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특정 사건의 대법원 판결 선고 이후 해당 판결과 주심 (노정희) 대법관에 대해 과도한 비난이 이어지는 상황에 깊은 우려를 표명합니다.”
대법원이 19일 이른바 ‘노란봉투법 닮은꼴 판결’에 대한 정치권과 재계의 거센 비판에 대해 우려하는 반박 입장문을 냈다. 대법원은 이 사건 판결과 노 대법관에 대한 비난이 일반적인 판결에 대한 비판 수준을 넘어섰다는 판단 하에 이번 입장문을 발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법원의 이 같은 공개 입장문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지만 처음은 아니다. 이명박정부 때인 2010년 1월 ‘국회 폭력 사건‘으로 기소된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자 1심 단독판사에 대한 정치적 편향성 논란과 거센 비판이 일었다. 대법원은 당시 “사법권 독립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며 공개 입장문을 냈다.

◆대법원 “오직 헌법과 법률에 근거, 부당한 압력 자제해야“
대법원은 19일 김상환 법원행정처장 명의로 낸 ‘최근 상황에 대한 대법원의 입장’을 통해 “판결에 대해 다양한 평가와 비판이 있을 수 있고 법원 또한 이를 귀담아들어야 함을 잘 알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판결의 내용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신중한 검토가 전제 되지 않은 채 판결 진의와 취지가 오해될 수 있도록 성급하게 주장하거나, 특정 법관에 대해 과도한 인신 공격성 비난을 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잘못된 주장은 오직 헌법과 법률의 해석에 근거해 판결을 선고한 재판부에 부당한 압력으로 작용할수 있다”면서 “자제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해 말씀드린다”고 거듭 밝혔다.
대법원 3부 지난 15일 현대차가 사내하청 노조(비정규직 지회) 조합원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사건의 상고심에서 원심 판결 중 피고 패소 부분을 파기환송했다. 불법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 개인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더라도 책임의 정도는 개별적으로 따져야 한다는 것이 판결 요지다.
대법원의 한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 내용에 대해 오해되고 있는 부분이 있고, 노 대법관에 대한 비난이 도를 넘었다는 판단”이라며 이번 입장문 발표 배경을 설명했다. 대법원은 이날 판결 내용을 설명하는 추가 보도자료를 내기도 했다.
대법원은 추가 보도자료에서 △위법한 쟁의행위에 가담한 노조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청구가 봉쇄 및 제한되는 것이 아니며 △노조원간 책임 비율은 법원이 노사 양측이 제출한 자료들에 나타난 여러 사정들을 종합해 형평의 원칙에 따라 재량으로 결정하는 것으로, 기업에게 입증책임이 있는 사항이 아니며 △공동불법행위자별 책임제한 비율을 다르게 판단한 기존 사안 유형에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사건을 추가한 것으로, 판례 변경이 아니라고 재차 강조했다.

◆국민의힘 “기본 법리조차 모르는 노정희 대법관“ 맹공
그러나 정치권과 재계에서는 이번 판결 취지가 더불어민주당·정의당 등 야권과 노동계가 추진하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입법 목적과 닮았다는 점에서 거센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여당인 국민의힘은 선고 이튿날 “김명수 대법원의 노란봉투법 알박기 판결”, “기본 법리조차 모르는 노정희 대법관”이라며 맹공을 퍼부었다. 판사 출신인 김기현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어처구니가 없는 판결이 나왔다”며 “공동불법행위의 기본법리조차 모르고 가해자와 피해자 구분조차 못 하는 노정희 대법관은 법관 자격이 없다”고 맹렬하게 비판했다
이어 “중앙선관위원장을 맡았던 지난 대선 당시 ‘소쿠리 투표’를 야기했던 장본인”이라며 “벼락출세를 시켜준 민주당에 ‘결초보은’하고 싶은 심정일 수는 있지만, 대법관이라는 직책을 가진 사람으로서 부끄럽지 않은가”라고 노 대법관을 겨냥했다.
◆대법원, 2010년 민주당 강기갑 대표 무죄 선고 때도 닮은 꼴 입장문
대법원은 이명박정부 때인 2010년 ‘국회 폭력 사건‘으로 기소된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단독판사에 대한 정치권 비난이 거셀 때도 대법원 공보관 명의로 유감을 표명했다. 당시 대법원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명한 이용훈 대법원장이었고, 당시 대법원 공보관은 현 오석준 대법관이다. 오 대법관은 이번에 현대차 노조원 손해배상 사건을 선고한 대법원 3부의 재판장이기도 하다.
당시 오 공보관은 ‘최근 판결 비판에 대한 대법원의 입장’이라는 발표문을 통해 “하급심 재판에 대해 재판결과나 진행이 잘못됐다고 단정하는 취지의 성명과 재판장 성향을 공격하는 보도는 법관 명예를 훼손하고 상소심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사법권 독립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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