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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세 “암울한 독재정권 시대… 약간 일탈했을 뿐인데 청춘들 열광” [나의 삶 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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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6-07 07:00:00 수정 : 2023-06-08 01: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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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외인구단’ 출간 40년 맞은 만화가 이현세

“어린이만화와 다른 것 그리고 싶었어요”
획일적이고 틀에 박힌 그렇고 그런 만화 아닌
일탈하는 어린이 그린다는 게 청년이 된 셈
우리도 생각이 있다는 것 보여주려 했을 뿐

“끝까지 달리는 청춘… 비극적 이야기 많아”
‘지옥의 링’·‘남벌’ 등 다양한 이야기해 보려 노력
새 작업 땐 새 이야기… 속편 내지 않는 게 소신
그림 ‘옥의 티’ 많지만 스토리 더 중요하다 여겨

“어느날 인터넷 세상… 이렇게 변할 줄 몰랐죠”
종이문화 사라져 우리 공간 없어져 버린 느낌
이제 웹툰세상 진입… 작업량 맞추기 힘들어
활동 접은 또래 많지만 나는 계속 달리는 중

“작업대에 앉아 그림 그릴 때가 마음 편해요”
더 나이 들면 ‘어른을 위한 동화’ 그리고 싶어
작품 소재로 나의 ‘집안 내력’도 괜찮다고 생각
후배들에겐 “정답 없다, 그냥 열심히 그려라”

“강한 것은 아름답다.”

“난 네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1982년 세상에 나온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이 남긴 명대사다. ‘공포의 외인구단’은 그야말로 대한민국 만화사를 ‘공포의 외인구단’ 이전과 이후로 명확하게 나누어 놓은 작품이다.

1980년대만 해도 만화는 애들이나 보는 것이란 인식이 강했는데, ‘공포의 외인구단’은 출현과 더불어 전국 젊은 세대의 인기를 휩쓸며 문화적 충격을 안겼다. 작품성과 대중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명작이었기 때문이다. ‘공포의 외인구단이 1차 문화 충격이라면 훗날 ‘서태지와 이이들’의 등장을 2차 문화 충격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독재정권과 투쟁하며 암울한 시기를 보낸 80년대 학번들은 “재미와 감동, 흡입력과 여운이 강한 작품”으로 기억한다.

이현세는 다양한 이야기를 해보겠다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히트작의 속편을 내지 않았다. ‘공포의 외인구단’에 버금가는 수많은 명작을 줄줄이 내놓았다. 남제현 선임기자

2012년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학계, 출판계, 평론계 전문가 100명에게 의뢰해 한국만화명작 100선을 선정했는데 여기서 1위에 올랐다. 일반 독자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선호도 조사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올해 출간 40년을 맞았지만 여전히 블로그 등에서는 최근 작성된 리뷰가 올라온다.

“약간만 일탈했을 뿐인데 당시 젊은이들이 열광했어요. 몹시.”

‘한국 만화의 지존’ 이현세(68)의 서울 양재역 인근 작업실을 찾은 것은 지난 토요일 아침이다. 아직도 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그의 작업대가 정겹다. 만일 그가 능수능란하게 컴퓨터를 다루면서 작품을 매만지고 있었더라면 퍽이나 낯설었을 것이다. 얼음을 채운 냉커피 두 잔을 사이에 두고 그와 마주 앉았다.

“획일적이고 틀에 갇힌 어린이 만화와는 다른 만화를 그리고 싶었어요. 일탈하는 어린이를 그리려 했는데, 그것이 청년이 된 셈이죠.”

당시 심의는 착한 등장인물만을 요구했다. 마치 규격에 잘 맞는 제품이나 벽돌 같은. 만화조차도 그랬다. 말 잘듣는 아이들로 성장하고 별 탈 없이 군대도 다녀오며 모범적으로 직장생활하는 전형화된 인간상을 그려내길 바랐다.

“‘우리에게도 생각이 있다는 것을 얘기해 줘야 해.’ 당시 품고 다니던 소신입니다. 그때는 아이들도 스트레스받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던 시절이었어요. 키워주지, 학교 보내주지, 군대 가면 먹여주고 재워주는데 무슨 걱정이냐, 너네들이 불만 가질게 뭐 있느냐는 식….”

만화는 언제나 희생양이었다. 애들이 불량해졌다 하면 만화쪽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

“만화도 다른 예술과 동등하게 평가받으려면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 노인, 남여 모두가 보는 장르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규격이나 틀에서 벗어나려는 청춘을 골랐어요. 그래서 비극적 이야기가 많습니다. 이현세 만화 속 청춘들은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끝까지 달려가 스스로 파멸해 흩어지는 인물들입니다.”

‘지옥의 링’ ‘사자여 새벽을 노래하라’ ‘며느리밥풀꽃에 대한 보고서’ ‘두목’ ‘아마게돈’ ‘남벌’ ‘천국의 신화’ ‘버디’ 등 그의 수많은 작품들을 돌아보면 먼저 다양한 이야기를 해보겠다는 그의 의지가 강하게 드러난다. 대박을 터뜨린 작품이라 할지라도 속편을 내지 않았다. 새로운 작업에 들어가기 위해 한 번 다룬 이야기는 다시 하지 않는다는 신조를 지켜왔다.

“제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을 그리겠다는 의지 또한 강했어요. 그래서 ‘옥의 티’가 많은 작가이기도 합니다. 평생 스포츠 만화만 그린다면 전문성이 커져 나중에 더욱 완벽해질 테지만, 저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다 보니 티가 보일 수밖에 없는 거죠. 하지만 탱크를 좀 틀리게 그리면 어떤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게 더 중요하지라고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지금 웹툰은 전문성을 충실히 갖춰야만 해요. 안 그러면 댓글 공격이 심하게 들어오거든요.”

1980년대부터 2010년대 초까지 잘 나가던 작가 가운데 꿋꿋하게 견디며 새로운 세상에서 웹툰을 그리고 있는 이들은 이현세와 장태산뿐이다.

“쓰나미처럼 어느 순간 인터넷 세상으로 바뀌면서 종이문화 자체가 사라져 버렸어요. 단번에 변해 버릴 줄은 몰랐죠. 정말 한순간에 우리 시대와 공간이 없어져 버린 느낌입니다. 기존 출판계에선 ‘이건 그림도 아니야’라고 판정할 만한 것들이 우후죽순 떠돌아 다닙니다. 독선적, 충동적 작품들이 빠르게 올라와요. 돈이 부족한 제작자들은 웹툰에서 꺼리를 찾습니다. 요즘은 로맨스, 판타지, 타임슬립이나 환생, 좀비, 학원폭력물 등이 주류예요. 기획제작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밀도가 높아 화려한 작품들이 나옵니다. 개인 작품들은 오리지널 창작이어서 드라마 소재 채택률이 높아요”

웹툰의 노동강도도 설명해 준다.

 

“1주일에 한 번씩 실리는데 적어도 70~80컷 나가야 독자들이 포만감을 느껴요. 나이가 들면 이 많은 양을 못 맞춥니다. 만일 한 달에 한 번씩 마감한다면 제 또래 작가들도 꽤 많이 활동할 텐데…. 만화가를 그만둔 이들은 스크린골프장을 차려 생계를 잇거나 부인과 맞벌이, 또는 자식에게 의지한다고 들었어요. 아파트 경비업무를 시작한 이도 있고….”

며칠을 쉬면 손놀림이 둔해진다고 귀띔한다.

“자전거가 멈추면 쓰러지듯 나이 든 만화가도 일을 멈추면 끝나는 겁니다. 손 놔 버리면 어려워요. 머리가 명령하는 대로 손이 따르질 못하니 울화부터 치밀죠.”

다행히 워낙 그리고 쓰기를 좋아하니깐 힘든 줄 모른단다.

“작업대에 앉아 그림을 그릴 때가 가장 마음이 편해요. 단, 이제부터는 밤새우지 않고 하루 8시간 작업을 지키려 합니다.”

여전히 술도 잘 마시고 골프와 등산을 즐기는 그는 “일할 때 쫘악 놀 때도 쫘악”이라고 강조한다. 포커, 바둑 등 앉아서 하는 놀이는 뚝 끊었다. 몸을 움직이는 시간을 더 늘리기 위해서다. 수염이 희어서 그렇지 얼굴에 주름이 없고 아직도 기운이 넘쳐난다.

“에너지의 차이예요. 타고난 체력도 있겠지만 근거 없는 확신에서 오는 힘이랄까, ‘난 아직 할 수 있어. 튼튼해’ 같은, 제 자신을 확실하게 믿는 데서 오는 에너지 말입니다. 살면서 주눅이 들기 시작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약에 매달리기보다는, 골골 100년보다 팔팔 80년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오래 사는 것보다 건강하게 열심히 사는 게 중요해요.”

그는 올해 할 일이 많다.

“영화 ‘친구’로 유명한 곽경택 감독이 새 느와르 시리즈를 기획하고 있어요. 투트랙으로 같이 갈 겁니다. 곽감독은 영화로, 저는 웹툰으로, ‘부산 마초’(곽경택)와 ‘경주 마초’(이현세)가 뜻맞춰 만드는 작품입니다. 하하. ‘공포의 외인구단’ 애니메이션 기획도 시작합니다. ‘남벌’은 뮤지컬로 제작해요. 무대디자이너로 일하는 둘째딸 엄지가 함께 나섭니다. 나이 들어가는 ‘찐 팬’들을 위해서 다른 작품들도 다양한 형태로 제작할 예정이에요.”

작업할 때 그는 연필 뒤에 종이를 깔대기처럼 말아끼워 사용한다. 손이 안정되고 훨씬 편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릴 수 있을 때까지 그리겠다는 생각이다.

“유화로 만화를 그리면 훨씬 더 매력적이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더 나이 들면 ‘어른을 위한 동화’를 그려야 하지 않겠나 싶어요. 80대의 러브스토리 같은 것들을 해야겠죠. 제가. 요즘엔 ‘집안 내력’을 그려도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연관된 이들이 있어 쉽진 않겠지만.”

그의 둘째 큰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때 돈 벌러 만주로 갔다가 한국전쟁 때 인민군 장교가 되어 돌아왔다. 수복 후 그로 인해 큰아버지가 헌병대에 끌려간 후 행방불명됐다. 부역자로 몰려 처형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현세는 태어나자마자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해 청상과부가 되어 버린 큰어머니에게 양자로 입적됐다. 친부모를 작은아버지와 작은어머니로 알고 자랐다.

스무살 무렵에야 이를 알고 방황하기도 했다. 헌신적인 두 어머니는 그런 이현세를 무조건 사랑으로 감싸주었다. 1998년 4월 15일에는 평생 잊을 수 없는 변을 당한다. 집 안에 침입한 10대 강도들이 돈을 훔치고, 그의 큰어머니를 살해한 사건을 겪었다. 그가 집안 이야기를 작품으로 담아낸다면, 진정 극복해낸 게 아니겠는가.

그 자신 역시도 ‘이현세 만화’에 대한 중업감을 평생 지녀왔다. ‘공포의 외인구단’ 인기에 업혀가지 않으려고 신경썼다. ‘청년에 대한 가치관’은 지금까지 쭉 지켜왔다.

“우물쭈물하지 마라. 어차피 정답이 있는 것도, 지름길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그려라. 열심히 그리고 싶은 것을 그려라.”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과 교수로 재직중인 그에게 제자들이 찾아와 전업작가를 망설이거나 힘들어할 때, ‘만화계가 어떻게 될까요’하고 물으면 답해 주는 말이다.

대전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팬으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맨 손으로 호랑이 잡는 만화를 다시 보고 싶은데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야성의 목소리’에 ‘매사냥’ ‘그날’ 등과 함께 담겨 있는 단편 ‘범잡이’다. 그가 아카이브 작업을 하게 된 이유다. 지금은 네이버 아카이브에 그의 전작이 구축되어 있다.

 

만화가 이현세는 … ●1954년 울진 생 ●경주고 ●1975년 ‘저 강은 알고 있다’로 등단 ●1982년 ‘공포의 외인구단’ 출간 ●1999년 경찰청 ‘포돌이, 포순이’ 캐릭터 제작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 ●한국만화가협회 회장 ●2007년 대한민국만화대상 대통령상 수상 ●2016년 제7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대통령 표창 ●‘지옥의 링’ ‘떠돌이 까치’ ‘사자여 새벽을 노래하라’ ‘며느리밥풀꽃에 대한 보고서’ ‘두목’ ‘아마게돈’ ‘남벌’ ‘천국의 신화’ ‘버디’ 등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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