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연장·연금개혁, 인구와 직결
따로따로 아닌 한 틀에서 논의를”
한국 사회의 정치적 갈등이 임계점에 다다랐지만 지금이 ‘대전환기’라는 데 이견은 없다. 해법에 대한 의견은 갈린다. 교육·노동·연금 등 개혁이 제자리를 맴도는 이유다.
권혁주 한국행정연구원장은 “교육·노동·연금 개혁이 사실은 다 연결돼 있다”며 “개혁안을 따로따로 논의할 게 아니라 사회적 대전환이란 관점, 하나의 틀 속에서 통합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진단을 내놓는다. 기존과는 접근법을 달리하자는 제안이다.

권 원장은 지난 20일 서울 은평구 연구원에서 가진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저출산·초고령화와 인공지능(AI) 로봇 시대의 관점에서 교육·노동 개혁이 추진돼야 한다”며 “정년 연장과 연금 개혁안도 연결 지어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 구조에서 노동 인구가 줄면 고령 인구도 일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는 정년 연장과 직결된다. 저출산은 대학 입학 정원 미달, 초고령화는 연금 고갈과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다.
국책 연구 기관인 연구원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사회적 대전환기 국가 역량에 대한 연구를 2027년까지 3년간 진행한다. 공무원 개인의 역량, 공직 사회의 조직 역량, 행정제도 역량이 달라져야 대전환기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인 권 원장은 지난해 9월 제13대 원장에 취임했다.
권 원장은 “사회가 변했는데 과거의 관점에선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며 “지역 균형 발전 정책도 지식산업과 서비스업이 국내총생산(GDP)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경제구조 변화를 감안해 수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의 지방행정 체제는 산업 생산에서 농업이 50% 이상을 차지하던 시절에 형성됐습니다. 농업 시대엔 인구가 전 지역에 고르게 분포돼야 합니다. 토지가 생산 수단이니까요. 지식산업은 지역이란 2차원적 면이 아니라 1차원의 지점, 한 벤처 타워에 전문 인력이 집중돼 활동합니다. 지역 균형 발전은 지식산업의 ‘핫스팟’을 만들어 생산적 인구를 유인하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해요.”

권 원장은 같은 맥락에서 대통령실과 국회의 세종시 이전이 지속 가능한 균형 발전 전략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행정기관은 이윤을 창출하는 생산자가 아니라서다. 권 원장은 “지난 20년간 공공기관 이전, 혁신 도시를 통해 지역 발전에 상당한 효과가 있었다”면서도 “행정기관이 옮겨 가면 인구 증가 결과가 금방 나타나지만 일정 수준 이상으로는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다”고 쓴소리했다.
차기 정부 조직 개편과 관련해서도 권 원장은 “기존 부처를 분리하거나 다른 부처로 이관하는 방식은 가능한 지양해야 한다”며 “하드웨어 개편보다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부처 장관에 대한 권한 위임, 정책 문제엔 해당 부처가 전문성을 발휘해 의사 결정을 하고 책임지는 식의 개선이 급선무라는 설명이다. 이는 개헌의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

권 원장은 “지금까진 개헌 논의가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가 행정 관료제를 어떻게 통제하느냐를 중심으로 이뤄졌지만, 행정의 전문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논의도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력 구조 개편에 치우쳐 ‘정치와 행정의 관계’란 알맹이가 빠져 있다는 것.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는 말이 있는데, 헌법을 준수하는 헌법 정신과 정치적 중립성, 전문성이 공무원의 영혼이에요. 그런 영혼을 지켜 줄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합니다. ‘행정 차관 제도’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공무원이 차관까지만 할 수 있게 하되, 행정 라인은 정무 라인과 거리를 두고 운영하는 거죠. 행정 차관이 부처 전문성과 중립성을 보호하는 겁니다. 정권이 바뀌어도 공무원 전문성을 보장하는 정신을 헌법에 담아낼 필요가 있어요.”
이는 공무원에 대한 사회적 존중, 공무원 보수 인상과 처우 개선의 필요성으로 수렴된다. 권 원장은 연구원의 ‘2024년 공직 생활 실태 조사’에서 낮은 보수를 이유로 공무원 이직 의향이 조사 이래 최고치였던 점을 들면서 “국민들이 더 질 좋은 공공서비스를 원하는데 그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 부문의 처우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며 “보수나 처우가 형편없는데 좋은 서비스를 기대하는 건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권 원장은 이어 “정부가 주도적으로, 하향식으로 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더라도 민간에서 창조적으로 일하고 국가가 발전하려면 공공 부문이 인프라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며 “공무원들이 그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회적 존중을 통해 서비스를 요구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권 원장은 그 방안으로 직무 난이도 등을 분석해 임금에 반영, 공정한 보상이 가능한 ‘직무 기반 보상 체계’의 단계적 도입을 제시했다.
사회 통합과 관련해선 ‘통합 잠재력’에 기반한 정책 설계를 역설했다. 권 원장은 “연구원의 ‘2024년 사회 통합 실태 조사’에서 국민 다수가 공동체 연대 같은 사회적 가치를 중시한다고 답했다”며 “통합을 수용하려는 정서적 기반이 존재한다는 건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가능케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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