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서울과 경기, 인천의 상급종합병원을 찾은 비수도권 거주 환자가 역대 최대인 97만명을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5년 새 10만명 가까이 늘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의료기관 이용이 줄면서 주춤했던 ‘원정진료’ 환자가 다시 급증하고 있다. 2028년 이후 수도권에 최소 6000병상이 추가로 공급될 예정이어서 의료자원과 환자 쏠림이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1일 국민의힘 조명희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은 ‘수도권 관외 건강보험 가입자 진료 인원 및 진료비 추이’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수도권 상급종합병원 22곳에서 진료받은 지방 거주 환자는 97만6628명이다. 4년 전인 2018년(87만9208명)과 비교하면 11.1%(9만7420명) 늘었다. 계속 늘어나던 원정진료 환자 수는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시작한 2020년 약 83만명까지 떨어졌다가 2021년 92만명으로 반등했고 지난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지방 거주 환자가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에 낸 진료비도 역대 가장 많다. 해당 진료비는 2조8686억원으로 전년(2조6732억원)보다 약 2000억원(7.3%) 증가했다. 지난해 건보 전체 진료비 102조4277억원의 2.8% 수준이다. 비급여를 제외한 집계여서 실제 진료비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수도권 상급종합병원뿐만 아니라 수도권 의료기관 환자 쏠림 현상도 심화하고 있다. 전체 의료기관으로 범위를 넓히면 지난해 지방 거주 환자 308만명이 수도권 병·의원에서 진료받았다. 전년(266만명)보다 15.7% 늘어난 것인데, 코로나19 때 의료기관 이용이 큰 폭으로 줄었다가 정상화하면서 전년 대비 원정진료 환자 수도 급증한 것으로 풀이된다.
원정진료가 심화하는 것은 교통망 확충·개선으로 전국이 일일 생활권이 되면서 수도권 병원 접근성이 높아진 영향이 크다. 의료자원 격차도 환자들이 수도권을 찾는 주된 요인이다. 전국의 상급종합병원 절반가량이 수도권에 몰려있고, 의사 수도 지방과 수도권 간 격차가 있다.
정부도 지방 의료인력이 수도권으로 쏠리는 걸 막기 위해 병상 규제 등 대책을 내놨지만 실효성은 떨어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내년부터 병상이 과다한 지역의 병상 공급을 제한하고, 수도권 대형병원 분원 등을 신설할 때 복지부 장관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이미 병원 부지를 매입하거나 건축 허가를 받은 경우엔 이를 적용하기 어렵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수도권 병상총량제 논의를 예전부터 해왔는데 이제야 관련 계획을 발표했고 이미 허가받은 분원은 적용도 안 된다”며 “앞으로 5∼6년 새 수도권에 6000병상 이상이 새로 생긴다”고 말했다. 이용균 병원이노베이션 연구소장(연세대 보건대학원 겸임교수)도 “분원 설치, 병상 공급 등을 자유방임에 맡겨놨다가 의료 불균형이 심화하니까 제한하겠다고 정부가 개입에 나선 건데 뒤늦은 대처로 보인다”고 했다.
이 소장은 “지방 의료를 살리려면 지역 국립대병원을 특성화된 거점병원으로 육성하고 의료장비 등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며 “사용자(환자)가 수도권과 지방 대형병원을 이용하는 경우 가격 등에서 차이를 두는 방안을 모색할 시점도 됐다”고 말했다.
조명희 의원은 “수도권 의료 집중 현상은 지방의료 상황을 악화시키고 인프라가 부족한 지방의 소멸을 가속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권역별로 집중 진료과목을 선정하고 수도권 병원과의 연계 진료를 확대해 지방 의료 불균형 문제를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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