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부 입김 세지고 업무 원칙 강조할듯"…"처우 악화·지방이전에 불안"
정부가 금융당국 조직개편의 일환으로 금융감독원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하는 계획을 깜짝 발표했다.
외부 감시를 강화할 필요성이 배경으로 꼽혔는데, 금감원 직원들은 반발이 거세다.

정부는 지난 7일 금융위의 금융정책 기능을 분리해 재정경제부로 이관하고, 금융위를 금융감독위원회(금감위)로 재편하는 내용의 조직개편안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금감원에서 금융소비자보호원(금소원)을 분리·신설한 뒤 두 기관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하는 내용도 담겼다.
상당한 권한을 가진 금감원에 외부 통제가 더 필요하다는 시각이 반영된 것이다.
이창규 행정안전부 조직국장은 조직개편안 방안 발표에서 "지금까지 금감원이 하는 역할에 비해 외부의 민주적인 통제가 많이 이뤄지지 않았는데 공공기관 지정이 되면 경영, 재정 등 여러 부분에 평가를 받아 민주적 통제가 확실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복현 전 원장 시절 무소불위에 가까운 힘을 휘두르며 월권 논란을 일으키곤 한 것이 이런 문제의식을 키웠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세훈 금감원 수석부원장은 직원 간담회에서 "강력한 권한을 가진 금감원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그간 무자본 특수법인 형태의 민간 조직으로 운영돼 왔는데 공공기관으로 지정되면 재경부 소속 공공기관운영위원회(공운위)의 공공기관 운영 지침에 따라 매년 정부의 경영 평가를 받게 된다.
해당 지침에 따라 예산, 인사, 경비 등을 운용해야 하며 지침을 따르지 못했을 경우 페널티도 받을 수 있다. 재경부의 입김이 강해지는 것이다.
금융 감독 업무에 대한 지도·감독 등은 금감위가 맡는다.
공공기관 중에서도 공기업 또는 준정부기관으로 지정되면 이사회 구성 의무가 생기는 등 지배구조에도 변화가 생긴다.

금감원은 2007년 공기업이나 준정부기관보다는 통제 수위가 낮은 기타공공기관으로 지정됐다가 2009년 기관 특성을 이유로 지정이 해제됐다.
금감원이 구체적으로 공기업, 준정부기관, 기타공공기관 중 어떤 것으로 지정될지는 내년 1월 열리는 공운위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 공공기관 지정은 2017년 금감원 내부 채용 비리와 방만 경영 등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본격적으로 재추진됐다.
그러나 이듬해 정부는 금감원 채용 비리 근절·공공기관 수준의 경영 공시·엄격한 경영 평가·비효율적 조직 운영 문제 해소 등을 조건으로 내걸어 공공기관 지정을 유보했다.
한 금감원 전 고위 관계자는 10일 "금감원은 일반적인 공기업과 달리 일종의 행정기관 역할을 하는 곳인데 다른 공기업들과 같은 선에서 경영을 평가하는 것이 무리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공공기관으로 지정되지 않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재경부 평가를 받으면 감독과 정책을 분리하려는 의미가 무색해진다"고 덧붙였다.
금감위와 국회 정무위원회 통제에 더해 공공기관 지정까지 하는 것은 불필요한 중복 규제라는 것이 당시 금감원 주장이었다.
이후 라임·사모펀드 사태 등으로 감독 부실 논란이 제기되면서 공공기관 지정 의견이 다시 힘을 얻기도 했다.
금감원은 유보 조건을 이행하며 공공기관 지정을 피했고, 현재까지 지정 유보 상태를 이어오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관련 논의가 다소 잠잠해진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기대와는 달리 금융소비자원 분리에 더해 공공기관 지정 결정까지 나오자 내부 분위기는 격앙됐다.

금감원 직원들은 검은 옷을 입고 1층 로비에 모여 이틀째 출근 전 집회를 했다. 전날 전체 인원의 30%에 달하는 700명이 모였으며, 이날 집회도 비슷한 규모로 진행됐다. 본원 2층에는 근조기도 설치됐다.
노조는 자체적으로 비대위원회를 구성, 절차를 밟아 총 파업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다만 영업방해, 물리력을 행사하는 방식 등은 배제될 것으로 보이며, 금융노조 등과의 연대 등도 고려하고 있다.
비대위원장을 맡은 윤태완 노조 부위원장은 "쟁의 개시를 결정했고 오늘 중 비대위가 만들어지면 어떻게 진행할지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정보섭 노조위원장 직무대행은 "금감원 업무가 위법 여부를 따지는 만큼 준법 투쟁을 하려 한다"며 "쟁의도 준법으로 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금감원 노조가 파업에 돌입한다면, 1999년 금감원 설립 후 첫 파업이 된다.
이들은 금융 감독 업무는 독립성을 갖춘 민간 기구가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직원들 개인적으로는 처우 악화나 지방이전 가능성에 관한 불안감도 크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융권 기준으로 보면 금감원 직원들의 임금은 최하위 수준이지만 공공기관 기준으로 보면 고임금이라, 공공기관이 될 경우 처우 개선은 포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소하게는 여름과 겨울철 사무실 온도도 정부 기준에 맞춰 더 덥고 춥게 조정해야 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그 과정에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직 직원들의 이탈이 줄 이을 가능성도 있다
금융권에서는 엇갈린 반응이 나온다.
금융권 A 관계자는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금감원이 공공기관이 돼서 정부의 직접 통제를 받으면 '관치 금융'이 심해질 것이란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B 관계자는 "금감원의 지위 변화가 향후 검사 방식 등의 변화로 이어질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C 관계자는 "더 엄격하게 경영평가를 받고 그 결과에도 신경을 많이 쓰게 된다고 한다"며 "업무시 원칙을 더 강조하면서 경직될 수 있지만 금융회사와의 관계에서 유착 의혹 등에는 더 주의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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