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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서구 학술어 자국화… ‘新문명’ 새싹 틔우다

입력 : 2023-03-11 01:00:00 수정 : 2023-03-10 19:5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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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대기 ‘문명개화’ 외친 니시 아마네
19세기 서양 사상·문물 창조적 흡수·전파

science·art를 學·術로 번역·차이점 분석
‘철학·예술·과학·기술’ 등 개념어 다수 창조
현대 일본어 토대… 韓·中·日 통용어 밑거름

니시 강의록 ‘백학연환’ 연구한 야마모토
서구 개념어의 ‘신조어’ 탄생 과정 풀어내

그 많은 개념어는 누가 만들었을까/야마모토 다카미스/지비원 옮김/메멘토/3만5000원

 

“학(學)이란 원어대로 만물을 분명히 알고, 그 근원에 따라 그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다. 술(術)이란 생겨남을 아는 것이라는 원어처럼, 만물이 성립하는 근원을 알고, 그 성립하는 이유를 분명히 아는 것이다.”

서구 사상과 문물을 재해석해 일본에 소개해온 니시 아마네(西周)는 영어 개념어 ‘science’와 ‘arts’를 각각 학(문)과 (기)술로 번역 소개하면서 정의와 함께 두 용어 간 차이도 이같이 설명했다. 특히 의학과 의술을 예로 들면서 학과 술의 차이를 드러냈다.

니시 아마네를 비롯해 일본 근대 지식인들은 에도 막부 말기부터 메이지 시대에 서구 사상과 문물을 도입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고, 이 과정에서 지금 우리가 흔히 쓰는 많은 개념어들을 탄생시켰다. 사진은 당시 개념어 탄생에 기여한 니시 아마네(사진 속 오른쪽). 출판사 제공

“의사를 불러 치료를 하는데, 의사가 인체의 근육과 뼈, 피부와 살, 오장육부의 구조를 아는 것이 학이요, 총에 맞은 다리를 치료할 때는 이렇게 근육과 뼈의 구조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총탄을 어떻게 빼낼까를 궁리하여 치료를 하는데, 이것이 곧 술이다.”

니시는 이어 학과 술이 진리에 관여하는 방식이나 체계도 서로 다르다며 그 특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이언스와 아트는 진리의 탐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이언스에서는 지식을 위해 탐구하지만, 아트에서는 제작을 위해 그렇게 한다. 즉, 사이언스는 더 상위의 진리에 관련된 것이며, 아트는 상대적으로 하위의 진리에 관련된 것이다.”

주로 중국과 조선에서 사상과 문물을 흡수, 발전시켜온 일본 지식인과 엘리트들은 에도 막부 말기부터 메이지 시대에는 서구 문물을 도입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하지만 당시에는 서구 사상과 문물에 곧바로 대응하는,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발상이나 개념, 용어가 없었다. 모두 새로 만들어야 했다. 서양 사상과 문물을 흡수해 일본을 근대화하고 싶었던 이들은 그야말로 발상과 개념, 용어 등 기본부터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으면 안 됐다.

 

일본 근대기에 서구의 사상과 발상, 용어를 도입하고 번역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던 사람 가운데 한 명이 니시 아마네였다. 그는 후쿠자와 유키치, 모리 아리노리 등과 함께 ‘문명개화’를 기치로 내걸고 메이료쿠샤(明六社)를 결성해 학술의 개념어를 비롯해 지금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철학, 예술, 이성, 과학, 기술, 논리학, 심리학, 의식, 지식, 개념, 귀납법, 연역법, 정의, 명제, 분해 등 많은 개념어를 고안해 번역하고 전파했다.

야마모토 다카미스/지비원 옮김/메멘토/3만5000원

예를 들면, 니시는 영어 ‘deduction’을 ‘연역(법)’으로 번역하면서, 그 이유를 고양이와 쥐의 비유를 들어서 설명했다.

“연역이란 글자의 뜻을 보면, 연은 늘리다, 역은 실마리에서 실을 끌어낸다는 뜻으로 무언가 겹치는 부문이 있어 거기서 뽑아낸 것이 여러 가지로 다양하게 미침을 말한다. 이를 고양이가 쥐를 먹을 때에 비유해보자. 고양이가 쥐를 먹을 때는 먼저 가장 중요한 부문인 머리부터 시작하여 차츰 몸통, 네 발, 꼬리에 이르게 된다… 모두 중요함을 가리키는 하나의 기호로서 여기서 수많은 도리를 이끌어낸다.”

반면, 영어 ‘induction’은 ‘귀납(법)’으로 번역 소개했는데, 그 이유에 대해선 반찬 먹기로 비유하며 설명한다. “induction, 즉 귀납법은 연역법과 반대로서 이를 사람이 반찬을 먹을 때에 비유해보겠다. 사람이 반찬을 먹을 때는 가장 맛있는 부문을 조금씩 먹고, 마지막에는 먹을 수 있는 부문을 전부 먹는다. 이와 같이 진리도 같은 부분에서 시작해 그 전체를 알고자 할 때 밖에서 안으로 모으는 것이다.”

니시와 동료들이 만든 많은 개념어들은 현대 일본어의 기초가 됐을 뿐 아니라,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등을 거치면서 한국과 중국에 퍼져 나간 뒤, 현재 한·중·일 세 국가에서 통용되는 주요 개념어로 자리 잡았다.

예를 들면, 니시는 영어 ‘philosophy’를 ‘철학’이라는 개념어로 번역, 소개했다. 당시 중국을 비롯해 동아시아에선 철학에 해당하는 말로 이학(理學)이라는 말이 있었지만, 일본이 동아시아 근대를 주도하면서 철학이라는 용어로 정착됐다.

근대 동아시아 개념어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니시 아마네는 성리학에서 출발해 서양 학문으로 전향한 대표적인 메이지 계몽 지식인으로 꼽힌다. 1829년 시마네현 쓰와노정에서 태어난 니시는 어릴 때 한자와 의학을 배웠다가 ‘난(네덜란드)학’으로 선회했다. 특히 1862년 일본인으로선 처음으로 네덜란드에 유학해 라이덴대학 법학교수 시몬 피세링으로부터 법학과 철학, 정치와 경제 등을 배운 뒤 1865년 귀국한 게 결정적이었다. 그는 이후 메이지 신정부 일원으로 일하면서 서양의 사유와 개념을 흡수해 정력적으로 전파했다.

서구 사상과 문물을 재해석해 일본에 소개해온 니시 아마네(西周)는 영어 개념어 ‘science’와 ‘arts’를 각각 학(문)과 (기)술로 번역 소개하면서 정의와 함께 두 용어 간 차이도 설명했다. 사진은 서구 사상과 문물을 창조적으로 받아들이고 전파한 니시가 서양 학술 용어를 번역하고 분석한 메모.

니시의 발상은 1870년쯤 사숙에서 행한 강의에서 잘 드러난다. 이 강의를 문하생 나가미 유타카가 필기한 강의록이 바로 ‘백학연환’이었다. 백학연환은 백과사전(Encyclopedia)의 일본 번역어다.

니시는 당시 서구의 사상과 학문 전체를 상호 연관 속에서 넓게 바라보고 수용하려 시도했다. 그는 강의에서 그가 어떤 사유적 맥락에서 서구의 개념과 용어를 번역, 전파했는지 이야기한다.

“강의 전체를 읽으면 여하튼 그들의 땅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학술의 전체상을 조망해 보여주겠다라는 패기가 전해지는 듯합니다… 백학을 조망하겠다는 시도는 위의 비유를 빌리자면, 장기나 체스에서 상대방의 수나 말이 놓인 판을 보는 것, 어떤 단어를 다른 단어와의 관계 속에서 살피고자 하는 데 해당합니다.”

근대 동아시아 개념어의 정초에 기여했던 니시의 강의록 ‘백학연환’을 깊이 있게 분석하고 해설한 독립 연구자 야마모토 다카미쓰의 단행본이 번역 출간됐다.

책은 니시가 접했을 법한 서양의 각종 저서, 영영사전 등은 물론이고 당시 지식인들이 배웠던 한학까지 종횡무진하면서 일본과 서구의 지식 체계가 얽히며 새로운 말이 탄생하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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