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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반체제 감독’ 파나히, 황금종려상 품다

입력 : 2025-05-25 21:11:01 수정 : 2025-05-25 21:4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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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국제영화제 최고상 수상

‘잇 워스 저스트 언 액시던트’ 영예
구금·징역 등 탄압 속 꾸준히 제작
세계 3대 영화제 최고상 휩쓸어
韓 ‘첫여름’ 허가영, 학생 부문 1등

“모든 문제와 차이를 제쳐둡시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와 우리나라의 자유입니다.”

 

24일(현지시간) 폐막한 제78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잇 워스 저스트 언 액시던트(It Was Just An Accident)’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이란 감독 자파르 파나히(64)는 기립박수를 받으며 무대에 올라 국내외 이란인들을 향해 이렇게 호소했다.

영화 ‘잇 워스 저스트 언 액시던트’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자파르 파나히가 24일(현지시간) 프랑스 남부 칸에서 열린 제78회 칸국제영화제 시상식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UPI연합뉴스

1995년 장편 데뷔작 ‘하얀 풍선’으로 칸영화제 신인상 격인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은 그는 경력 대부분을 이란 권위주의 정부와 반목하며 보냈다. 파나히 감독은 이란 정치·사회 문제를 파고든 작품을 주로 발표해 구금·징역·가택연금 등 각종 고초를 겪었다. 2010년에는 반체제 선전 등을 이유로 20년간 영화 제작 금지와 출국 금지 처분까지 받았다. 

 

그럼에도 그는 몰래 영화를 만들어 계속해서 국제영화제에 출품했다.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2011)로 칸영화제 감독주간 황금마차상(공로상)을, ‘3개의 얼굴들’(2018)로 각본상을 수상하기도 했지만 현장에 참석하지는 못했다. 파나히 감독이 칸영화제가 열리는 뤼미에르 대극장 무대를 직접 밟은 건 2003년 이후 22년 만이다. ‘잇 워스 저스트 언 액시던트’는 그가 2022년 7월 또다시 체포된 후 단식 투쟁을 벌인 끝에 이듬해 2월 보석으로 풀려나 처음 만든 작품이다. 정치범으로 수감됐던 한 남자가 감옥에서 자신을 괴롭힌 고문 기술자로 의심되는 사람을 우연히 마주치며 일어나는 일을 그린 영화다. 

 

쥘리에트 비노슈 심사위원장은 황금종려상 수상작을 발표하면서 “예술은 우리의 가장 소중하고 살아있는 부분의 창의적 에너지를 움직인다”며 “어둠을 용서, 희망, 새로운 삶으로 바꾸는 힘”이라고 말했다. 비노슈 위원장은 “이 영화는 저항과 생존의 감정에서 비롯되었고, 그것은 오늘날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라며 파나히의 끈질긴 저항과 창작 활동에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2000년 ‘써클’로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2015년 ‘택시’로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을 받은 파나히는 이번 수상으로 세계 3대 영화제 최고상을 모두 석권한 역대 다섯 번째 감독이 됐다.

 

이번 수상으로 미국 배급사 네온이 6회 연속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을 배출하는 진기록도 세웠다. 네온은 2019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시작으로 6년 내리 황금종려상 수상작을 배출해 다시 한 번 안목을 증명했다. 

 

2등상인 심사위원대상은 덴마크 출신 노르웨이 감독 요아킴 트리에르의 가족 드라마 ‘센티멘털 밸류’가 받았다. 까다로운 영화감독 구스타프가 소원한 딸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큰딸을 자신의 자전적 영화에 출연시키려는 이야기를 다룬다.

 

심사위원상은 모로코 사막을 배경으로 실종된 딸을 찾아 나선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린 스페인·프랑스 영화 ‘시라트’(올리비에 라시)와 여러 세대에 걸친 인간 드라마를 그린 독일 작품 ‘사운드 오브 폴링’(마샤 실린슈키)이 공동 수상했다. 

 

1970년대 브라질을 배경으로 부패한 정계에서 벗어나려는 학자의 이야기를 그린 스릴러 ‘시크릿 에이전트’는 감독상(클레베르 멘돈사 필류)과 남우주연상(와그너 모라)을 차지했다. 여우주연상은 ‘더 리틀 시스터’에서 열연한 23세 프랑스 배우 나디아 멜리티가 받았다. 각본상은 황금종려상을 두 차례 받은 거장 감독 장 피에르 다르덴·뤼크 다르덴 형제의 ‘더 영 마더스 홈’에 돌아갔다.

 

올해 한국 영화는 경쟁 부문 진출엔 실패했다. 전 세계 영화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라 시네프’ 부문에서 1등을 차지한 ‘첫여름’을 연출한 허가영 감독이 유일한 한국인 수상자다.


이규희 기자 lk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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