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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갓시 『죄 없는 죄인 만들기』 “검사와 판사, 확증편향·비인간화·야심 탓에 무고한 죄인 양산” [김용출의 한권의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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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3-20 07:30:00 수정 : 2023-03-17 20: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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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순진들 하시네. 마음이 여려 터져서 속아 넘어갈 준비가 돼 있는 법학도들만 잔뜩 모여 있구만.’ 

 

교수 업무의 일환으로 결백을 주장하는 재소자의 구명 운동을 벌이는 로스쿨 ’이노센스 프로젝트’ 학생들을 지도하게 된 그는, 강간죄로 복역 중인 허먼 메이를 면담한 학생들의 보고를 받았다. 학생들은 메이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는데 그가 결백해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죄도 없는 사람이 감옥에 갇혀 있다는 것도, 그럴 가능성도 믿지 않았다.

 

정의의 여신상

그는 유능했지만, 완고한 검사 출신이었다. 여러 해 뉴욕시에서 연방 검사로 재직했고, 납치와 테러는 물론 조직범죄 등 신문의 주요면을 장식하는 흉악범죄를 여러 건 기소했다. 범죄에 맞서 공격적으로 싸운 공로와 성과로 법무장관으로부터 모범검사상을 받기도 한 그가 아니던가.

 

면담 학생들에 따르면, 메이는 강간 사건이 일어난 날 밤에 같은 동네의 어떤 차에서 도난당한 기타를 전당포에 맡기려다가 붙잡혔다가 용의선상에 올랐다. 피해자 몸에 남아 있던 범인의 정액은 사건 직후 확보해 둔 상황이었지만, 당시에는 정액에 대한 DNA 검사가 기술적으로 불가능했다. 피해자가 메이를 범인으로 지목했기에, 메이는 유죄판결을 받고 교도소로 보내졌다.

 

하지만 로스쿨의 이노센스 프로젝트가 주도한 끝에 DNA 검사를 통해 메이의 DNA 프로필과 강간범의 DNA 프로필이 일치하지 않는 것이 드러나면서 메이는 13년간의 복역 끝에 무죄 방면됐다.

 

2001년부터 고향 신시내티 인근 노던켄터키대학 소속 체이스로스쿨에서 형법을 가르쳐온 마크 갓시 교수는 메이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았고, 완전히 눈을 새로 뜨게 됐다. 잘못된 검찰과 경찰의 수사와 판사 판결로 죄 없는 이들을 감옥에 가고 있다는 것을 새롭게 인식했다.

 

그는 형사사법제도의 문제와 대안 모색을 위해 뛰어들었다. 특히 새 직장이 된 신시내티 로스쿨에 2003년부터 ‘오하이오 이노센스 프로젝트’를 창설했다. 그는 동료들과 재소자 가운데 결백을 주장하는 수형자들의 사례를 수집하는 한편, 조사 활동을 통해 2022년까지 39명을 감옥에서 석방시켰다. 1989년 이래 미국 전역에서 잘못된 유죄 판결을 받은 피해자로 밝혀진 이들이 무려 2000명을 넘는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도대체 검사와 경찰, 판사들은 어떻게 죄 없는 시민들을 감옥으로 집어넣고 있는 것일까. 왜 이런 문제가 아직도 제대로 인식되지 않고 있고, 해결되지도 않는가. 문제를 해결할 시스템 개혁은 이뤄질 수 없는가.

 

전직 연방 검사 출신 형법 교수로서 오랫동안 이노센스 프로젝트를 해온 저자는 책 ‘죄 없는 죄인 만들기’(박경선 옮김, 원더박스)에서 현행 형사사법 제도와 관행, 문화 때문에 죄 없는 죄인이 양산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인지 부조화와 확증 편향, 비인간화, ‘대의를 위한 부패’, 과학 수사의 오류, 정치적 야심과 압력 등 현행 형사사법 제도에 내재된 인간의 나약함을 하나씩 살펴나간다.

 

이른바 ‘약촌 오거리 살인사건’에서 살인 혐의로 징역 10년형을 받았던 최모씨 변호인단이 2016년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기자회견하는 모습. 뉴시스

먼저 기존 신념이나 기대, 가설에 들어맞는 편파적인 방식으로 증거와 팩트를 찾거나 해석하는 확증 편향이 많은 무고한 죄인을 양산한다고 지적했다. 2004년 미국 사회를 뒤흔든 브랜든 메이필드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통근 열차 4대가 연쇄폭발하자, FBI는 스페인 당국과 함께 수사에 박차를 가했다. 곧 테러 공격 당시 사용된 폭발물이 담긴 비닐봉투에 지문 하나가 나왔고, 일치 가능성 있는 미국인들을 조회했다. 이들 가운데 이집트 국적의 무슬림과 결혼한 뒤 얼마 전 본인까지 무슬림으로 개종한 미국 오리건 출신의 변호사 브랜드 메이필드가 있었다. FBI 지문감식관들이 메이필드와 폭발 현장에서 나온 지문을 비교한 결과 완벽하게 일치한다고 결론을 내리고 그를 긴급 체포했다.

 

하지만 2주 뒤 문제의 지문은 우나네 다우드라는 알제리 국적자의 것임이 밝혀졌고, FBI는 해당 지문이 메이필드의 지문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함께 확증 편향으로 착오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메이필드는 정부로부터 200만 달러의 보상금을 받고 석방됐음은 물론이다.

 

내면에 가장 깊이 자리 잡은 믿음에 상충하는 정보를 밀쳐두고 피하거나 부정하게 만드는 인지부조화도 역시 죄 없는 죄인을 만들어낸다. 예를 들면, 1995년 페니 비언스턴을 강간한 혐의를 받고 재판을 받던 남성 스티븐 애버리 사건을 담담했던 한 보안관실에 이웃 지역 검사가 전화를 걸어왔다. 자신들이 방금 검거한 그레고리 앨런이라는 남자가 비언스턴을 강간했다고 자백했다고. 전화를 받은 보안관실 직원은 이 사실을 상관에게 보고했지만, 보안관실 사람들은 이를 무시했다. 결국 몇 년 뒤 DNA 검사 결과 앨런이 진범임이 드러나고서야 애버리는 풀려났다. 저자는 보안관실 사람들이 애버리가 범인이라는 자신들의 믿음과 전화 통화가 상충하자 인지부조화를 느끼면서 검사의 통보 내용을 제쳐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심지어 포렌식을 비롯해 과학수사도 죄 없는 죄인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왜냐하면 지문이나 필적, 혈흔 등 팩트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확증편향이나 인지부조화 등이 작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에서 이뤄진 325건의 무죄 방면 사례에서 잘못된 포렌식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 사례가 무려 47%(중복 응답)나 됐다.

 

저자는 목격자의 잘못된 범인식별 기억도 잘못된 유죄판결을 낳는다고 꼬집었다. 실제 미국에서 이뤄진 325건의 무죄 방면 가운데 235건, 즉 72%(중복 응답)가 목격자의 범인식별 증언에 오류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검사나 판사들도 이런 가능성을 확고하게 새기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예를 들면, 1984년 집안에서 침입한 남자에게 강간을 당한 대학생 제니퍼 톰슨은 용의자 사진 라인업에서 젊은 남성 로널드 코튼을 지목했고, 실물로 봤을 때도 그가 범인이라고 증언했다. 하지만 종신형을 선고받은 코튼은 10년을 복역한 뒤에야 DNA 검사를 통해 무죄임이 밝혀져 석방될 수 있었다.

 

저자는 이밖에 검사와 경찰이 자신들을 정의를 실현하는 ‘좋은 사람들’로 보는 반면 자신들이 수사하는 용의자에 대해선 ‘나쁜 놈’으로 사고하면서 무죄 가능성을 외면하는 ‘비인간화 사고’나, 유죄를 입증하기 위해 법과 규칙을 위반하는 검경의 ‘대의를 위한 부패’, 향후 정치나 권력을 지향하면서 범죄 단죄에 강경한 대중에 영합하려는 검사와 판사의 정치적 야심 등도 죄 없는 시민들을 죄인으로 만드는 요소라고 지적했다.

 

저자는 현행 형사사법제도는 완벽한 정의에 도달한 자동화 기계 같은 것이 아니어서 제도의 구조와 절차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모든 신문에 대한 영상 녹화가 이뤄져야 하고, 포렌식 분석에서도 확증 편향 등을 제거할 방안을 마련해야 하며, 검찰과 경찰, 판사들이 심리적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교육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요컨대 책은 형사사법제도의 실패 가능성에 대한 준엄한 경고이자, 완고했던 전직 검사의 고백록이고, 저자와 동료들의 지치지 않는 활동 기록이자, 사법제도 개선을 위한 고언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 시민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수사권과 기소권, 재판권 등 온갖 공권력의 성 위에 서있는 검찰과 판사들이 경청해야 할. 

 

“나는 인간 심리의 타고난 결함과 정치적 압력이 어떻게 형사사법 분야의 행위자들-경찰관, 검사, 판사, 변호사-을 기이하고도 놀라우리만치 불공정한 행동을 하면서도 스스로는 이를 인지하지 못하게 만드는지 설명하려 한다. 개인 차원으로나 사회 차원으로나 우리가 이런 문제들에 대체로 눈감고 있음을 말하고자 한다. 우리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꿋꿋이 부정하고 있을 뿐이다. 정말이자, 우리 형사사법제도는 정의의 여신처럼 눈을 가린 채 정의를 실천하는 게 아니라, 그저 불의에 눈감고 있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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