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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의 렌즈로 들여다본… 경제사상의 역사

입력 : 2025-08-30 06:00:00 수정 : 2025-08-28 19:34:17
이규희 기자 lk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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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곡선’ 제창자 브랑코 밀라노비치
불평등 향한 경제학자들의 인식 등 추적
사상가의 이론들 백화점식 나열서 탈피
인물의 생애·시대적 맥락 등 담아 설명
시장 결과 아닌 정책·이념 등의 산물 강조

불평등의 담론/ 브랑코 밀라노비치/ 이혜진 옮김/ 세종연구원/ 2만4000원

 

세르비아계 미국인 경제학자 브랑코 밀라노비치는 불평등 연구 분야에서 토마 피케티와 더불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학자다. 세계은행 연구소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그는 2010년대 초 ‘코끼리 곡선’을 통해 냉전 종식 후 글로벌 소득분포의 격차를 시각화해 이름을 알렸고, 2019년 저서 ‘홀로 선 자본주의’에서는 자본주의의 미래를 모색했다. 최근 한국어로 번역된 ‘불평등의 담론’(원제 ‘Visions of Inequality’)에서 그는 경제학자들이 불평등이라는 주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설명하고, 외면해왔는지 추적한다.

세계적인 경제학자 브랑코 밀라노비치는 프랑수아 케네, 아담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 카를 마르크스, 빌프레도 파레토, 사이먼 쿠즈네츠까지 여섯 명의 대표적인 경제학자를 통해 시대와 사회적 배경에 따른 ‘불평등’에 대한 인식과 해석의 변천을 추적한다. 위키백과 제공

책은 정량적 분석보다 경제사상사의 흐름을 따라가는 방식을 택한다. 프랑수아 케네(1694∼1774), 애덤 스미스(1723∼1790), 데이비드 리카도(1772∼1823), 카를 마르크스(1818∼1883), 빌프레도 파레토(1848∼1923), 사이먼 쿠즈네츠(1901∼1985)까지 근대 경제학사를 대표하는 여섯 사상가를 각 장으로 나누어 지난 200년간 불평등에 대해 어떻게 사고해 왔는지 조명한다.

책은 이들 사상가의 이론을 백화점식으로 나열하지 않는다. 저자는 각 인물의 생애와 시대적 맥락을 조망하며 그들이 당대의 사회구조와 소득분포를 어떻게 이해했고, 불평등을 어떤 관점에서 설명했는지, 이러한 주장을 어떤 경험적 자료나 논리로 뒷받침했는지 면밀히 추적한다.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 경향’ 이론을 예로 들면, 저자는 이론 자체를 전면적으로 설명하기보다 그것이 불평등에 대해 어떤 함의를 갖는지, 불평등을 어떻게 개념화했는지를 밝혀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브랑코 밀라노비치/ 이혜진 옮김/ 세종연구원/ 2만4000원

저자에 따르면 18∼19세기 경제학자들은 불평등을 계급 기반 현상으로 이해했다. 그 계급은 법적으로 규정된 것이기도 했고(케네), 사람들이 소유하고 소득을 창출하는 자산의 종류에 따라 정의되기도 했다(스미스, 리카도, 마르크스). 즉 이들 사상가의 분석은 지대, 이윤, 임금 등 기능적 소득 분배에 관심을 뒀다.

이에 비해 20세기에 들어 파레토와 쿠즈네츠는 불평등을 보다 중립적이고 기술적인 문제로 다뤘다. ‘파레토 법칙’으로 유명한 파레토는 ‘엘리트 대 대중’이라는 위계적 구도로, ‘쿠즈네츠 곡선’으로 잘 알려진 쿠즈네츠와 이후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에 이르러서는 개인 간 소득 격차를 중심으로 불평등을 분석했다. 이후 주류 경제학은 불평등을 점점 더 개인 간 차이로 정의하며 계급 개념을 경제학 논의에서 사실상 사장했다. 이로 인해 불평등의 원인은 정치·사회구조보다 교육 수준이나 도시·농촌 간 격차와 같은 내재적 요인으로 환원됐다.

책의 마지막 장은 “불평등 연구의 긴 암흑기”였던 냉전기를 다룬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대립하던 시대. 불평등은 정치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주제로 여겨졌고, 양 진영 모두 경제학을 지배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활용했다. 동구권에서는 “공식적으로 계급이 사라졌으므로” 소득분포 연구가 불필요하다는 입장이었고, 서구에서는 “계급은 사라졌고, 사람마다 자산이 다를 뿐”이라는 시각이 주류를 이뤘다. 이 시기 경제학은 시장의 효율성과 균형을 강조하며 분배 문제를 사실상 회피했다. 불평등에 대한 경제적 사고는 계급에서 엘리트, 다시 개인으로 향했다.

그러나 불평등 연구는 21세기 초반 다시 활기를 띠었다. 냉전 이후 30년간 증가한 소득 불평등이 자명하게 드러났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분배 문제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되살렸다. 저자는 책의 에필로그에서 현대 경제학자들이 어떻게 불평등 연구를 부활시켰고, 연구의 영역을 확장했는지를 다룬다. 특히 피케티의 연구는 부와 비노동소득이 불평등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분석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오늘날 불평등 연구는 시장에 초점을 둔 신고전파 경제학의 한계를 넘어 사회적·정치적 권력 구조까지 포괄한다. 젠더·인종 등 요소도 분석에 포함되며, 불평등을 단지 금전적 소득만이 아니라 더 넓은 차원에서 다룬다. 또한 한 국가 내 시민들 간 불평등뿐 아니라 전 세계 시민 간 불평등 문제로 관심이 확장되었으며, 이 분야는 밀라노비치 자신이 선구적인 역할을 한 분야이기도 하다.

책은 불평등이 단순한 시장의 결과가 아니라 정책과 이념, 정치 권력 선택의 산물임을 강조한다. 불평등이 다시 정치의 중심 주제로 떠오른 지금, 책은 경제학이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묻는 중요한 이정표로 읽힌다.

여섯 사상가의 방대한 저작 속에서 소득 분배에 관한 핵심 관점을 정밀하게 추출해 불평등 담론의 계보를 그려내는 저자의 솜씨는 신묘하다. 저자의 모든 주장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가 주류 해석을 재조명하는 방식은 충분히 흥미롭다. 예컨대 저자는 매디슨 프로젝트 자료 등 최신 데이터를 활용해 애덤 스미스가 전 세게 불평등에 대해 매우 직관적 통찰을 지니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스미스가 시장의 공정성과 부의 집중, 산업 독점에 대해 얼마나 우려했는지를 강조하며 ‘국부론’에 담긴 사상의 핵심 중 하나로 제시한다. 이로써 그는 스미스를 오늘날의 ‘좌파 경제학자’로 새롭게 해석해낸다.


이규희 기자 lk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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