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찬성 5명 외엔 이탈표 없는 듯
민주서 오히려 반대·무효표 가능성
김웅 “당론 부끄럽다” 조국 “다시 심판”
박주민 “與 당선인 설득전략 고민해야”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28일 국회 본회의에 다시 상정된 채 상병 특검법이 여유 있게 부결됨에 따라 여권은 일단 한숨을 돌리게 됐다. 정부·여당 리더십이 치명상을 입는 최악의 상황은 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30일 개원하는 22대 국회에서 192석으로 불어난 범야권이 특검법 재발의를 벼르는 데다 원 구성 협상이나 민생법안 처리도 이와 연계될 수밖에 없어 당분간 안갯속 대치 정국이 이어질 전망이다.

◆“탄핵열차 피했다” 한숨 돌린 與
국민의힘은 이날 오후 3시15분 본회의 표결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긴장의 끈을 늦추지 못했다. 전날 김근태 의원이 특검 찬성 입장을 밝히면서 ‘이탈 대오’가 5명으로 늘어난 데다 최근 잇따른 군내 사망사고가 채 상병 특검 여론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다.
국민의힘은 본회의 직전 의원총회를 열어 당내에 남아 있는 ‘탄핵 트라우마’를 자극하면서 부결 당론을 채택했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의총에서 “오늘 이 특검법이 가결되면 야당은 곧바로 탄핵열차에 시동을 걸 것”이라고 주장했다. 비상대책위원인 유상범 의원은 본회의 반대토론에서 “고인(채 상병) 영결식에도 불참하며 최소한의 성의조차 보이지 않던 민주당은 전 해병수사단장이 대통령실 외압 의혹을 언급하자 태도가 급변해 이 사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며 “대통령 탄핵의 교두보 마련을 위해 자기 입맛에 맞는 수사 결과를 내도록 민주당이 단독 추진한 이 특검법은 정치적 이익을 위해 삼권분립 정신을 훼손하고 공정한 사법작용을 마비시키려는 다수당의 폭정”이라고 했다.
국민의힘은 소속 의원 113명 전원이 본회의에 참석했다. 당 지도부의 출석 독려에 모두가 응한 것이다. 재표결 가결 정족수는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이므로 출석률이 저조하면 애초 예상됐던 17표보다 더 적은 찬성표로도 법안이 통과된다.

이날 특검법은 재적 296명 중 294명이 출석한 가운데 찬성 179표, 반대 111표, 무효 4표로 부결됐다. 자유통일당 황보승희, 무소속 하영제 의원을 포함해 범여 성향 의원이 115명임을 고려할 때 찬성 투표를 공개 예고한 안철수·김웅·유의동·최재형·김근태 의원 외의 추가 이탈은 없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오히려 이들 중 일부가 막판에 방향을 선회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들이 모두 찬성표를 던졌다고 가정하면, 야권 출석 의원 179명 중 5명으로부터 반대·무효표가 나온 셈이 된다. 무효표 4표 중 3표는 ‘가’(가결)라고 쓰고 불필요한 표기를 덧붙여 무효 처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4·10 총선 낙선·낙천·불출마 의원이 58명에 달하고, 무기명 비밀투표로 이뤄져 추후 반란자 색출 작업조차 쉽지 않았던 이날 표결에서 여당 의원들이 이같이 똘똘 뭉친 것은 윤 대통령의 당내 장악력이 여전히 확고하다는 방증으로 해석된다. 추 원내대표는 “우리 의원들께서 당론으로 정한 사안에 대해 어긋남이 없이 단일대오에 함께해주셨다”고 평가했다. 대통령실 한 관계자는 “이탈표가 그리 많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며 “특검법 독소조항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된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반면 김웅 의원은 “지난 며칠간 보였던 우리 당의 그 정성과 그 간절함, 권력의 심기를 지키는 데가 아니라 어린 목숨 지키는 데 쓰시라”며 “(부결) 당론이 진정 부끄럽지 않다면 나를 징계하시라. 나는 찬성했다”고 밝혔다. 개혁신당 이준석 전 대표도 여당 의원들을 겨냥해 “그렇게 갈취당하고, 얻어맞으면서도 엄석대의 질서 속에서 살겠다고 선언한 학생들”이라고 꼬집었다.

◆22대서 재추진 벼르는 野
채 상병 특검이 결국 좌초되자 야권은 ‘탄핵’을 다시 언급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부결 직후 기자들과 만나 “국민의 간절한 의지를 국민의힘 의원들께서 꺾어버리셨는데 참으로 옳지 않은 처신”이라고 비판했다. 조국혁신당 황운하 원내대표는 국회 로텐더홀에서 야6당이 연 규탄대회에서 “윤석열 정권이 마침내 탄핵열차에 연료를 채우고 시동을 걸고 말았다”고 주장했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도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이 아니라 ‘대통령의힘’ 하려고 배지 달았냐”며 “총선에 이어 심판의 시간이 당신들을 기다릴 것이다. 이 꽉 깨무십시오”라고 했다. 방청석에서 본회의 진행 상황을 지켜보던 해병대 예비역 연대 회원들도 고성을 지르며 격하게 항의했다.
야권은 6월1일 장외집회를 이어가는 동시에 22대 국회 개원 직후 채 상병 특검법을 재발의할 예정이다. 다만 야당 셈법은 복잡해졌다. 여 108석·야 192석인 22대에서는 여당에서 이탈표가 8표만 나와도 대통령 거부권이 무력화되지만, 이번 표결에서 여당 반란 대오 규모가 일각에서 예상했던 10명보다 훨씬 적었던 까닭에 법안 처리에 난관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간 국민의힘 의원 대상으로 친전을 발송하는 등 설득 작업을 해온 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이날 본회의 종료 후 CBS라디오에 출연해 “22대 국회 때는 국민의힘이 지금보다 더 단단해질 것”이라며 “(이번에는) 50명 넘게 낙선한 분이 있었던 데 반해 (22대에) 새로 들어오는 분들은 당선돼 기분 좋게 들어온 분들이라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에 대해 전략을 짜고 체계적으로 움직이는 걸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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