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인 2021년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2001년 9·11 참사를 계기로 미국이 아프간을 침공해 점령한 지 꼭 20년 만의 일이었다. 아프간에 자유민주주의 그리고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신봉하는 친미(親美) 국가를 세우려는 시도는 진작 물거품이 됐다.
아프간 민족은 아무리 먹고살기 힘들지언정 누구 밑에서 간섭이나 지배를 받을 사람들이 아니었다. 19세기에 세계적 대제국을 건설한 영국도, 20세기 들어 공산주의 종주국으로서 미국과 쌍벽을 이룬 소련(현 러시아)도 아프간을 자기네 발밑에 두는 데 끝내 실패했다. 미국이라고 예외일 수 없었다.

아프간은 미국에게 이라크와 쌍둥이 같은 존재였다. 9·11 참사에 대한 보복과 반격 차원으로 개시한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에서 주적(主敵)이 된 나라가 바로 아프간, 이라크였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 도심에서 이슬람 세력의 테러로 수많은 시민이 죽거나 다친 9·11 참사는 미국 젊은이들의 애국심을 고양시켰다. 군에 입대해 테러 집단과 싸우려는 청년들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자 열기는 도로 식었다.
바이든은 아프간 완전 철군을 명령하며 “알링턴 국립묘지 아프간 전사자 묘역에 늘어선 비석들을 좀 보라”고 외쳤다. 아프간에서 미군 2400여명, 이라크에서 4500여명이 사망했다. 9·11로 목숨을 잃은 미국인은 3000명이 조금 못 된다.
미군이 떠난 직후 아프간은 다시 탈레반 손아귀에 들어갔다. 마침 당시 미군의 ‘서열 1위’ 장성에 해당하는 마크 밀리 합동참모의장(육군 대장)은 아프간 전쟁 참전용사 출신이었다. 젊은 시절 목숨 걸고 싸운 아프간을 허무하게 탈레반한테 빼앗긴 뒤 기자회견장에 선 밀리 장군은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세계 최강의 군대를 지닌 국가라고 해서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순 없는 법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며 국력이 절정에 달한 순간의 미국이 기존 전쟁부(Department of War)를 ‘방어’ 개념 위주의 국방부(Department of Defense)로 대체한 것은 그런 겸손함의 표현 아니었을까.

9·11 참사 희생자 24주기를 맞아 미국 전역이 추모 분위기에 휩싸인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펜타곤 청사 앞에 섰다. 트럼프는 반미 성향의 테러 집단을 겨냥해 “미국이 공격을 받으면 우리는 끝까지 그들을 추적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우리는 어떠한 자비심도 없이 그들을 짓밟을 것이요, 의심할 여지 없이 승리할 것”이라며 “그래서 우리는 예전의 국방부 명칭을 전쟁부로 바꿨다”고 강조했다. 방어가 아닌 ‘공격’을 통해 국제사회에 미국이 원하는 질서를 기필코 정착시키겠다는 의지의 선포처럼 들린다. 우리 속담에 ‘말이 씨가 된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미국 전쟁부의 부활이 부디 전쟁의 빈발로 이어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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