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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부소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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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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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폐한 산성에 저무는 달 비껴 있고/ 오래된 바위에 지는 꽃이 없어라.” 조선 후기 문신 임영이 시문집 ‘창계집’에 남긴 시의 한 구절이다. 백제가 멸망한 뒤로 부소산성은 황폐해졌는데 그 위로 달이 저물고 있고, 당시 백제 여인들이 꽃잎처럼 떨어져 죽음으로 절개를 지켰다는 낙화암에는 지는 꽃도 없다는 말이다. 이처럼 충남 부여는 설화만 남고 한 나라의 도읍이었던 흔적은 좀처럼 찾기 힘든 곳이다. 미술사학자 유홍준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인생의 적막을 서서히 느끼면서 바야흐로 스산한 적조의 미를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는 중년의 답사객에게나 제격인 곳”이라고 했다.

 

부소산성은 백제 사비 도읍기(538∼660년)의 중심 산성이다. 사비시대 왕성과 후원, 배후산성 등의 역할을 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북으로는 강을 두르고 바로 산이 막아선 형상이 북으로부터 내려오는 고구려 군대를 방비하기에 적합하게 돼 있다. 공주 공산성 등과 함께 백제식 도성 방식을 보여준다.

 

사비시대 백제 왕궁은 드러난 게 없다. 고려 중기에 김부식 등이 편찬한 삼국사기에는 ‘성왕 16년(538년)에 사비로 도읍을 옮기고 국호를 남부여라고 했다. 31년(630년) 사비의 궁성을 수리했다. 37년(636년) 8월에 왕이 군신을 망해루에 모아 잔치를 베풀었다. 의자왕 15년(655년) 태자궁을 화려하게 수리했고 망해정을 궁전 남쪽에 세웠다’는 사실만 기록돼 있다. 도읍을 왜 옮겼는지, 왕궁은 어디였는지 알 도리가 없다. 결국 발굴 자료를 정밀하게 분석하는 수밖에 없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부소산성의 군창지(軍倉址·군량미 보관창고 터) 주변 조사 과정에서 와적기단(瓦積基壇·기와를 쌓아 만든 기단) 형태의 건물터 2동을 확인했다. 수평으로 쌓은 와적기단 중 가장 잘 보존된 형태라고 한다. 와적기단 건물터는 백제 시대를 대표하는 사찰 유적인 부여 정림사지, 왕흥사지와 사비 시대 후기 왕궁지로 거론되는 부여 관북리 유적 등에서 확인된 바 있다. 백제 왕궁급 건물의 모습을 추론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설화 수준에 머물고 있는 사비시대 백제의 실체에 다가설 기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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