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중심에 있는 권도형씨를 상대로 미 증권 당국이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배심원단이 권씨와 테라폼랩스가 투자자들을 속인 책임을 인정한다고 평결했다.
5일(현지시간) 로이터·블룸버그 통신 등에 따르면 뉴욕 남부연방법원 배심원단은 이날 열린 재판에서 권씨 및 권씨가 공동설립한 테라폼랩스가 가상화폐 테라가 안전하다고 속여 투자자들에게 거액의 손실을 입혔다는 원고 측 주장을 인정했다.

원고인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2021년 11월 권씨와 테라폼랩스가 투자자들에게 테라의 안정성을 속여 거액의 투자 손실을 입혔다면서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이 재판은 권씨를 상대로 제기된 형사재판과는 별도로 제기된 민사재판으로, 민사재판은 피고인이 직접 출석하지 않아도 진행될 수 있다. 권씨가 몬테네그로에 구금된 탓에 형사 소송 전에 민사 소송이 먼저 진행되는 이례적인 상황이 발생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이번 재판을 맡은 제드 레이코프 판사는 스테이블 코인(가치안정화코인)인 테라폼랩스가 미등록 증권을 판매해 증권법을 위반했다는 의혹에 대해선 지난해 12월 일찌감치 SEC 측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테라가 안전한 자산이라고 투자자들을 속이려는 의도가 있었는지에 대해선 배심원단의 판단이 필요하다고 보고 지난달 25일 배심원단 재판을 시작했다.
SEC는 테라폼랩스가 발행한 암호화폐 테라의 가치가 2021년 5월 1달러 밑으로 떨어지자 가격을 부양하기 위해 제3자와 비밀리에 계약해 다량의 테라를 매수하도록 하는 등 시세 조작에 관여했다고 주장했다. 2022년 5월 테라 가치는 회복 불가능한 상태까지 떨어졌고 결국 시스템 전체가 붕괴하면서 투자자들이 400억달러가 넘는 손실을 입은 것으로 SEC는 추산했다. 권씨가 테라폼랩스의 블록체인이 한국 간편결제 애플리케이션 ‘차이’에 사용됐다고도 홍보했으나 실제로 사용된 적은 없으며 홍보 내용은 모두 거짓이었다고도 SEC는 주장했다.
SEC 측 변호사는 이날 최후변론에서 태라폼랩스의 성공 스토리가 “거짓에 기반해 지어졌다”며 “큰 스윙을 하고 빗맞았는데도 사람들에게 이를 숨겼다면 사기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테라폼랩스 측은 SEC 주장이 내부고발자 보상금을 받기를 바라는 증인들의 말에만 의존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테라폼랩스 측 변호인인 루이스 펠레그리노는 최후변론에서 SEC의 주장이 맥락에서 벗어난 진술에 의존하고 테라폼랩스와 권씨는 실패했을 때마저 자신들의 상품과 일하는 방식에 있어 진실했다고 주장했으나 배심원단을 설득하지 못했다.
SEC는 권씨와 테라폼랩스를 상대로 거액의 징벌적 배상금을 부과하고 불법 이익을 환수해야 한다고 법원에 요청했다.
거버 그레왈 SEC 집행 담당 이사는 “암호화폐에 있어 등록과 규정 준수의 결여는 사람들에게 매우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우리 역시 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쓸 수 있는 수단을 계속 쓸 것이지만, 암호화폐 시장도 규정을 준수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반면 테라폼랩스 대변인은 이번 평결에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아 실망했다”며 다음 선택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우리는 SEC가 이번 소송을 제기할 법적 권한이 없다는 주장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판사가 최종 선고를 내리면 테라폼랩스 측은 항소할 가능성도 있다.
이날 평결은 권씨가 미국에서 받는 형사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미 뉴욕 검찰은 지난해 권씨가 몬테네그로에서 체포되자 증권 사기, 통신망을 이용한 사기, 상품 사기, 시세조종 공모 등 총 8개 혐의로 그를 기소했다. 권씨는 도피 행각을 벌이다 지난해 3월 몬테네그로에서 여권 위조 혐의로 체포된 이후 계속 현지에 구금돼 있다. 권씨는 한국에서도 형사 기소된 상태다.
지난달 한국 송환 결정이 내려졌던 권씨는 송환지가 미국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커졌다. 앞서 몬테네그로 고등법원은 권씨의 미국 송환을 결정했다가 이를 뒤집고 지난달 한국 송환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몬테네그로 대법원이 지난 5일(현지시간) 권씨 한국 송환 결정을 무효로 하고 사건을 원심으로 돌려보냈다고 현지 언론이 보도하면서 권씨는 미국으로 송환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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