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3S’ 야만의 시대와 맞짱뜨는 애마활극

입력 : 2025-08-25 21:00:00 수정 : 2025-08-25 20:05:05
이규희 기자 lkh@segye.com

인쇄 메일 url 공유 - +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애마’

1980년대
에로영화 전성기
권력과 검열의 이면
여배우로 감내해야 했던
폭력적 상황 풍자
각성과 연대로
시대 전복 꿈꾸는
두 주인공 활약 통쾌

1981년. 유신정권은 막을 내렸고, 서울은 88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다. 겉으로는 ‘새 시대’의 도래였지만, 충무로 톱스타 ‘정희란’(이하늬)의 세계는 달라지지 않았다.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후 귀국길에 오른 희란을 기다리고 있던 건 또다시 ‘노출 영화’ 출연 제안이었다. ‘가슴’이라는 단어로 도배된 시나리오의 제목은 ‘애마부인’.

분노한 희란은 기자회견을 열고 “더 이상의 노출은 없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희란을 전속계약으로 묶은 신성영화사 대표 ‘구중호’(진선규)는 물러서지 않는다. 희란을 조연으로 강등시키고, 꼭두각시인 신인 감독 ‘곽인우’(조현철)와 함께 오디션을 열어 신인 배우 ‘신주애’(방효린)를 ‘애마’ 역으로 발탁한다. 이로써 두 여배우, 희란과 주애는 각기 다른 입장에서 ‘애마부인’ 제작 현장에 뛰어든다.

넷플릭스 시리즈 ‘애마’는 1980년대 에로영화 붐의 이면, 폭력에 맞선 톱스타 ‘정희란’(이하늬)과 신인 배우 ‘신주애’(방효린)를 고리로 한 이야기다. 넷플릭스 제공

22일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애마’는 1982년 개봉해 큰 흥행을 거둔 영화 ‘애마부인’의 제작 과정을 모티브로 삼은 대체 역사물이다. 시대의 격랑 속에서 여배우들이 감당해야 했던 부조리와 폭력을 다루며 한국 에로영화 전성기 이면의 권력과 검열, 연대와 각성을 그려낸다.

‘애마’는 상징적인 영화 한 편의 제작기를 넘어, 1980년대 한국영화계가 생존을 위해 택했던 ‘에로티시즘’ 전략의 맨얼굴을 보여준다. 컬러TV 상용화와 외화 수입 확대는 국내 영화산업에 위기감을 안겼고, 충무로는 TV가 다룰 수 없는 ‘고수위’ 에로영화로 관객을 붙들고자 했다. 전두환 정권의 ‘3S(Screen, Sports, Sex) 정책’은 이를 뒷받침했다.

그 이면에는 수많은 여배우가 감내해야 했던 비자발적 선택이 있었다. ‘애마’는 바로 이 지점에서 여성주의적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구중호로 대표되는 남성 캐릭터의 여성혐오적 대사, ‘썅년’이라는 멸칭으로 서로를 상처 내는 여배우 간 대립 그리고 끝내 도달하는 여성의 각성과 연대가 ‘애마’의 핵심이다.

구중호( 진선규)

‘애마’는 당시 영화 제작을 사사건건 주무르던 문화공보부(문공부)의 검열을 상세하게 묘사한다. 문공부는 영화의 제목과 대사, 의상까지 통제했고, 영화 제작은 번번이 중단 위기를 맞는다. 특히 ‘말’(馬)이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주인공 이름을 애마(愛馬)에서 애마(愛麻)로 바꿔야 했던 에피소드는 실화 기반이다. 극 중 주애는 가슴을 드러내선 안 된다는 검열을 피해가기 위해 흰 속옷이 비에 젖는 장면을 제안하는 등, 당대 영화인들의 고육지책이 흥미롭게 재현된다.

곽인우(조현철)

희란과 주애는 폭압적 권력의 부조리에 눈을 뜨고, 각자의 방식으로 반격을 준비한다. 성상납이 벌어지는 연회장에서 두 사람은 우연히 만나고, 드라마는 전환점을 맞는다. 이후 ‘애마부인’은 ‘애마’에서 메타픽션처럼 다시 쓰인다. 여성의 객체화된 이미지를 전복하며, 두 여성이 서로를 비추고 지지하는 서사로 나아간다. ‘애마’는 결코 1980년대를 미화하거나 어쭙잖은 향수의 대상으로 채색하지 않는다. 연회장에서의 폭력, 검열의 폭압, 남성 영화인들의 비열함은 가감 없이 묘사된다. 희란의 ‘폭로’는 대종상 시상식이라는 상징적 무대에서 이뤄지고, 그 순간 주애가 희란을 구하기 위해 내딛는 한 걸음은 말 위에 올라탄 여성을 그저 성적 이미지로 소비하던 시대에 대한 반격으로 상징한다.

흥미롭게도 대종상 장면에서 1대 ‘애마부인’ 안소영이 카메오로 등장한다. 작품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장치이자, 당대 여성 배우들에게 바치는 존경을 담은 헌사이기도 하다.

이하늬는 극 중 희란을 통해 강인하면서도 유연한 여배우의 초상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꼿꼿하고 우아한 자태, 단단한 연기를 통해 단순한 ‘썅년’도 ‘피해자’도 아닌 ‘행동하고 목소리 내는 주체’로서의 인물을 완성한다. 신예 방효린도 대선배 희란과의 투샷에서 결코 밀리지 않는 연기를 펼쳐 극의 몰입도를 극대화한다. ‘천하장사 마돈나’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독전’ 등을 만든 이해영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이규희 기자 lkh@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신은수 ‘심쿵’
  • 신은수 ‘심쿵’
  • 서예지 '반가운 손인사'
  • 김태희 ‘눈부신 미모’
  • 임윤아 '반가운 손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