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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 직함 단 중개보조원… 처벌이 안 된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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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5-11 14:47:11 수정 : 2023-05-11 14:4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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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약서상 공인중개사 도장 찍혀 있어
담당자 “무자격자 중개행위 처벌 어려워”

현행법상 중개보조원 역할 판단 쉽지 않아

2020년 8월, A(38)씨는 천안 한 주택에 전세로 입주했다. 전세금 6000만원은 모두 은행에서 대출받은 돈이었다. 1년이 지난 2021년 8월 어느 날, 우편물이 왔다. 뜯어봤더니 ‘경매진행을 하겠다’는 금융기관 통보서가 들어있었다. 임대인이 지급불능 상태에 빠진 것이다. 앞이 까마득했다.

 

‘중개사가 임대인은 재력이 있어 분명 문제없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임대인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임차인은 A씨만 있는 게 아니었다. 피해자만 수십명. 전형적인 전세사기였다.

서울시내 한 상가에 밀집한 공인중개업소. 연합뉴스

자초지종을 알아보다 A씨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2020년 7~8월 본인에게 부동산 매물을 보여주고, 대출 일정을 안내하고, 입주날짜를 조정해줬던 사람이 공인중개사가 아닌 중개보조원이란 것을. A씨는 계약 과정에서 공인중개사로부터 매물에 대한 안내를 받은 적이 없는 셈이다. 해당 중개보조원 B씨는 ‘부장’ 명함을 들고 다녔기에 보조원이라고 의심하지 못했다.

 

‘부장이라고 하니 당연히 공인중개사인 줄 알았는데….’

 

A씨는 천안 서북구청에 민원을 냈다. 중개보조원이 계약서 작성을 주도했으니 ‘무자격자 중개행위’에 해당된다는 취지였다.

 

11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천안 서북구청은 지난해 B씨의 무자격 중개행위 혐의에 대해 ‘행정처분을 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 A씨로부터 제출받은 증거만으로는 B씨가 확실히 불법을 저질렀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A씨는 민원을 제기하며 계약서 작성 당시의 상황을 녹음한 녹음파일도 서북구청에 제출했다. 해당 녹취록에 따르면, B씨는 “입주 날짜는 언제로 해드리냐”, “관리비와 중개수수료는 임차인이 책임지고 완료해야 한다” 등 계약 전반에 대한 사항을 직접 안내했다. 이 과정에서 공인중개사 개입은 없었다.

지난 10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서소문청사 전월세종합지원센터를 찾은 한 시민이 상담을 받고 있다. 뉴시스

당초 민원을 접수한 구청은 B씨에 대한 처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지난해 3월 구청 관계자는 “사례처럼 다 중개보조원이 진행하고 (A씨가) 공인중개사를 한 번도 못 봤고, (중개보조원이) 계약서를 가져와서 사인하면 된다고 하면 문제가 있다”며 “진행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진행 중”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후 담당자가 교체됐고, 교체된 담당자는 행정처분을 내리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전세계약서상엔 공인중개사 도장이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교체된 담당자는 지난해 4월 “증거(녹취록) 자체로는 (B씨와 공인중개사가) 확실히 불법을 했다는 게 충분하지 않다”며 “무자격자 중개행위는 처벌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직원 별로 판단이 달라진 건 중개보조원 역할이 어디까지인지 판단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현행법은 중개보조원을 ‘공인중개사가 아닌 자로서 개업공인중개사에 소속되어 중개대상물에 대한 현장안내 및 일반서무 등 개업공인중개사의 중개업무와 관련된 단순한 업무를 보조하는 자’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업무보조를 어디까지로 볼지가 애매하다. A씨의 경우에도 공인중개사가 모든 사항을 B씨에게 위임했고, 공인중개사가 계약서를 최종 검토했다고 항변한다면 공인중개사와 B씨를 공인중개사법 위반으로 처벌하기 쉽지 않다.

 

최광석 변호사(로티스법률사무소)는 “(중개업소에) 행정처분을 할지에 대해선 (구청이) 고려해볼 법 하다”면서도 “보조라는 게 애매하기 때문에 보통 공인중개사가 날인을 하면 (공인중개사의 역할은) 되는 걸로 본다”고 했다.

사진=연합뉴스

B씨와 해당 중개업소에 대한 행정처분과 법적 처벌이 흐지부지된 사이 A씨 삶은 180도 달라졌다. 지난해 8월 전세대출 상환일이 돌아왔지만 이를 낼 돈이 없었고, A씨는 지난해 12월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법원은 지난 1월 개인회생 개시 결정을 내렸다.

 

160만원, 월급의 70%에 해당하는 돈을 A씨는 앞으로 36개월 동안 매달 내야 한다.

 

“제가 지은 범죄가 아닌데 주변에 말하는 게 부끄럽고 창피해요. 현금이 부족하다 보니 회사 동료들과 저녁 모임을 하고 정산을 하거나, 놀러가거나 하는 순간이 오면 심장이 떨려요. 제가 바라는 건 하나예요. 벌까지는 바라지도 않아요. 사과와 설명이요.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관행처럼 보조원이 일처리를 해왔어서 그렇게 했습니다.’ 이런 사과요.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는 걸 꼭 듣고 싶어요.”


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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