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을 매겨 상품화하는 자본주의
주의력 착취 구조적 시스템 분석
유권자 주의력 빼앗기 싸움 ‘정치’
주의력의 가치 명확하게 드러내
한정된 자원으로서 해법 접근도
사이렌스 콜/ 크리스 헤이즈/ 박유현/ 사회평론/ 1만9800원
인간이 기울일 수 있는 주의력은 한정돼 있다. 그런데 모든 이가 이 한정된 자원을 서로 뺏으려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요즘 ‘주의력 자본주의(Attention Capitalism)’가 회자하고 있다. 주의력 자본주의는 우리의 ‘주의’ 자체가 경제적 자산으로 전환되는 체계를 말한다.

저자는 인간의 주의력에 값을 매겨 이를 상품화하는 주의력 자본주의의 논리가 사회 곳곳에 침투한 시대를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현대 사회에서 주의력이 어떻게 상품화됐고, 이로 인해 개인과 사회가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지 보여준다. 책 제목 사이렌스 콜(Sirens’ Call)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뱃사람을 유혹하여 파멸에 이르게 한 사이렌의 노래에서 유래한 은유다. 책에서 사이렌은 단순히 아름답고 치명적인 노래가 아니라, 우리가 저항할 수 없는 주의력 착취의 구조적 메커니즘을 상징한다.
저자는 역사적 사례를 통해 우리의 주의력이 어떻게 착취되어왔는지 추적한다. ‘스팸’은 주의력 착취의 대명사다. 19세기 프랑스에서는 스팸이 있었다. 파리는 도시 곳곳에 난무하는 포스터로 골머리를 앓았다. 시민들의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포스터가 도시 전체를 뒤덮자 사람들은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시민들은 급기야 프랑스 경관을 보호하는 협회를 조직해 포스터를 규제한다. 우편 사업이 본격화되면서부터는 우체통으로 홍보물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이 흐름은 그대로 스팸 메일로 이어졌다. 책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미국 내 전체 우편물의 3분의 2가 홍보물이다. 또 전 세계 이메일 트래픽의 50∼90%가 스팸이다.

주의력 자본주의의 논리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영역 중 하나가 ‘정치’다. 정치인들은 유권자의 주의력을 빼앗아 공론장을 무너뜨린다. 공공 담론이 클릭 수와 알고리즘의 추천에 의해 왜곡되고, 진지한 토론보다 자극적이고 분열적인 콘텐츠가 더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주의력 자본주의를 활용해 가장 성공한 인물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주의력이 상품화되는 시대에서 정치인들이 하는 발언의 진위는 중요하지 않다. 좋든 나쁘든 관심을 많이 받는 게 좋다. 2016년 처음 대선에 도전했던 트럼프는 멕시코 정부가 강간범과 이민자들을 미국으로 보내고 있다는 가짜뉴스를 퍼뜨리고, 무슬림의 미국 입국을 금지해야 한다고 터무니없는 주장을 했다. 이런 불쾌하기 짝이 없고 반헌법적인 주장을 한 트럼프는 상대 후보 힐러리 클린턴보다 300만표나 적게 득표했음에도, 그 어떤 정치인보다도 더 많은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받으며 결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상대방 말 끊기, 논점 흐리기, 가짜뉴스 유포 등 진지한 구석은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그 누구보다 사람들의 주의력을 사로잡는 데 탁월했고 대통령까지 됐다. 주의력 시대에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남들의 주의력을 사로잡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주의력 자본주의는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관광 잠수정 타이탄호 보도가 대표적인 사례다. 2023년 6월 미국의 해양 탐사 기업 오션게이트가 운영하던 관광용 잠수정 타이탄호에는 부자 5명이 타고 있었다. 잠수정과의 연락이 두절되자 대규모 다국적 구조대가 투입되어 수색에 나섰고, 이 사건은 세계적인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 수백 명의 가난한 이민자가 탄 배가 지중해에서 전복된 비극적 사고는 언론의 관심을 거의 받지 못했다. 심지어 이러한 언론 보도의 불균형을 비판한 언론 매체조차 난민이 겪은 교통사고는 다룬 적이 없다. 이와 비슷한 이유로 기후 위기도 미디어의 관심 대상이 되지 못한다. 서서히 진행되는 전 지구적 기후 위기는 독자나 시청자의 시선을 끌 만한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결국 한정된 자원이 된 주의력을 둘러싼 전쟁은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대상에서 멀어지게 함으로써, 정작 우리의 관심과 이해가 필요한 영역을 방치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우리는 과연 자유 의지대로 주의를 기울일 수 있을까? 저자는 단순한 사용자 교육이나 디지털 디톡스 운동만으로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주의력 직거래 시장’이 그 대안이 될 수도 있다고 제안한다. 테크 기업의 알고리즘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가 자발적으로 주의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예컨대 스트리밍 사이트를 이용하지 않고 가게에서 LP 앨범을 직접 사서 골라 듣는 것, 소셜미디어나 뉴스레터가 아닌 종이 신문을 구독하여 기사를 정독하는 일 등이다.
저자는 “주의력을 테크 기업이나 정치인에게 의탁하지 않고, 스스로 주의를 기울일 대상을 찾아 나서야 한다”고 당부한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