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만 공무원 1만7000여명 동원돼
“개표, 다음날 오후에나 끝날 듯” 한숨
사전투표 이틀 차출 남원 공무원 숨져
최대 2일 휴무 등 정부 대책 마련에도
‘명부 작성’ 등 업무엔 적용 안돼 반발
공무원노조 “선거 근무여건 개선해야”
제22대 국회의원선거(총선)을 하루 앞둔 9일, 공무원 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정부가 ‘부정선거’ 의혹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사람이 손으로 직접 투표지를 확인하는 수검표 절차를 다시 도입하기로 하면서 특히 개표사무원으로 투입되는 이들의 원성이 높다. 정부가 휴무일 추가 보장 등 대책 마련에 나섰으나, 일선 공무원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본투표일인 10일 투표사무원으로 근무할 예정인 서울의 한 자치구 공무원 A(여)씨는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게 아니라 공무원이니까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이번에 수검표 부활로 차출되는 공무원이 더 늘었는데, 오전 5시부터 저녁까지 일해야 하지만 수당은 최저임금 수준이라 ‘일하는 만큼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 한다’는 인식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A씨는 “(선거에 투입되는) 외부 인사들의 경우 투표 사무를 해본 경험이 적어서 결국 공무원을 많이 차출하게 되는데, 왜 우리가 부담을 다 떠안아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서울시와 자치구 소속 공무원은 본투표일에 관리관으로 2257명, 투표사무원으로 1만881명, 개표사무원으로 4759명이 투입된다. 자치구를 모두 포함한 서울시 전체 공무원이 4만8000여명인 점을 감안하면 3명 중 1명 이상이 선거에 동원되는 셈이다. 서울의 또 다른 자치구 공무원 B씨는 “공무원을 ‘공노비’라고도 하는데, 선거 때만 되면 진짜 노비처럼 부려먹어도 되는 줄 아는 것 같다”며 “다들 특히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불만이 많다”고 전했다.

강원지역 한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C씨는 “지역별로 수만 명에 달하는 유권자 명단을 확인하고 만드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선거 며칠 전부터는 선거인명부 등의 도난을 막기 위해 2명씩 밤을 새워야 한다”며 “이런 식의 과중한 업무가 지속되면 선거철에 휴직하려는 사람이 늘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전 유성구 소속 공무원 D씨는 “올해는 비례대표 투표용지를 100% 수검하는데, 아마 선거 다음날 오후나 돼야 끝나지 않을까 싶다”며 “전엔 용돈벌이로 선거사무원을 하려고 했지만, 지금은 여건이 열악해지고 일은 많아 다들 기피한다”고 했다.
지난 5∼6일 진행된 총선 사전투표에서 이틀 간 투표사무원으로 일한 전북 남원시 소속 공무원이 숨지는 일도 있었다. 해당 공무원은 장시간 근무를 한 뒤, 다음날인 7일 아침 쓰러져 이튿날 세상을 떠났다. 이와 관련,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성명을 내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선거가 가장 비민주적인 노동착취의 현장이 되고 있다”며 “현장 공무원들은 지금도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데, 정부는 공무원을 싼값에 부리려는 것도 모자라 인력 감축까지 추진하며 공무원들을 쥐어짜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정부에 선거 관련 근무여건 개선도 촉구했다.

이처럼 공무원 사회의 선거 동원 관련 불만이 이어지자 행정안전부와 인사혁신처는 이달 초 ‘지방공무원 복무규정’과 ‘국가공무원 복무규정’을 개정해 선거일 투·개표 사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이 최대 2일의 휴무를 부여받도록 바꿨다. 국가·지방공무원이 사전투표일을 포함한 공직선거일에 선거사무에 종사하면 휴무 1일을 부여받는 내용이 골자다. 선거사무일이 토요일이나 공휴일일 경우 휴무 1일을 추가해 2일을 쉴 수 있다. 그러나 지방직 공무원이 선거인명부 작성 업무를 하거나 읍·면·동 선관위 간사·서기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엔 적용되지 않는다.
지방직 공무원들은 이에 반발하고 있다. 강원 한 지자체 소속 공무원 E씨는 “선거기간 동안 가장 고생하는 사람들인데, 선거일에 새벽부터 출근하고 투표가 끝날 때까지 남아 정리하는 보상이 휴무 1일이라면 누가 그 업무를 하려고 하겠나”라고 토로했다. 행안부 관계자는 “관련 법에 따른 고유 업무라 이중·중복 보상이 될 수 있어 추가 휴무를 부여하지 않는 것”이라며 “‘투·개표사무원의 휴무 보장’이란 법령 개정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고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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