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의 등 정부·여당 간담회서 촉구
“트럼프 꺼낸 ‘미국인 교육’ 난센스”
산업장관, 선제 대응 실패 인정
“해외투자 정책 공백 개선할 것”
미국 이민당국의 ‘한국인 무더기 구금’ 사태가 해결 수순을 밟고 있지만 재계에선 유사 사례 재발에 대한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다. 미국에 480조원이 넘는 ‘투자 보따리’를 안겼음에도 산업 인력 300여명이 구금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자 현지 투자에 대한 불안감이 극에 달한 상황이다. 정부·여당 모두 비자 문제 개선 등 재발 방지를 위한 총력전을 약속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특유의 ‘예측 불가능성’이 갈수록 커지면서 기업으로선 정부 말만 믿고 대외 중장기 경영 전략을 수립하기 어려워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8일 재계에선 이번 한국인 근로자 단체 구금사건을 현재 진행 중인 한·미 관세협상 후속 협의 등과 연결짓는 것을 경계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일각에서 양국이 대미투자 패키지 세부사항을 조율하는 중에 트럼프식 압박이 전개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됐지만, 그보단 미국 이민당국의 성과 부풀리기에서 비롯한 ‘해프닝’에 가깝다는 게 중론이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미국 이민당국이 (적발) 목표치가 있어서 신고를 받자마자 바로 들이닥친 것으로 보인다”고, 윤철민 대한상공회의소 국제본부장은 “이번 구금 사태가 한·미 협상과 연계됐다는 것은 확대해석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한국인 노동자 체포·구금 사태로 향후 미국 현지 공장 건설 등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에는 이견이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내 숙련 기술자 교육을 조건으로 한 비자 확대를 시사했지만 이는 산업 현장과 동떨어진 대책이라는 분석이다. 장 원장은 “착공 초기 전문 인력이 설비를 구축하고 건설 현장 전반을 세팅하는 작업은 굉장히 민감하고 고난도의 엔지니어링이 요구된다. 이를 미국인을 교육해서 한다는 것은 난센스”라며 “기업의 기술 보안과도 직결되는 문제”이라고 말했다.
재계는 정부·여당이 전면에 나서서 역할을 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현 사태가 기업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한참 넘어섰다는 우려가 깔렸다.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은 이날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가진 정책간담회에서 “향후 미국 내 우리 국민의 안전과 기업의 원만한 경영 활동을 위해 재발 방지 대책 마련과 비자 쿼터 확보 등 구조적 문제 해결에 민주당이 관심과 지원을 해주길 부탁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비자 문제 해결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드러내면서도 선제 대응에 실패한 점을 인정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날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에게 (구금 사태에 대해) 직접적으로 강하게 유감을 표명했다”며 “러트닉 장관에게 ‘우리에게 투자를 하라고 하면서 이렇게 비자 문제를 보수적으로 보면 어떻게 하느냐’는 이야기를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한국 기업의) 해외 투자 관련해선 사실상 정책이 공백이 있던 부분들이 있었다”며 “제도 개선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한국인 구금 사건과 관련해 “국민이 가진 불편한 감정이나 불안함, 불만 등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면서 “한·미동맹을 견고히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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