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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랜드發 ‘돈맥경화’ 우려에… 건설·부동산 시장도 흔들 [심층기획-금융시장에 드리운 ‘불신’의 먹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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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10-29 11:30:00 수정 : 2022-10-29 14:5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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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지급보증의무 불이행 일파만파
투자자들 채권시장 불신 충격파 확산
최근 도로公·한전 등 회사채 모두 유찰
기업들 단기자금으로… CP 연일 상승세

정부 “최소 50조원 이상 유동성 공급”
뒷북 대응 논란 속 시장 안정 갈길 멀어
금융당국, 투입 시점·방식 등 논의 본격화
전문가들 “실제 돈 유입돼야 개선 될 것”

레고랜드에서 날아온 ‘나비’가 금융시장에서 ‘폭풍우’로 변했다.

강원도의 레고랜드 채무보증 불이행 사태로 10월 한 달간 한국 금융시장이 ‘혼돈’에 직면했다. 채권시장 경색 국면 심화로 기업들은 자금 조달에 막대한 어려움을 겪었다. 기업 도산설에 정부가 긴급히 나서 코로나19 때와 비슷한 수준의 유동성 공급 조치가 이뤄지게 됐다. 이는 금융시장에서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일깨운 사건이 됐다. 시장 혼란이 커질 때까지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한 정부에 대한 비판도 일어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연이은 금리 인상과 부동산 경기 악화로 인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기피와 '레고랜드' 발 채권 시장의 불안으로 투자심리가 얼어붙어 제2금융권과 건설업체들의 회사채 발행을 통한 자금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사진은 24일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현장의 모습. 연합뉴스

◆‘400억원’에 시작된 금융시장의 ‘혼돈’

시작은 김진태 강원도지사의 지난달 28일 발표였다. 김 지사는 레고랜드 건설을 주도한 중도개발공사(GJC)를 법원에 회생신청하겠다고 선언했다. 선언의 배경에는 GJC가 빌린 돈을 다 갚지 못한다는 판단이 깔려 있었다. GJC는 레고랜드 건설 과정에서 자금 조달을 위해 2020년 특수목적회사(SPC) ‘아이원제일차’를 세우고, 아이원제일차를 통해 2050억원의 어음을 발행하는 식으로 자금을 조달했다.

강원도가 ‘자산담보기업어음(Asset-backed Commercial Paper·ABCP)’으로 불리는 이 어음의 보증을 섰고, BNK투자증권이 주관사를 맡아 모두 인수한 뒤 다른 증권사 및 자산운용사에 팔았다.

그런데 GJC가 갚아야 할 자금을 다 모으지 못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GJC는 지난 9월 강원도의회에 있는 자산을 모두 매각해도 약 412억원이 부족하다고 보고한 바 있다. 김 지사는 이 상황에서 GJC를 기업회생하기로 결정한다. 문제는 강원도가 이 ABCP의 지급보증을 하기로 약정했다는 점에 있었다. 계약서에 따라 강원도는 지급보증을 ‘해야 한다’는 명확한 의무를 부여받았다. 하지만 기업회생을 선택한 강원도는 지정된 기일까지 이 지급보증의무를 지키지 않았고 결국 지난 5일 ABCP는 부도 처리됐다.

이른바 레고랜드 사태에서 촉발된 채권시장 자금경색 상황을 타개하고자 정부가 50조원 이상의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을 가동하기로 했다. 사진은 지난 24일 춘천 레고랜드 코리아 리조트의 모습. 연합뉴스

◆시장에 드리운 불신… 채권시장에 닥친 충격파

강원도는 지급보증 의무를 어긴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김 지사도 여러 차례 ‘돈을 갚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시장은 달리 받아들였다. 애초 신용평가사들은 해당 ABCP의 신용등급을 최고 등급인 ‘A1’으로 분류했다. 강원도의 지급보증 약속을 믿었기 때문이다. 강원도가 이 보증을 지키지 않으면서 신용이 깨졌다. 한국신용평가는 강원도의 지급 의무 미이행 직후인 지난달 30일 보고서에서 “대한민국 정부 조직 구성 체계 및 관련 법령에 근거할 때 지자체 신용도를 국가신용등급에 준하는 것으로 판단해왔다”며 “이번 일련의 사태는 이러한 판단 근거를 훼손시킬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신용평가사들은 이후 해당 ABCP의 신용등급을 끌어내렸다.

‘신용의 위기’는 곧바로 시장에 밀어닥쳤다. 투자자들이 신용등급을 믿지 않으면서 채권 투자를 아예 하지 않게 된 것이다. 채권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기업에 충격파가 밀어닥쳤다. 17일 ‘AAA’ 등급인 한국도로공사가 발행한 채권 1000억원이 전액 유찰됐고, 한국전력공사가 연 5.75%와 연 5.9% 금리로 4000억원의 회사채 발행을 시도했지만 1200억원이 유찰됐다. 높은 신용등급 채권도 줄줄이 유찰되니 이보다 등급이 낮은 회사채는 더욱 금리를 끌어올려야 했다. BBB- 등급의 회사채 금리는 11%를 넘어서며 연중 최고치를 연일 경신했다. 급해진 기업들은 단기 자금에 몰렸고, 기업어음(CP)은 연일 상승하며 4%를 넘어섰다.

시장 경색은 건설·부동산 시장에 더 크게 다가왔다. 특히 프로젝트파이낸싱(PF)시장의 경우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으로 인한 부동산 시장 악화 시점에서 신용 경색 국면이 나오면서 건설사의 자금 조달이 매우 어려워졌다. 자금 경색이 최고조에 이른 20일, 시중에는 일부 건설사의 ‘흑자 도산설’이 나오기도 했다.

◆정부 대응 나섰지만… 뒷북 비판 직면

결국 정부가 나서야 했다. 23일 정부는 최소 50조원 이상의 유동성을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26일부터는 한국증권금융을 통해 증권사에 3조원의 유동성 공급이 시작됐다. 정부가 수습에 나섰지만, 시장 경색 상황을 너무나 늦게 인식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4일 워싱턴 방문 도중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회사채 시장 불안에 대한 질문에 “현재 회사채 단기 자금시장에서 정상적인 기업이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시장 안정 조처를 하고 있다”면서도 “강원도 문제는 강원도가 대응해야 하고 아직 그 여파가 확산될 단계는 아닌 것 같지만 관심을 갖고 살펴보겠다”고 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24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최근 자금시장 경색과 관련해 금융 당국의 대응이 부실하고 늦었다는 비판에 대해 겸허하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며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정부가 투입을 약속한 ‘최소 50조원’은 2020년 코로나19로 인한 시장 경색 과정 당시 투입을 약속한 ‘40조원’보다 큰 규모다. 현 상황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아직 시장은 정부 약속에도 진정 국면을 보이지 않고 있다. 회사채 투자심리를 나타내는 지표인 ‘신용 스프레드’(무보증 3년물 AA-등급 회사채와 3년물 국고채 사이 금리 차이)는 26일 1.345%를 기록, 전일에 비해 3.8bp(1bp=0.01%) 오르며 연고점을 다시 경신했다. 금융당국은 현재 기존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를 투입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신규 채안펀드 투입 시점, 방식 등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시장이 본격적인 정부 자금 투입 시점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으로 정부 대책이 먹히지 않은 것은 아니라고 본다. 김상훈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통화에서 “(신용 스프레드는) 당분간 올라갈 수 밖에 없다. 여전히 (채권을) 사주는 사람은 없는데 금리는 내려가니 자연스럽게 스프레드가 올라간 것”이라며 “주식시장은 ‘정책’이 나온다는 이유로도 개선될 수 있지만, 채권시장은 실제 돈이 들어가고 인수하는 등 구조가 자연스럽게 흘러 가야 실제로도 (개선이) 된다”고 말했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채권파트장도 “정책 효과가 들어오려면 확인까지 시간이 걸린다”면서 “정책은 단기적으로는 할 만큼 했다고 본다. 막연하게 불안하게, 부정적으로 보는 것도 사실 문제”라고 말했다.


이도형 기자 scop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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