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이하 저출산위)가 지난 5일 개최한 간담회에서 일부 정부위원들이 몇몇 예능 프로그램이 저출산 극복에 장애가 되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발제자로 나선 유재은 국무조정실 청년정책조정위원회 위원이 TV 예능 프로그램 ‘금쪽같은 내새끼’(이하 ‘금쪽이’)를 사례로 들며 “미디어에 결혼·출산에 대한 부정적 메시지가 많다”고 지적한 것이다.
실소가 터져 나왔다. 간담회 주제가 ‘결혼·출산에 대한 인식변화와 미디어의 역할’이라지만, 번지수를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어서다.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도 “애 키울 집도, 돈도 없으니 못 낳는 걸 모르나”, “그 많은 연구비 어디다 쓰고 이런 소리를 하나”, “차라리 전 정권 탓을 해라”, “저런 아이를 둔 부모들에게는 위로가 되는데” 등 애먼 프로그램 탓을 한 저출산위를 성토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금쪽이’는 아이들의 문제 행동과 의뢰 부모의 육아를 관찰한 뒤, 정신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의 조언을 듣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프로그램이다. 간혹 ‘실화가 맞나’ 싶을 정도로 심각한 사례들이 소개되고 부모나 아이에 대한 악플이 쏟아지기도 한다. 하지만 프로그램의 목적이 부모가 혼자 감당하기 힘든 육아 문제를 상담해주는 것이고, 시청자 역시 결혼이나 출산을 고려하는 미혼 남녀보다는 육아에 대한 관심과 고민이 있는 부모가 많다.
미디어가 사회 분위기와 구성원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금쪽이 같은 프로그램을 출산율 상승이나 하락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은 단순히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클로디아 골딘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가 한국의 저출산 원인에 대해 훨씬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지난 9일(현지시간) 노벨상 수상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성세대는 물론, 기업이 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출산 휴가 및 육아휴직과 관련해 포용적인 정책을 시행하더라도 직장 문화가 여전히 정책을 따라가지 못하는 일본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고도 했다. 여기에 더해 월급만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주거 비용까지 젊은이들의 어깨를 짓누른다.
기자가 10여년 전 아이 셋을 낳겠다는 꿈을 포기한 것도 같은 이유다. 맞벌이로 아이들을 키우면서 매 순간 아이 둘을 어딘가, 누군가에게 맡기는 문제, 육아도우미 비용과 사교육비와 대출금 부담, 이런 문제로 인한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에 부딪히며 가끔은 둘도 버겁게 느껴졌다.
저출산은 한 나라의 경제, 사회, 문화, 세대라는 복잡한 방정식의 결과다. 세계적인 석학(미국 조앤 윌리엄스 캘리포니아주립대 명예교수)이 합계출산율 0.78명(2022년)을 보고 “대한민국 완전 망했네요!”라면서 머리를 부여잡을 만큼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이런 난제 앞에서 엉뚱한 처방전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저출산위가 TV를 끄고 현실을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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