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 필지 소유자만 407명
그린벨트 해제·정비방안 용역 발주 등
재개발 기대감 일 때마다 투기꾼 몰려
조합원자격 노린 외지인 지분거래 반복
주택 133곳 중 32% 실거주 없는 빈집
지분 쪼개기가 앗아간 희망
서울시 신속통합기획 후보지 됐지만
한 평도 안 되는 지분 소유자 수두룩
복잡한 소유관계… 동의율 확보 난망
“공공이 先매입 後개발 등 해법 필요” 하>
개미마을은 한국전쟁 이후 주민들이 주먹구구식으로 지은 무허가촌이다. 이곳에 터 잡은 피란민과 이농민은 집을 짓고 고치며 자리를 지켜왔다. 그런 태생적 환경은 화재나 붕괴와 같은 문제로 이어졌다. 특히 수십년간 이어진 재개발에 대한 기대가 개미마을의 안전문제를 더 외면하게 하고 있다.
세계일보는 235쪽에 달하는 개미마을 내 지번 4곳의 토지 등기부 등본과 최근 10년 무허가건축물 대장상 매매 현황을 분석했다. 그 결과 1993년 국유지를 거주민 여러 명에게 불하하면서 처음부터 소유권이 복잡했던 개미마을 땅의 소유권 지분이 ‘재개발 바람’이 불 때마다 잘게 쪼개져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재개발에 필요한 합의가 오히려 어려워지고 있는 셈이다. 토지 소유권을 쪼개 가진 이들 가운데에는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재개발 ‘덕’을 보려고 유입된 외지인들이 있었다. 번번이 재개발이 무산되며 고령화된 주민들은 이제 생전에 재개발이 이뤄질 거란 기대를 접은 지 오래다. 그렇다고 제대로 고치고 살기도 쉽지 않다. 벽에 금이 가고 지붕에서 물이 새도 무허가건축물이라 개보수하려면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재개발 바람 때마다 쪼개진 지분
12일 세계일보 취재 결과 개미마을 4개 필지의 소유자는 총 407명이다. 32년 전 최초 불하 당시 158명에서 약 2.6배(249명) 늘어난 상태다. 등기부 등본을 분석해 보니 지분 쪼개기는 크게 세 번 급증했다. 모두 재개발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처음은 개미마을 땅에 대한 개발 제한 조치가 해제된 2006년이다. 인왕산 자락에 있어 개발 제한 구역으로 묶인 개미마을에선 2006년 전까지는 주택의 개축, 증축 등 대부분의 활동이 제한됐다. 개발이 허용된 이후 지역의 체계적 정비를 위해 자연녹지지역의 용도지역을 유지하되 층고 4층 이하의 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하는 제1종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지정됐다. 등기부등본상 확인할 수 있는 첫 매매가 이뤄진 1993년 이후 13년간 연평균 토지 지분 거래 건수는 11.4건이었는데, 그린벨트 해제 이후 2006년 31건, 2007년 32건으로 3배가량 늘었다.
재개발 바람이 불면 분할 단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서울시는 2016년 개미마을 정비방향 모색을 위한 시범사업 용역 입찰공고를 냈다. 서대문구는 2017년 서울주택도시공사(SH)에 정비방안 검토를 요청했다. 재개발 냄새를 맡은 사람들은 개미마을 땅을 또 쪼갰다. 2년 동안 일대 토지 지분 거래는 40건 이뤄졌다.

◆입주권 노린 투기세력 유입
이 때문에 기획부동산이 끼어든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개미마을 4개 지번 중 하나인 ‘홍제동 9-81’ 필지에 대해 가장 작은 지분을 가진 사람은 ‘9억2456만8680분의 13만5014.9’를 소유했다. 면적으로 환산하면 2.6㎡(0.8평)로 한 평도 채 안 된다. 15명이 단체 임의매각을 통해 한 사람의 지분을 매입한 사례도 있었는데, 2017년 10월24일엔 이들의 거래가 하루 8건이나 이뤄졌다. 아주 작은 단위의 지분을 소액으로 거래해 입주권을 받으려는 시도에 땅이 나뉘고 나뉜 것이다. 이들은 지분을 ‘1.4평’, ‘0.1평’, ‘3평’ 등 인당 49.5㎡(15평) 미만으로 나눠 가졌는데, 전문가들은 이런 식의 매매가 이어지면서 소유관계가 극도로 복잡해졌다고 지적했다.
재개발 바람이 분 마지막 시점은 서대문구가 개미마을 도시재생 사업 움직임을 보인 2020년이다. 서대문구는 2020년 서울시와 국토교통부의 ‘수도권 주택공급 기반 강화 방안’의 일환으로 “장기 정체된 정비구역 등에 대해 공공이 참여해 노후한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주택공급 활성화를 추진하는 공공재개발 사업의 시범사업 후보지를 공모한다”고 밝혔다. 직전 연도 10건에 그쳤던 토지 지분 매매 건수는 2020년 20건, 2021년엔 23건으로 다시 치솟았다.
김진유 경기대 교수(도시교통공학)도 “땅 지분을 작게라도 가지고 있으면 입주권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 생긴 거래”라면서 “지분 투자를 통해 조합원 자격을 얻거나 딱지 거래를 염두에 둔 대표적인 투기세력”이라고 했다.
재개발에 대한 기대감에 무허가주택 거래도 꾸준히 이어졌다. 개미마을은 모두 무허가주택이지만, 토지보상법상 1989년 1월24일 이전에 지어진 집은 ‘기존 무허가건축물’로 인정돼 입주권이 나온다. 개미마을 무허가건축물 거래 건수는 지난 10년간 78건이었는데 역시 재개발 관련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증가하는 추세였다. 공공재개발사업 후보지로 공모한 2020년과 후보지로 선정된 2024년 모두 무허가건축물 거래 건수가 전년 대비 5건 증가했다.
개미마을 한 주민은 “지난해 말 서울시 신속통합기획 개발 후보지 선정 이후 주택 매매 수요가 분명히 있다”면서 “우리 통(동의 하위 행정구역) 주민이 1억5000만원에 집을 내놓았는데 2억에 사겠다는 외지인도 있었다”고 했다.
최근엔 투자만 하고 비워둔 집도 늘었다. 전수조사 결과 개미마을 주택 133곳 중 빈집은 42곳으로, 약 32%를 차지했다. 주민들은 “투자를 위해 외지인이 유입됐고, 주말만 와서 이용하거나 빈집을 방치해둔 곳도 많다”고 전했다. 개미마을에서 45년 살았다는 정모(80)씨는 “10년째 방치돼 비가 많이 오면 쓸려 내려올까 노심초사”라며 “재개발을 생각하고 집을 사두곤 방치한 집이 너무 많다”고 했다. 또 다른 주민도 “주말이면 외지인들이 와서 살 만한 집 없냐고 묻는다”고 했다.

◆“지분 쪼개기에 개발·재생 대안 사라져”
점점 더 심해지는 토지 지분 쪼개기는 개미마을의 미래를 앗아갔다.
걷고싶은도시만들기시민연대는 이미 2014년 서울시가 발주한 개미마을 실태조사를 진행한 뒤 “시급한 조치가 시행돼야 하지만 개미마을에 대한 개발이나 재생에 대한 대안이 현재에는 없다”며 “개발 바람을 타고 대내외적으로 성행한 쪼개기 행태는 마을의 토지소유관계를 복잡하게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상황을 해결하지 않으면 재개발은 더욱 어려워지고 마을은 방치될 거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소유자가 많아질수록 더 대책을 찾기 어려워진다”면서 “투기세력이 몰릴수록 동의율을 달성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조정흔 감정평가사는 수십년간 방치된 문제를 지적하며 “개미마을 주민들이 불하받은 지분을 판 것은 형편이 어려워졌기 때문인데 소액 투자로 시민들끼리 싸우는 형국이 될 것”이라며 “공공이 우선 매수하고, 그렇게 지분이 일정 부분 확보되면 공공재개발을 하는 식으로 복잡한 지분 구조를 해결할 방법을 찾았어야 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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