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영주목적 아닐 땐 자격 없어
병역기피 막기 위해 필요한 제한”
외국 주소 있어야 국적이탈 가능
국적법 14조1항도 전원일치 ‘합헌’
“실거주 아닌 친지 주소 인정 안돼”
부모의 해외 임시 체류 도중 태어나 이중 국적을 가진 남성은 병역의무를 이행해야만 한국 국적을 포기할 수 있도록 한 국적법은 합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헌재는 복수국적자가 ‘외국에 주소가 있는 경우’에만 국적이탈을 신고할 수 있게 한 국적법 조항에 대해서도 합헌 결정했다. 국방 등 헌법적 의무를 피하기 위해 국적을 이탈하는 행위는 국가 공동체의 기본원리를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다.
헌재는 1일 복수국적자의 병역의무를 규정한 ‘국적법 12조 3항’이 위헌임을 확인해달라는 헌법소원에 대해 관여 재판관(8명) 전원일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했다고 밝혔다. 해당 조항은 직계존속이 영주할 목적 없이 체류한 상태에서 출생한 사람은 병역의무를 해소해야 국적을 이탈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소원을 청구한 A(23)씨는 한국인 부모의 미국 유학 중 태어나 한국과 미국 국적을 모두 가졌다. 국적법과 병역법에 따라 A씨 같은 선천적 복수국적자는 만 18세가 되는 해의 3월까지 한국 국적을 포기하면 병역의무가 없다. 이에 A씨는 18세가 된 2018년 3월 국적이탈을 신고했지만 반려됐다. ‘직계존속’인 부모가 ‘영주목적’이 아닌 미국 유학 중 출생한 것이므로 신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A씨는 “국적법이 정하는 ‘영주할 목적’이 내심의 뜻으로 판단 기준이 불명확해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며 이듬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유학 등의 목적으로 외국에 일시 체류할 경우에는 그곳에 영주할 목적이 인정되지 않음을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며 A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헌재는 “단지 법률상 외국 국적을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다는 사정을 빌미로 국적을 이탈하려는 행위를 제한받는다고 해서 과도한 불이익이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해당 조항은 ‘국적이탈을 통한 병역기피’를 제도적으로 차단해 병역의무의 공평한 분담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쌓으려는 조항”이라고 설명했다.
헌재는 복수국적자가 외국에 주소가 있어야만 국적이탈을 신고할 수 있게 한 국적법 제14조 1항에서도 관여 재판관(8명) 전원일치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2001년 미국에서 태어난 청구인 B(22)씨는 한국인 모친과 미국인 부친을 둔 선천적 한·미 복수국적자다. B씨는 18세가 되는 해인 2019년 국적이탈을 신고했지만 반려됐다. 그가 어린 시절 대부분을 국내에서 보냈고, 그의 외국 주소는 친지 주소일 뿐 외국에 주소가 있는 경우라고 볼 수 없다는 이유였다.
헌재는 “외국에 주소가 있다는 표현은 실질적인 생활의 근거가 되는 장소를 뜻해 명확성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면서 “외국에 생활근거가 전혀 없는데도 납세·국방 등 헌법적 의무를 면탈하기 위해 국적을 이탈하는 행위는 국가 공동체의 기본원리를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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