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외교의 최전선인 주유엔 대사에 차지훈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가 내정됐다. 지난 7월 이임한 황준국 전 대사의 후임이다. 그런데 외교관 전력은 사실상 전무하다고 한다. 알고 보니 차 변호사는 이재명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18기)다. 2020년 이 대통령의 변호인단으로 합류해 사법 리스크 중 하나였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의 무죄 취지 파기환송 판결을 끌어낸 인물이기도 하다. 2009년부터 8년 동안 성남시 고문변호사로도 활동했다. 보은 인사가 아닐 수 없다.

이 대통령은 앞서 정성호 법무부 장관, 조원철 법제처장, 오광수 전 민정수석, 차정인 국가교육위원장, 이찬진 금융감독원장, 위철환 중앙선거관리위원 후보자 등 6명의 사법연수원 동기를 공직에 발탁했다. 차 변호사가 7번째다. 안 그래도 이 대통령의 형사 사건을 맡았던 변호인들의 정부·대통령실 요직 기용은 10여명에 달할 정도로 차고 넘친다. 잡음이 이는 건 당연하다. 대통령과의 개인적 인연을 빼고는 딱히 발탁 이유를 찾기도 어렵다. 인재풀이 그렇게나 빈약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주유엔 대사는 직업외교관이 아니더라도 대통령이 전문성과 자질을 갖췄다고 판단해 발탁할 수 있는 특임 공관장 자리이긴 하다. 하지만 역대 유엔 대사를 살펴보면 1990년 4월 검사 출신 고(故) 현홍주 전 대사 이후로는 예외 없이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외교관이 발탁됐다. 보수와 진보 가릴 것 없이 전문성을 우선했다는 얘기다. 미·중 패권 경쟁에 이어 신냉전 고착화로 진영 간 대립과 갈수록 고도화하는 북핵 문제, 우크라이나· 가자지구 전쟁 등 국제 현안을 조율해야 하는 주유엔 대사의 역할은 막중하다. 여기에 한국은 지난해부터 2년 임기의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이며, 이달 한 달 동안 순회 의장국까지 맡고 있다. 과연 이런 보은 인사로 순발력 있는 업무 대처가 가능할지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
미국 조지아주에 구금됐던 한국 노동자 300여명이 12일 무사히 귀국했다. 우리 정부가 이들의 석방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미 백악관과 국무부, 이민세관단속국(ICE) 등과 불협화음을 겪으며 혼란을 거듭했다. 이 과정에서 적법한 상용비자(B1)를 가지고 활동했는데도 수갑과 쇠사슬을 동원해 구금당한 사례가 다수 확인돼 국민적 공분이 일었다. 한미동맹이 ‘쇠사슬동맹’으로 전락했다는 얘기까지 돌 정도였다. 만약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특별지시’가 없었다면 이번 구금 사태는 장기화했을 수 있다. 그랬다면 유엔을 통한 외교력 발휘도 필요했을 수 있다. 전 세계가 네트워크화한 상황이다. 유엔은 이런 네트워크가 총망라되는 장소가 아닌가. 그런 점에서 주유엔한국대표부를 책임지는 자리에 변호사를 발탁한 것은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 대통령이 강조해온 공정과 상식과 거리가 멀고 국민적 신뢰를 얻기도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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