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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타워] 의사 친구가 보는 ‘필수의료 공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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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6-21 23:39:06 수정 : 2023-06-22 09:3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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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원 상책 아냐”… 응급환자 이송 체계 개선 등 절실

“말도 안 되지. 의대는 솔직히 기초학습 능력만 갖춘 아이들이 들어오면 된다고 생각해. 정말 똑똑한 아이들은 이공계로 가서 과학자가 돼야지. 그게 미래 먹거리 확보와 국가 경쟁력 강화 측면에서 훨씬 낫지. 그런데 말이야….”

 

수화기 너머 고교 동창 목소리는 격앙돼 있었다. ‘응급실 뺑뺑이’ 사망 사고와 ‘소아과 오픈런’ 등 필수의료 공백 사태로 의대 정원 확대 등 의사 증원 여론에 대한 현직 의사의 속내가 궁금해 서울대 의과대학에 들어갔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송민섭 사회부 선임기자

친구는 대학병원 교수, 개원의를 거쳐 10여년 전부터 제약회사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이과 최상위권 학생들의 의대 지망 열풍을 어떻게 보느냐’고 물었더니 말끝을 흐린다. 최근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 개발진 중 일부가 초과 근로수당을 받지 못해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냈다는 보도를 봤다고 했다. “정부가 이런 분들한테 정말 몇십억원씩 연봉을 드려야 하는데 한국에서 과학자 대우가 너무 안 좋네.”

 

‘의사 증원이 필요하냐’고 묻자 대답은 ‘노(NO)’였다. 대로에 나가면 보이는 병원 간판이 수두룩하고 한국만큼 의료접근성이 높은 나라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의대 정원을 350∼1000명 더 늘린다고 작금의 필수의료 공백 사태나 지역 간 의료 인프라 격차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고 했다.

 

특히 잇단 ‘응급실 뺑뺑이’ 사망 사고를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의대 정원 확대가 거론되는 것을 어이없어했다. 중앙 중증·응급환자 이송·전달 체계를 제대로 갖추면 될 것을 정부가 애먼 의사 부족 탓을 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한국 의사 수가 최하위권 아니냐고 반박하자 각국이 처한 보건의료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의사 수만 갖고 ‘부족하다’고 단정할 순 없다고 했다. (한국의 인구 1000명당 활동의사 수는 2020년 기준 2.5명으로 OECD 평균 3.5명을 한참 밑돈다)

 

친구가 진단한 필수의료 공백 사태의 핵심 요인은 일반외과, 흉부외과, 신경외과 등 필수의료 분야 전문의들이 상급종합병원이 아니라 개원의로 나가 자신들 전문지식을 사장시키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는 “필수의료, 특히 외과를 지원한 분들은 정말 환자 생명을 살리겠다는 사명감으로 10여년의 힘든 수련 과정을 견딘 분들”이라며 “이분들이 배운 전문 지식을 써먹지 못하고 잘 모르는 분야의 환자들 진료를 하는 게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그럼 필수의료 분야 전문의들을 대학병원으로 다시 돌아오게 만들 방책은 무엇일까. 그는 “돈(수가 가산)이 될 수도 있지만 서전(surgeon)들은 워낙 의료사고에 따른 처벌에 대한 부담이 상당하더라고. 나름 생명을 살리려고 외과를 선택한 분들인데 격무에다가 소송 등으로 몇 번 데이다 보면 자괴감이 들 수밖에 없지”라고 했다.

 

친구의 말을 듣고 나서 필수의료 공백 사태 해결을 위해 의사 증원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18년째 3058명으로 묶여 있는 의대 정원 확대가 해법 논의의 출발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때마침 보건복지부가 27일 의사단체나 환자단체, 전문가들과 함께 미래 의사인력 수급 규모를 추계할 전문가 포럼을 연다. 의사 증원 여부를 왜 핵심 이해당사자인 대한의사협회와만 협의하느냐는 일각의 비판을 받아들인 것이다. 어렵게 마련된 공론장인 만큼 의협은 기득권을 좀 내려놓고 복지부는 다양한 분야 의견을 경청해 필수의료 공백 사태를 해결하라는 국민적 요구에 부응하는 대책을 내놨으면 한다.


송민섭 사회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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