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더 라이징 월드(The Rising World): 물의 정령’이 지난달 25일 초연 후 31일 공연으로 첫 무대 막을 내렸다. 예술의전당이 제작극장으로서 새로운 도약을 선포하며 제작한 작품이다. 예술의전당은 이 작품을 대만 국립 타이중극장,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도쿄 신국립극장 등에서 재연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창작 오페라가 관객을 다시 만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국립오페라단이 매년 1편가량 창작 오페라를 무대에 올리지만, 악보가 다시 세상 빛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해외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북미 오페라 진흥기관인 ‘오페라 아메리카’는 2015년 ‘북미 오페라 리포트’를 통해 창작 오페라의 재연 가능성을 분석했다. 1995년부터 2015년까지 미국과 캐나다에서 초연된 창작 오페라 589편 가운데, 단 71편(11%)만이 한 차례 이상 재연됐다. 이마저도 절반 가까이는 1~2회 공연에 그쳤고, 10회 이상 무대에 오른 작품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처럼 가혹한 현실 속에서도 여러 차례 무대에 오른 극소수 작품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명확한 서사와 보편적 주제 의식이다. 초연 이후 40회 이상 공연된 제이크 헤기의 ‘데드 맨 워킹(Dead Man Walking)’은 그 대표적 사례다. 실화를 바탕으로 사형수를 돌보는 수녀의 갈등과 용서 과정을 그린 이 작품은 도덕적 딜레마를 관객이 스스로 성찰하게 한다. 죄책감과 구원, 인간 존엄성과 같은 보편적 주제를 진지하게 탐색한다는 점에서 높은 공감을 얻었다. 60회 이상 공연된 마크 아다모의 ‘작은 아씨들(Little Women)’은 고전 소설을 무대화한 ‘교육용 창작 오페라’. 자매들의 성장과 독립, 사랑과 상실이라는 주제를 정서적으로 풀어냈고, 원작의 친숙함이 관객의 몰입을 높였다.

이처럼 다시 무대에 오르기 위한 새 오페라의 필수 조건이 뚜렷한데 ‘더 라이징 월드(The Rising World)’는 아직 채워야 할 점이 많아 보인다. 예술의전당은 “원인 모를 병으로 세상과 단절된 공주가 사는 왕국에서 수소문 끝에 물시계 장인과 제자를 불러들여 물시계를 제작하고, 장인이 공주를 구한다”고 줄거리를 소개한다. 이 과정에서 ‘물’과 ‘시간’이라는 보편적 상징을 통해 인류 공통의 정서에 호소하고, 전통 오페라의 관습을 탈피해 두 명의 여성 캐릭터(공주·장인)를 중심으로 한 혁신적 서사를 펼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실제 무대에서 확인한 줄거리는 ‘물귀신 들린 공주 구마(驅魔)극’ 이상의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물’과 ‘시간’이라는 상징은 피상적이어서 객석에 충분히 와 닿지 않았다. 프로그램 북에서 작가 톰 라이트는 단순한 환경 메시지를 넘어, 인간 존재의 불안정성과 세계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근원적 두려움을 다루고자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작품 속 지루한 궁정 회의나 장인과 제자의 대화 어디에서도 이러한 주제의식은 명확히 구현되지 않았다.

스티븐 카르의 연출 역시 설득력을 얻기 어려웠다. 정상급 소프라노 황수미는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흰옷 차림으로 시녀와 함께 머리를 휘젓고 팔을 꺾으며 ‘물귀신에 사로잡힌 상태’를 표현했다. 2막 구마극 절정에서 황수미는 입에 큰 대롱을 문 채 물속으로 들어가고, 이윽고 검은 망토를 뒤집어쓴 물귀신이 등장하나 장인 인도로 이내 물시계로 같이 들어간다. 장엄함이나 시적인 은유보다는 오히려 과장된 느낌을 주었고, 거문고·수묵화 배경 등 ‘한국적 요소’ 역시 극의 흐름과 유기성을 잃어 관객의 몰입을 방해했다.
음악 역시 인물과 사건을 견인하는 에너지를 갖춘 지 의문이다. 작곡가 메리 핀스터러는 ‘바이오그래피카(Biographica)’(2017), ‘안타르크티카(Antarctica)’(2022)라는 두 편의 현대적이고 실험적인 오페라를 발표해 호평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전작들은 체임버 오페라로서 전통적 전막 오페라와는 연출과 기술적 규모에서 차이를 보인다. 다만 장인 역을 맡은 메조소프라노 김정미의 헌신적인 연기와 노래, 노이 오페라 코러스의 웅장한 합창은 분명 인상적이었다.

‘더 라이징 오브 월드’가 던진 또 하나의 질문은 ‘K-오페라란 무엇인가’다. 예술의전당은 이 작품을 “한국적 소재와 동서양의 경계를 넘나드는 글로벌한 재해석”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세계적 악보사 쇼트뮤직(Schott Music) 소속 작곡가 메리 핀스터러와 외국 제작진 참여를 강조했다. 그러나 작품속 한국적 요소는 거문고 연주와 우리말 대사가 잠시 등장하고 물시계가 자격루를 연상시키는 정도다. 그만큼 이 작품 초연으로 예술의전당과 국내 음악계가 거둔 성과나 자산이 분명치 않은 점 역시 아쉬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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