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정부가 편성해 놓고 못 쓴 예산이 20조원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세수입이 본예산 대비 30조원 이상 감소하는 대규모 ‘세수펑크’가 발생하면서 정부가 그만큼 허리띠를 졸라맨 것이다. 국세수입에 연동된 지방교부세(금)가 6조원 이상 줄었고, 사업비는 7조원 가까이 불용됐다. 정부는 사업비 불용액이 예년 수준이라고 밝혔지만,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2.0% 정도에 그친 점을 감안하면 경기 방어를 위한 재정의 역할이 충분치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24회계연도 총세입 총세출 마감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예산상 불용액은 20조1000억원으로 집계됐다. 56조4000억원에 달하는 사상 최대의 세수펑크가 발생했던 2023년도 결산상 불용액(45조7000억원)보다 감소했지만 2022년(12조9000억원)보다 7조원 이상 컸다.
결산상 불용액은 정부가 계획한 예산에서 총세출과 이월액을 뺀 금액을 말한다. 기재부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 554조원을 쓰겠다고 밝혔지만 529조5000억원만 집행했다. 다음 해로 넘기는 이월액은 4조5000억원으로 집계됐다.
불용액을 항목별로 보면 정부는 국세수입과 연동해 지자체에 보내는 지방교부세 및 교부금을 6조5000억원 줄였다. 또 특별회계나 기금 등으로 전출하는 정부 내부거래에서도 4조3000억원의 불용이 발생했다. 여기에 실질적으로 경기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비 불용액이 6조8000억원, 예비비 불용액은 2조5000억원에 달했다. 기재부는 다만 7조원에 달하는 사업비 불용의 경우 집행여건 등 변화에 따라 예년과 유사한 수준에서 발생했다며 인위적인 불용은 없다고 밝혔다.
지난해 20조원 이상의 대규모 불용이 발생한 것은 2023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대규모 세수결손이 발생한 탓이다. 세수 부족분을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없이 가용재원을 활용해 메우다 보니 불용 규모가 확대된 것이다.
지난해 국세수입은 336조5000억원으로 본예산(367조3000억원)과 비교해 30조8000억원 줄었다. 기재부는 세수재추계를 통해 작년 국세수입을 337조7000억원으로 전망했는데, 이보다 1조2000억원 적게 걷혔다. 세목별로 보면 법인세가 기업실적 감소에 따라 전년 대비 17조9000억원 감소하며 세수 결손을 견인했다. 양소소득세가 토지 등 부동산 거래 부진 등으로 9000억원, 관세가 수입감소 등으로 3000억원 감소했다. 소득세와 부가세 수입은 전년보다 양호했다. 소득세는 작년 한 해 117조4000억원 걷혀 전년 실적보다 1조6000억원 늘었다. 부가가치세는 지난해 민간소비가 1.1% 증가하고 소비자물가가 2.3% 상승한 영향 등으로 전년보다 8조5000억원 늘어난 82조2000억원 걷혔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해 1분기에 수출이 괜찮아서 재정이 필요 없었는데 선거를 앞두고 정부 재정이 늘어 건설투자가 급증했던 반면 정작 경기가 가라앉은 시점에서는 (재정이) 제 역할을 못했다”면서 “정부 내부거래 불용액에서 회계 및 기금 간 정산이 제대로 안됐다면 각종 기금이 제대로 작동 안했다는 의미다. 실질적인 문제가 생길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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