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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에 가면 가장 처음 듣는 말이 ‘빨리빨리’” [심층기획-아리셀 참사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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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6-16 06:00:00 수정 : 2025-06-16 08: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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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 피해’ 외국인 근로자 3人 목소리

작업 중 손가락 절단 등 사고 당했지만
사업장서 산재 처리 꺼려 치료 늦어져
“다쳤을 때 대응방안 교육받아야” 강조

“사장님은 세 사람이 할 일을 한 사람한테 시켜요. 외국인 근로자가 농장에 가면 가장 처음 듣는 말은 ‘빨리빨리’예요.”

파르틱 보허랄(32)씨는 ‘지난해 아리셀 사고를 보면서 어떤 기분이었냐’는 질문에 지난달 26일 이렇게 답했다. 2018년 비전문취업(E-9) 비자로 네팔에서 입국한 그는 의사소통이 겨우 가능한 정도로 한국말이 서툴렀다. 그는 입국 전 E-9 비자 근로자가 받아야 하는 필수 교육은 들었지만 사업장에서 별도 안전 교육이나 기계 작동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물티슈 공장에서 일하다 산업재해를 당한 라미차 네리아씨가 절단된 손을 보이고 있다. 이지민 기자

15일 업계에 따르면 보허랄씨는 2023년 4월 왼쪽 손가락 5개가 모두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2019년부터 2년간 일했던 경기도 여주의 양계장에 다시 돌아가 일한 지 일주일째 되는 날이었다. 컨베이어벨트에 묻은 닭 분변을 청소하다 벌어진 사고였다. 컨베이어벨트에 손이 들어갔고, 기계 작동을 멈춰줄 동료는 없었다.

라미차 네리아(38)씨와 비렌드라 쿠마르(31)씨도 산재로 각각 오른손과 왼손을 잃다시피했다. 네리아씨는 물티슈 공장에서, 쿠마르씨는 철강공장에서 일하다 사고를 당했다. 세 사람 모두 사고 직후 사업장에서 산재 처리를 해주기를 꺼렸고, 치료가 늦어져 고통이 심했다고 했다. 산재 후유증에 지금까지도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정신과에서 이들이 받은 진단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불안과 우울이 혼합된 감정을 동반한 적응 장애다.

팔꿈치 인공관절 수술까지 총 21번의 수술을 받은 네리아씨는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해 수술 횟수가 늘어났고, 잦은 수술에 빈혈과 간 기능 수치가 악화했다고 했다. 15번 수술을 받은 보허랄씨도 마찬가지였다. 이들 모두 “빨리 산재 처리가 됐으면 계속 아프지도 않았을 것이고, 정신과 치료를 받는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자신과 같은 외국인 근로자가 또 나오지 않으려면 “외국인 근로자들이 ‘다쳤을 때 대응 방안’을 교육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네리아씨는 “사장님들은 산재 처리하면 기록이 남아 자비로 치료비를 준다는 사람이 많다”며 “어떻게 대응할지 모르니까 변호사, 노무사라는 사람한테 사기당하는 외국인도 많다”고 했다. 보허랄씨도 “산재가 많이 나오면 사장님이 문을 닫아야 하니까 사업주가 개인 부담으로 끝내려 한다”고 말을 보탰다.

궁극적으로는 의무 교육이 늘고 속도만을 중시하는 사업장 내 관행이 바뀌어야 하는 문제다.

보허랄씨는 “사장님들이 외국인들을 차별해 더 위험한 일을 하게 되는 것 같다”면서 “기계 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도 사장님들은 ‘일하면서 배우는 것’이라고 하는데 일하기 전에 안전교육을 사업장에서 의무적으로 받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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