민 모두를 위한 올바른 길을 찾아 나가겠다”고 밝혔다. 법원장회의가 7시간 넘게 논의가 이어진 데는 사법부의 독립이 풍전등화의 처지라는 위기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민주당은 법원장들의 고언을 흘려들어선 안 된다.
법원장들은 민주당의 대법관 수 증원 방안과 관련, “충분한 숙고 없이 진행돼 사실심(1·2심) 기능 약화가 우려되며, 상고 제도의 바람직한 개편과 함께 논의돼야 한다”며 사실상 반대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관 수 증원은 상고심 제도 개편과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관 수는 4명만 늘리면 된다는 견해도 나왔다. 민주당은 현재 14명인 대법관을 26명까지 늘리는 잠정안을 마련했는데 왜 26명인지 구체적 근거도 밝히지 않았다. 밀실에서 결정해놓고 26명 방안이 공개되자 유출자 색출에 나서는 황당한 행태를 보였다. 대법관 후보추천위 구성과 판사 근무평정에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민주당 개혁 방안도 사법권 독립 침해 소지가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요컨대 사법 인력의 현실과 국민의 편의성 등을 충분히 논의해서 최적의 사법개혁 방안을 마련하자는 취지다.
지극히 당연한 얘기인데도 여권은 법원의 우려 목소리엔 귀를 막고 있다. 그러면서 위헌 소지가 있는 ‘내란 특별재판부’ 구성을 추진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사법부 위에 입법부가 있다’는 인식을 내보였다. 헌법의 삼권분립 원칙과 배치되는 위헌적 발상이다. 안건은 아니었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구성에 대해서도 법원장들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 그런데도 대통령부터 여당 대표까지 여권 전체가 헌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사법제도 근간을 바꾸려 한다. 헌정 체제의 위기라는 말이 과하지 않다.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법개혁은 독립적 헌법기관인 법원의 의견을 반영해서 추진해야 한다. 서두를 일은 더더욱 아니다.
법원도 왜 개혁의 도마 위에 올랐는지 성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지난 대선이 임박한 시기에 이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한 판결은 법원의 선거 개입 논란을 자초했다. 법원장들은 국민의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국민을 위한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 구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말에 그쳐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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