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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칼럼함께하는세상] 인종주의, 너무나 위험한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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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5-14 22:48:16 수정 : 2025-05-14 22:4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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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주의’라는 단어는 100여년 전에 생긴 단어이다. 이 단어가 널리 사용된 것은 1935년부터이다. 당시 독일의 나치는 유덴라인(judenrein), 즉 ‘유대인 청소’를 외쳤다. 나치는 유대인을 별개의 ‘인종’으로 여기고, 이 ‘인종’이 정통 독일인 계보로 여겨진 아리아인에게 위험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인종주의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인간의 특성, 능력 등이 인종에 의해 결정되고, 우월한 인종과 열등한 인종이 있다는 신념”이다. 따라서 이런 신념을 인정하거나 수용하는 것은 다양한 인종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지독한 편견이다. 유럽평의회는 이런 인종주의를 단호히 거부한다. 왜냐면 지구상에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인종 하나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장한업 이화여대 다문화·상호문화협동과정 주임교수

인종주의의 역사는 매우 길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그리스어를 못하거나 서툰 사람들을 ‘야만인’이라고 부르며 자신들과 구분했다. 고대 중국 사람들은 한자를 모르는 사람들을 ‘오랑캐’라 부르고 모두 비하했다. 중세 유럽에서는 기독교와 유대교의 갈등으로 인종주의가 기승을 부렸다. 하지만 인종주의가 이론적으로 체계화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부터이다. 그 출발점은 스웨덴 식물학자 린네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동식물 분류를 확장해 인간을 아메리카누스, 에우로파이우스, 아시아티쿠스, 아페르라는 네 개의 부류로 나누었다. 이것의 기준은 피부색과 외모였다. 같은 세기 독일 철학자 칸트는 인종이론을 최초로 정립했다. 그는 “어떤 사람의 피부색이 새카맣다는 것은 (…)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이런 이론은 백인이 흑인을 노예로 삼는 것을 정당화했다. 19세기 영국 사회학자 스펜서는 ‘적자생존’이라는 말을 쓰며 백인의 우월한 기술과 세련된 관습이 백인이 ‘적자’임을 보여주는 것이고 따라서 백인이 흑인을 다스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는 인종주의와 같은 맥락인 우생학이 널리 퍼졌다. 나치 독일은 이 우생학을 근거로 600만명의 유대인, 슬라브인, 폴란드인 등을 대량 학살했다. 이 홀로코스트는 인간의 폭력성, 잔인성, 배타성, 광기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일부 서양 학자들은 이런 인종주의를 우려하고 비판했다. 유네스코 초대 총장을 지낸 영국 생물학자 헉슬리는 1935년 ‘We Europeans’라는 글에서 “인종주의는 신화이다. 그것도 위험한 신화이다. 그것은 만약 그대로 드러내면 흉측하기 그지없을 이기적인 경제적 목적들을 교묘히 은폐한다”고 말했다. 1950년 7월 유네스코는 소위 ‘과학적 인종주의’를 거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후 미국과 유럽에서 반인종주의 운동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자 ‘인종주의자’라고 불리는 것을 매우 수치스럽게 여기게 되었다. 그래서 정치인이나 일반인 중에서 스스로를 인종주의자라고 자처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졌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영국, 미국, 프랑스에서 이전의 공공연한 인종주의와는 다른 은밀한 인종주의가 나타났다. 이 새로운 인종주의는 생물학적 차원을 배제하는 대신 문화와 민족 차이를 내세워 인종주의를 교묘하게 피하려는 신종 인종주의이다. 신종 인종주의의 한 형태로서, 전 세계 각국에 모여드는 이민자들에 대한 무시와 차별을 들 수 있다. 이들 문화, 언어, 관습 등에 대한 일상적인 멸시와 차별은 오늘날 우리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 중 하나이다.

 

장한업 이화여대 다문화·상호문화협동과정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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