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타이탄들의 전쟁/ 게리 리블린/ 김동규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2만7000원
2022년 11월 챗GPT 등장으로 시작된 인공지능(AI) 혁명은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거대한 IT(정보기술)기업과 수많은 벤처기업들이 명운을 걸고 각축전을 벌이는 전장(戰場)이기도 하다. 이미 여러 벤처가 명멸했는데 ‘인플렉션AI’도 그중 하나다. 딥마인드 공동 창업자 무스타파 술레이만과 링크드인 창업자 리드 호프먼이 의기투합해 세운 이 회사는 “사람처럼 대화하는 AI”라는 야심 찬 비전을 내세웠다. 챗봇 ‘파이(Pi)’를 세상에 내놓으며, 개인 맞춤형 AI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투자금은 빠르게 소진됐고, 점유율은 미미했다. 결국 인플렉션은 독립적 생존을 포기하고, 핵심 인력과 기술을 마이크로소프트(MS)에 넘겼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뉴욕타임스 출신 탐사보도·실리콘밸리 전문 기자가 이 회사를 둘러싼 흥망의 서사를 통해 AI 전쟁의 본질을 포착했다.
술레이만은 “앞으로 5년 안에 불가피한 현실이 될 것”이라며 자신 있게 미래를 예견했다. 인플렉션 탄생의 또다른 주역은 실리콘밸리에서 ‘철학자-왕’으로 군림하는 호프먼이다. 그는 스타트업(신생기업) 투자자이자 조언자로서 AI 생태계의 숨은 설계자로 여겨진다. “스타트업이 만든 제품이 마음에 들 정도라면 이미 출시 시기를 놓친 것”이라는 그의 격언은 챗GPT가 빠르게 세상에 등장한 배경을 설명한다. 그러나 저자는 호프먼이 보여준 비전은 놀랍지만 지나치게 이상화된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인플렉션 역시 거대자본의 벽에 가로막혀 좌초한다. 딥마인드 시절부터 ‘친절한 AI’를 강조했던 술레이만의 철학은 끝내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인플렉션의 실패는 곧 MS의 승리로 이어졌다. 사티아 나델라가 이끄는 MS는 오픈AI와의 전략적 동맹에 이어 인플렉션의 인재와 기술을 흡수하며 AI 경쟁의 주도권을 강화했다. “진짜 경쟁이 시작됐다”는 선언처럼, 이 거인은 스타트업의 몰락을 발판 삼아 구글과의 전쟁에서 앞서나갔다. 저자는 이를 두고 “실리콘밸리에는 천하무적의 기업이 없다. 그러나 살아남는 자는 자본과 규모를 움켜쥔 소수의 거인들”이라고 진단한다.
인플렉션의 좌초는 현재 구축된 AI 산업 전체의 권력 지형을 비춘다. 술레이만의 이상, 호프먼의 비전, 나델라의 냉철한 승부감이 교차하며 스타트업과 빅테크 사이의 냉혹한 역학관계가 드러난다. 실리콘밸리를 오랫동안 지켜본 저자의 결론은 냉소적이다.
“오늘날 세상을 바꿀 만한 제품을 만든 AI스타트업이 살아남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보다 더 덩치 큰 기업들의 자금력을 이겨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세상을 지배하기까지 10년에서 15년이 걸렸다. 나는 AI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지금 실리콘밸리에 있는 대부분 AI스타트업이 결국 살아남아 부자가 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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