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테흐스 “국제사회에 독일의 리더십 필요”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미국과 유엔의 관계가 급격히 얼어붙은 가운데 유엔이 독일의 역할 확대를 주문하고 나섰다. 독일은 유엔 운영을 위해 내는 분담금 액수가 미국, 중국, 일본에 이어 4번쨰로 큰 나라다.
14일(현지시간) dpa 통신에 따르면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베를린을 방문해 프리드리히 메르츠 신임 독일 총리와 회담했다. 구테흐스는 “지정학적 분열과 불신이 커지는 세계에서 독일의 리더십과 목소리는 필수적”이라며 “유엔은 독일이 전 세계에 걸친 분쟁 해결을 위한 국제적 연대 구축과 대안 제시에 적극 나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구테흐스는 구체적 언급을 삼갔으나 유엔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전부터 유엔에 회의적 태도를 보여 온 트럼프가 유엔과 산하 기구, 유엔이 펼치는 각종 개발·원조 사업에 대한 미국 정부의 자금 지원을 대폭 삭감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미국은 유엔에 기구의 대폭 축소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유엔은 사무국 운영은 물론 평화유지활동(PKO) 분야에 종사하는 인원의 약 20%를 줄여야 하는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구테흐스는 “지금은 과거보다 더 어려운 시기”라며 “유엔은 더 효율적이고 슬림한 조직으로 거듭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2023년을 기준으로 유엔 분담금을 가장 많이 내는 국가는 미국이다. 이어 중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순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영국·프랑스보다도 독일이 오히려 유엔 운영에 재정적으로 더 크게 기여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6일 독일 총리로 취임한 메르츠는 유럽과 국제사회를 향해 ‘강한 독일’을 표방했다. 총리 후보자 시절 그는 “유럽과 국제사회를 위해 독일이 더 큰 역할을 해야 한다”며 “독일이 돌아왔다”(Germany is back)고 외쳤다. 이런 독일을 향해 구테흐스가 “유엔에서도 더 큰 역할을 해달라”고 러브콜을 보낸 셈이다. 2024년 기준으로 독일의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미국, 중국에 이은 세계 3위다.
이날 메르츠는 유엔 본부가 있는 뉴욕의 물가가 대단히 비싸다는 점을 거론하며 비용 절감을 위해 유엔 부서 일부를 독일 본에 재배치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구테흐스에게 제안했다. 독일이 동·서독으로 분단됐던 시절 서독의 수도였던 본은 기후변화협약 사무국, 사막화방지협약 사무국, 세계보건기구(WHO) 유럽환경보건센터 등 다양한 유엔 사무소가 들어서 있다. 메르츠는 또 독일이 오는 2027∼2028년 2년 임기의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구테흐스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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