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 제시하고 도울 이 뽑아 공동체 이끌어야
단군 이야기의 주인공은 뜻밖에도 단군이 아니다. 단군을 낳은 환웅이 그 중심인물이다. ‘삼국유사’ 첫머리를 보면, 상제(上帝) 환인의 아들 환웅은 인간 세상에 내려가고자 하는 뜻을 아버지에게 거듭 말했다. 허락을 받은 환웅은 3000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홍익인간(弘益人間), 곧 사람들 사이(人間)를 고양시켜서(益) 더 큰(弘) 세상을 만들자는 비전을 제시하고 구성원들을 설득했다.
흔히 홍익인간을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한다’라고 해석하지만, 일연이 ‘삼국유사’를 편찬하던 13세기에 ‘人間’(인간)은 단순히 ‘사람(human)’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인간 세상’ 혹은 ‘사람들 사이’를 지칭했다. 사마천의 ‘사기’, 이백이나 소식의 시(詩), 고려 시대 이곡의 문헌을 보아도 이 사실은 분명하다. 다시 말해, 곰과 범으로 상징되는 구성원들이 약속을 지키고 자기를 절제할 때, 공동체는 더 높은 차원으로 도약하며 인격적 관계 역시 지켜질 수 있음을 일연은 일깨워 주었다.

그런데 곰은 어떻게 100일간 쑥과 마늘만으로 동굴에 머물 수 있었을까. 그 고통스러운 길에 나서고 끝내 견디게 만든 배경에는 환웅이 있었다. 환웅은 실로 소통의 리더였다. 그는 자기 소망을 아버지 환인에게 말했고, 설득된 환인은 그에게 세상을 다스릴 권능을 주었다. 상향 소통이 이루어진 것이다. 환웅은 또한 하향 소통을 발휘했다. 곰과 범의 소망?사람이 되고 싶다?을 경청했고, 절제를 통한 자기 변혁이라는 해법을 내놓았다. 그의 소통에 힘입어 곰은 마침내 성공했고 단군이 태어났다. 이 모든 과정은 놀랍게도 상제 환인의 특별한 계획이나 환웅의 독단에 의해 이뤄지지 않았다. 경청과 설득, 합의 속에서 리더십과 팔로어십이 형성되었다.
나는 고려의 지식인 일연이 단군 이야기를 우리 민족의 건국 신화로 선택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고 본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이나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환웅보다 훨씬 더 익숙한 인물이었다. ‘삼국유사’보다 140여년 앞서 편찬된 ‘삼국사기’에 이미 그들의 탄생 설화가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웅과 단군은 그렇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연이 단군 이야기를 민족의 대표 신화로 끌어올린 이유는 분명하다. 한국인들이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면서도 가장 부족했던 덕목, 바로 소통의 리더십을 환웅이 구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단군 이야기 부분에는 세 유형의 리더가 등장한다. 첫째는 해모수 유형이다. 해모수는 오룡거(五龍車)를 타고 내려와 유화에게 접근해 사통한 후 떠났다. 둘째는 금와 유형이다. 그는 해부루의 뒤를 이어 부여왕이 되었으나 탁월한 인재 고주몽을 떠나가게 만들었다. 셋째, 환웅 유형이다. 그는 하늘에서 내려와 신시(神市)를 세우고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며 인간 세상을 다스렸다.
유화를 사통하고 떠난 해모수와 달리, 그는 자기 절제[忌]에 성공한 웅녀와 혼인하여 단군을 낳았다. 환웅은 또한 금와와 달리 분명한 목표, 즉 홍익인간이라는 비전을 세웠다. 비전을 구현하기 위해 그는 풍백·우사·운사라는 중간 리더를 뽑아 공동체가 잘 돌아가게 만들었다.
신이(神異)하게 태어났지만, 그가 다스린 나라에 어떤 변화도 가져오지 못한 금와와 달리, 환웅은 세상에 머물러 살면서 이치로 변화시켰다(在世理化 재세이화). 그는 잠깐 내려와 자기 욕심만 채우고 떠난(遊世無化 유세무화) 무책임한 해모수나, 세상에 머물러 살았으나 아무런 변화도 주지 못한(在世無化 재세무화) 무능한 금와와는 분명 다른 리더였다.
안타깝게도 오늘의 정치가와 기업 리더 가운데는 해모수형이나 금와형이 많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소통을 통해 사람들 사이를 원만하게 만들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는 환웅형 리더다.
박현모 세종국가경영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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