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보다 개성을 중시하는 밀레니얼 세대가 40대 중반에 접어든 세상에서 ‘효’는 어떤 가치를 지닐까. 지금 세상에서도 심청이는 인당수에 몸을 던져야 하는가.
국립창극단 신작 ‘심청’이 관습을 깨뜨린 자리에서 새로운 미학과 담론을 탄생시키며 고전 재해석의 진수를 보여줬다. ‘심청전’의 모든 요소를 과감히 뒤집어 동시대성을 불어넣고 강렬한 메시지를 창출해냈다.

역대급 전복(顚覆)을 연출해낸 이는 요나 김. 유럽 주요 오페라 극장에서 활약 중인 연출가다. 창극을 처음 연출하면서도 오랜시간 공들여서 판소리 ‘심청가’의 주요 대목을 원형 그대로 사용하되, 순서를 바꾸고 상황을 재구성해 상상하기 힘든 서사를 만들어냈다. 원작이 미화해온 시대불변의 덕목 ‘효’를 정면으로 부정하며 우리 사회 가장 약한 존재로서 희생당한 딸들을 위한 진혼제를 무대에 펼쳐 보였다.
줄거리는 원작과 다르지 않다. 난산끝에 어미는 죽고 심봉사는 젖동냥으로 심청을 키운다. 스님은 공양미 삼백석이면 눈을 뜰 수 있다 하고, 뱃사람에게 팔려간 심청은 인당수에 몸을 던진다. 다만 심봉사는 공양미 삼백 석 이야기를 딸에게 세 차례나 되풀이하며 효를 강요한다. 자포자기한 듯 심청은 잠든 아버지 목을 조르려다 제풀에 놀라 멈추고, 깬 심봉사는 아는 듯 모르는 듯 딸을 다독인다.
원작에선 심청을 구하려던 장승상 댁 부인도 이번 무대에선 무심한 방관자에 가깝다. 수양딸 삼겠다던 심청이 자신의 세 아들에게 패악질 당하는 것도 못 본 채 서화 감상에만 골몰한다. 심청이 자신의 구원을 거부하자 “니 진정 그럴진댄 너의 화상이나 그려 널 본듯이 보것노라”라며 그림 놀이에만 몰두한다.

요나 김과 함께 온 유럽 제작진이 만들어낸 ‘심청’의 무대는 간결하지만 미장센과 상징으로 가득하다. ‘치치직’ 소리가 들릴 것 같은 정파 화면만 흐르는 브라운관TV와 한 때는 화려했을 법한 빛바랜 벽지는 영락(零落)한 양반 심봉사 처지를 잘 보여준다.
요나 김이 자신의 무대에서 즐겨 사용하는 라이브 카메라 기법은 이번에 한층 확대되었다. 무선 스테디캠으로 촬영한 영상이 무대 상부 스크린에 전면적으로 투영된다. 냉장고 속 인형, 넋 나간 심청의 얼굴 등이 확대되며 극적 긴장을 높였다. 객석에서 본 심봉사 집은 안방과 거실이 가벽으로 나뉘는 단순한 구조지만, 영상 속에서는 현관-거실-안방으로 이어지는 심도 깊은 공간이 새롭게 구성된다.
차곡차곡 쌓아 올린 파격의 서사는 피날레에서 폭발하듯 분출한다. 용궁도 심황후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배우들이 눈을 감은 채 눈꺼풀 위에 눈동자를 그리고 무대를 헤매다 서로 부딪치고 쓰러진다. 눈을 떴으되 눈먼 자들의 도시인 셈이다.

경비병에게 붙잡힌 심봉사는 잔칫상 대신 “아이고 아버지, 여태 눈을 못 뜨셨소”라는 딸의 질책을 듣는다. “두리둥 두리둥 둥둥둥” 심청가의 ‘범피중류’가 흘러나오며 화들짝 놀라 눈을 뜬 심봉사 앞에는 자신의 딸이 바다에 던져지는 참극이 펼쳐진다. 심봉사는 그제야 죄책감에 무너지고 이후 무대에는 어린아이부터 할머니까지 다양한 심청이 등장하는 ‘멀티버스’가 펼쳐진다. 어린 심청은 무심한 눈으로 객석을 바라보고, 노파심청은 여자 아이들을 보호한다. 소녀 심청은 깜빡이는 가로등 기둥을 힘겹게 올라가 전구를 갈아 낀 뒤 내려와서 쓰러진다. 그리고 후드티를 눌러쓴 진짜 심청은 담배 한 대를 맛있게 피워 물고 극장 밖으로 걸어나간다.
국립극장 ‘창극 중심 세계음악극축제’ 개막작(3∼6일,국립극장 해오름)으로서 첫 공연에선 김준수(심봉사 역)와 김우정(심청 역)이 열연했다. 국립창극단 간판스타 김준수는 원숙한 기량을 이번 무대에서도 유감없이 보여줬다. 김우정은 일변하는 표정과 압도적인 눈빛 연기 등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학대당하는 소녀 역할을 훌륭하게 보여주며 무대 바닥에 누워서 소리하는 등 어려운 장면도 뛰어난 가창력으로 소화해냈다. 줄곧 침묵의 관찰자로 무대를 지켰던 뺑덕어멈 이소연의 연기와 노파심청을 맡은 김미진의 가창도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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