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끌벅적했던 대선이 모두 마무리됐다.
이번 선거에서 보수진영은 아무런 영광 없이 커다란 상처만 남았다. 후보자의 개인기로 얻어낸 지지율 41%에 심취해선 안 되는 상황이다.
이번 선거에서 눈여겨봐야 할 점이 몇 가지 있다.

하나는 전통적 이념 대립 구도는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젊은 층에게 이제 ‘친북’ ‘종북’ 등의 단어는 구시대적 단어가 된 것이다.
즉, 종북으로 진보 진영을 몰아세우는 게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의미기도 하다.
무엇보다 주의 깊게 봐야 할 현상은 진보진영이 보수의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중도진영이 이번 대선에서 진보진영의 손을 들어줬다.
중도층의 표심이 진보에게 쏠림에 따라 선거의 승패가 갈린 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수진영도 반성해야 할 대목이 생긴다.
더 이상 '우리는 보수니까 노동은 안 된다'는 고정관념을 탈피해야 한다는 걸 피 토하는 심정으로 주장하고 싶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보수진영에서 최초로 노조위원장 출신인 김문수 대선 후보자를 내세웠음에도 노동계 표심을 얻지 못했다는 점은 너무나도 뼈아픈 실책이 아닐 수 없다.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한국노총 등의 지지 선언을 이끌어 낸 점은 노동계를 표심을 선점하는데 주효한 역할을 했다.
실제로 우리나라 노동자 수가 2200만명에 달하는데 국민 2명 중 1명이 노동자인 상황에서 이들을 배척한다는 것은 애당초 선거 타켓을 잘못 세운 것이나 다름 없다.
보수정당과 진보정당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노동운동의 트렌드를 파악하지 못하고 시대에 뒤쳐진 영향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과거 노동운동은 과격한 투쟁의 대명사로 치부됐다.
그 영향으로 보수진영에서는 노동운동을 외면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최근 노동운동은 공공부문이 주도하고 있는 추세다. 민주당이 보유한 노동계 출신 국회의원들 대부분이 공공분야 출신이라는 점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특히 오랜기간 집요하리만큼 노동계에 집착하면서 외연 확장에 주력했다.
그 말인즉슨 노동운동도 과거와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는 의미로, 보수진영이 더 이상 외면해선 안 된다는 걸 의미한다.
실제로 노동운동에도 보수진영이 존재하고, 필자를 포함한 보수세력도 상당하다.
노동분야의 보수세력은 대부분 공공부문에 포진해 있다. 현재 우리나라 노동운동을 견인하는 세력들이다.
과거 노동운동은 쇠파이프 투쟁을 하고, 귀족노조로 불리며 국민적 공감대를 받지 못하던 세력이 주도했지만, 최근에는 이들이 아닌 국민 실생활과 매우 밀접한 영역인 공공부문이 노동운동을 이끌고 있다.
공공부문 노동운동을 견인하는 노동가들은 중도로 보이지만 대체로 보수성향을 지녔다.
필자 역시 10년 넘게 공공부문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공무원 노동운동에 투신했던 인물이다.
이 과정에서 투쟁 일변의 노동운동이 아닌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노동운동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 노력했다.
투쟁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지지와 공감을 얻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패러다임의 전환을 외쳤던 것이다. 그 결과 ‘노동운동의 사회적 가치 창출’을 중심 기조로 삼고 노동운동에 전념했다.
공직을 내려놓고 보수정당의 국회의원에 도전한 것도 같은 이유다. 노동과 보수는 공존할 수 있고, 공존해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다. 비록 지난 총선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나는 보수 정치에 노동의 싹이 트길 기대하며 적극 활동했다.
이후에도 국민의힘의 대선에도 적극 참여하며 선거운동기간 중앙선대위 조직본부 조직위원장을 맡아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뛰었다.
그러나 아직도 보수진영 안에서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꼈다. 노동운동 출신이라는 이유가 그 핵심적 이유다.
보수정당은 오랜 기간 노동운동을 ‘시위와 투쟁’, ‘정치적 편향성’으로만 인식했다. 이는 일부 현실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일부 노동단체들이 편향된 정치 행보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세상은 바뀌었고, 노동운동도 바뀌었다. 정치적 중립성과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새로운 세대의 노동운동가들이 등장하고 있다. 저와 같은 사람이 그 대표적인 예다.
세계적 추세도 비슷하다.
독일의 기민당(CDU)은 전통적인 보수정당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과의 협력을 통해 노동정책의 안정성과 사회적 신뢰를 동시에 확보했다.
일본 자민당 또한 노동계와의 조율을 통해 노동정책을 유연하게 펼쳐왔고, 이는 중도층의 신뢰를 얻는 핵심 전략이 되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보수정당은 이런 변화를 여전히 외면하고 있다.
보수정당이 다시 집권하려면 반드시 중도진보세력을 품어야 한다. 중도진보세력을 품기 위해선 ‘노동’을 보수 정치의 영역으로 끌고 와야 한다. 노동계가 빠진 중도는 허상이기 때문이다.
보수당이 진정으로 변화와 혁신을 말한다면, 당의 최고위원이나 핵심당직에 노동계 출신 인물을 적극 영입해야 한다. 말뿐인 포용이 아닌, 실질적인 기회 제공이 있어야 한다.
이제는 보수 안에서 ‘노동’이 설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실제로 민주당은 지명직으로 원외 노동최고위원을 포용했다. 이후 이용득(금융), 김주영(공공), 이수진(의료), 박해철(공공), 박홍배(금융), 김현정(사무금융), 교사노조(백승아 의원) 등 노동최고위원 출신의 국회의원을 다양하게 배출했다. 이밖에 3선 이상의 노동운동가 출신의 의원도 배출하는 등 노동계와 가깝게 지내고 있다.
심지어 진보당도 공공부문을 품기 시작했다. 학교비정규직노조 출신의 정혜경 의원을 비례대표로 내세워 국회에 입성했다.
반면 보수정당인 국민의힘은 어떤 수준인지 냉철하게 진단해 보자. 현재 보수정당에는 노동계 출신 의원으로는 임이자, 김위상 의원뿐이다.
지금 두 의원들의 역할이 있지만 노동계를 포옹하기엔 한계가 존재한다.
한국노총 부위원장 출신의 임이자 의원은 제조업, 대구시의회의장을 역임한 김위상 의원은 택시노조 출신으로 현재 공공부문이 주도하는 노동계를 대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모두 보수의 심장인 TK 출신이다.
무엇보다 노동계 출신 의원의 숫자만 보더라도 확연히 차이가 난다. 이는 보수정당이 노동계를 그만큼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반증으로 필자는 해석한다.
그렇기에 이제 더 늦기 전에 보수정당도 노동계를 끌어안을 혁신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노동계를 안고 가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표 계산 때문이 아니다. 이는 대한민국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필수 전략이자, 당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결단이라 할 수 있다.
국민은 이제 이념이 아닌 실용과 성과를 본다.
그러므로 보수가 진정한 대안세력이 되기 위해서는, 실용과 성과의 관점에서 노동과의 협력을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해 보수정당에도 원외 노동최고위원을 지명해 지지세력 확장을 시도해야 한다. 보수가 노동을 품는 순간, 정치의 지형은 바뀔 것은 자명하다.
중도진보 진영도 자연스럽게 보수의 손을 잡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노동운동의 가치를 이해하고 실천해온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어야 한다. 필자는 자신있게 그 길을 걸으려고 한다. 보수와 노동, 그동안 어울리지 않고 가보지 않았던 그 길을 개척하려고 한다.
보수의 외연 확장은 미래 승리, 지속가능한 정당으로 만드는 초석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최병욱 전국퇴직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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