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가 세계를 감각하는 법/ 케일럽 에버렛/ 노승영 옮김/ 위즈덤하우스/ 2만2000원
눈으로 덮인 세상에서 사는 그린란드 이누이트족에게는 눈을 표현하는 낱말이 여럿이다. 지금은 너무도 당연한 사실로 여겨지는데 1911년 미국 인류학의 창시자 프란츠 보아스가 이런 사실을 발표할 당시 큰 주목을 받았다. 보아스의 눈 낱말 연구는 언어 구사자의 구체적인 사회적 필요와 환경이 언어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동안 서구 중심으로 이루어진 언어학 연구는 이러한 차이점보다는 영어를 중심으로 한 공통점이나 보편적 특징을 찾는 데 집중해왔다.
신간은 아마존, 동남아시아, 태평양, 오세아니아 등지의 비영어권 언어들을 분석하며, 언어가 단순한 소통 수단을 넘어 삶의 방식과 인식을 형성하는 데 깊이 관여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저자는 수천만 명이 사용하는 라오어에는 ‘산’과 ‘언덕’을 구분하는 낱말이 없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라오스의 지형은 경계가 불분명한 능선과 골짜기로 구성돼 하나의 포괄적 단어만으로 산악 지형을 표현한다.

볼리비아와 페루의 아이마라어는 과거를 앞, 미래를 뒤에 두는 시간 은유를 지닌다. 과거는 보았고 알고 있는 것, 미래는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시간관은 몸짓에도 반영돼, 미래를 지칭할 때 뒤를 가리키는 독특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사례들은 언어가 공간과 시간을 인식하는 방법까지도 담아낸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저자는 언어 다양성의 미래에 대해 낙관과 우려를 함께 제시한다. 언어 소멸이 가속화되면서, 인간 사고의 다양성과 문화적 자산이 사라질 위험이 커지고 있다. 특히 소수 언어 화자들이 교육, 생존, 경제적 기회를 위해 다수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언어를 포기하는 일이 빈번하다. 인공지능 기반의 기계 번역 기술이 발달하면서 주류 언어의 영향력이 더욱 강화되고, 소수 언어가 기술 생태계에서 밀려날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저자는 다양한 언어들이 기록되고 연구된다면,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방식에 대한 통찰이 더 깊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또 언어는 단지 말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방식과 직결된다는 인식이, 앞으로의 언어 연구에 필요한 시각임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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